봉타(棒打) 하나.
“我不殺伯仁,伯仁由我而死” (아불살백인, 백인유아이사)
“내가 비록 백인을 죽이지 않았지만, 백인은 나로 인해 죽었다.”
이 말은 동진(東晋)의 왕도(王導)가 한 명언으로 알려져 있다.
왕도는 사마예(司馬睿, 元帝)를 옹립해 동진 왕조를 건립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이다.
왕도(王導)의 종형제(從兄弟)로 왕돈(王敦)이 있었는데, 그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왕도는 크게 놀라 일족과 함께 원제(晋元帝)에게 읍소하며,
자신들은 적과 통정한 바 없으며, 충성을 다하겠노라 고한다.
때에 주백인(周伯仁)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벼슬은 상서(尚書)였으니,
지금으로 치면 중국의 3-4급 공무원에 해당된다고 하니 국무위원 정도라 하겠다.
백인은 자이니 본 이름은 주의(周顗)다.
주백인(周伯仁)이 나서서,
왕도가 왕돈의 반역을 절대 따르지 않았음을 아뢰며 그를 변호했다.
이에 진원제(晋元帝)는 일리가 있다고 여겨 이를 받아들인다.
왕도는 하지만 저간의 이런 사정을 알지 못했다.
각설하고,
왕돈은 군대를 일으켜 진원제(晋元帝)측 유괴(劉槐)를 무찌르고 남경외성까지 점령한다.
이를 역사에선 무창(武昌)의 난(亂)이라 부른다.
그는 스스로 승상(丞相)이 되어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왕돈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은 당연히 살육을 당하게 된다.
이 때 백인도 걸려들어 죽임을 당한다.
당시, 왕돈의 당제(堂弟)인 왕빈(王彬)은 통곡을 하며,
백인을 죽이지 말 것을 왕돈에게 청했다.
왕돈이 곁에 있던 왕도를 흘깃 보며 뜻을 물었으나, 왕도는 단 일언반구도 없었다.
이에 왕돈은 손을 들어
“죽여라!” - “殺!”
이리 명했다.
백인의 머리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다음 날,
왕도는 입조하였다.
우연히 대(臺)위에 있는 주백인이 원제에게 바친 상소문을 보게 된다.
그 내용을 보니 왕도의 무죄함을 주장하는 것임이랴.
왕도는 통곡을 하며 이리 말한다.
“我雖不殺伯仁,伯仁由我而殺,幽冥中負此良友了。”
“내가 비록 백인을 죽이지 않았지만, 백인은 나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저승의 좋은 벗에게 빚을 지고 말았구나!”
이러한 얘기인데,
우리나라의 실학자 홍대용(洪大容)은 담헌서(湛軒書)에서
왕도의 처신을 아래와 같이 혹평하며 질타한다.
“왕도가 말하기를,
‘내가 백인(伯仁)을 죽이지는 않았다.’ 하였는데,
이것은 스스로 자기의 잘못을 용서한 말이다.
왕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것은
이는 간사한 사람이 남의 손을 빌려서 하는 술법인 것이다.
손수 칼로 찔러 죽인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이 고사는 유씨부인(兪氏夫人)이 지은 조침문(弔針文)에도 등장한다.
“아깝다 바늘이여, 옷섶을 만져 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
오호 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한 성품과 공교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일을 당하고 나서,
뒤늦게 후회함이니 유씨부인의 애통한 심사야 오죽하련만,
왕도의 통곡이란 홍대용의 지적처럼 얼마나 얄궂은가 말이다.
바늘 하나 갖고 저리 애통해함은 현대의 ‘소비인’들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음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물건에겐 제 나름의 고유한 아이덴터티가 없다.
혼이 깃들지 않은 말 그대로 한낱 물건에 불과하다.
수천 수만 개가 도무지 차이가 없는 그저 복제물에 불과한 것인즉,
소비의 대상에 불과할 뿐, 교감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것을 못 쓰게 되면, 다른 것을 취하면 된다.
이것에서 저것으로 옮겨 가는데 아무런 정서적 장애도 없고 갈등도 없다.
다만, 경제적 부담으로 환가되는 세상에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하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모두 실체가 거세된 대체재(代替財)들이다.
그들간 평가 기준은 오직 가격이 싸냐 비싸냐이다.
혹시 이런 기준을 사람에게도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가?
“싼 놈, 비싼 분”
사람에게도 격이 있음이니,
왜 아니 “귀한 사람, 천한 사람”, “선인, 악인”이 없겠는가만,
다만 싸고, 비싼 사람으로만 나뉘어지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예전엔 사람 곁에 두고 만나는 바늘 하나, 호미 하나 일지라도,
나와 인연을 맺은 것들은 모두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한다.
유씨부인의 바늘만 그러한가?
농부들이 쓰던 호미도 오래 사용하다 이빨이 나가 못쓰게 될 지경이면,
차마 버리지 못하고 뒤꼍 시렁에 걸어두고 오래도록 안타까워했음이다.
얼마 전 새로 개척한 약수터.
(※ 참고 글 : ☞ 2008/12/03 - [산] - 잉석(孕石))
나는 계곡까지 미끌어지며 내려가 몇 차례 쓰레기를 다 주었다.
이리 대면식(對面式)을 치르며 한 철 신세지겠음을 고하였음이다.
그런데 며칠 만에 가보니 다시 쓰레기가 어지럽혀 있다.
약수터 바로 곁, 앉는 자리 부근에 바로 감껍질이 말라 비틀어져 있고,
커피봉지, 사탕껍질도 흘려져 있다.
게다가 계곡 변에도 점점이 과일 껍질, 비닐, 드링크 병 등이 버려져 있다.
계곡을 내려가려면 단단히 준비하고 곡예 하듯이 임해야 하는 것을,
나는 또 다시 어찌 할 것인가?
만약 치우지 않고 그냥 놔둔다면,
백년, 천년 지나 저 쓰레기들이 쌓이고 덮히어 온 산을 오염시키고 말 터.
이런 생각에 무슨 셈법이 필요한가?
삼척동자에게도 불문가지 아닌가?
“내가 백인(伯仁)을 죽이지는 않았다.”
홍대용은 왕도가 뱉은 이 말을 용서하지 않았다.
“자기의 과오를 스스로 용서하는 말이자,
간사한 사람이 남의 손을 빌리는 술법”이라고 질타하고 있음이다.
먼 훗날,
기어이 어느 날이 되겠지만,
“내가 백인(伯仁)을 죽이지는 않았다.”
왕도의 이 간사한 문법을 빌어,
“나는 산하(山河)를 오염시키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리 변명하며 통곡할 것이다.
하기사, 먼 훗날이랄 것도 없다.
흘러가는 꼬락서니가 쉬이 목격할 노릇들이다.
현 정권 인사들은 틈만 나면,
대운하를 파자고 꺼진 불을 다시 지피 운다.
저들에겐 온 산하도 그저 대체재들에 불과하다.
천박한 토목쟁이들, 장사꾼, 모리배(謀利輩)들.
왕도의 후예(後裔)들.
기억하라, 산천은 복제물이라든가, 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유일한 것임이랴.
그러하기에 산마다 산신이 계시옵고,
물마다 하백(河伯)이 지키시고 계심이라.
홍대용이 다시 이 땅에 나타나면 저들을 왕도와 구별할 방법이 있을까?
“我雖不殺伯仁,伯仁由我而殺”
나중에 누가 이런 간사한 말을 하려는가?
지금, 눈을 부릅뜨고 가려, 지켜야 한다.
고물할아버지네 강아지들,
언 땅에 팽겨쳐두고,
주인은 따스한 구들장에 누워 단꿈을 꾼다.
(※ 참고 글 : ☞ 2008/11/17 - [소요유] - 병(病)과 죄(罪))
헤아리건대 식구가 4명인데,
강아지가 얼어 죽어도,
하나같이 동색(同色)으로 입 모아,
“내가 백인(伯仁)을 죽이지는 않았다.
다만 추위가 그리 했을 뿐이다.”
이러고도 남을 형편들이다.
봉타(棒打)
내겐, 이 말은 원래 ‘봉으로 세상을 친다, 이긴다.’란 자의(字義)를 갖는다.
실인즉 주식의 봉도표 분석법으로 시장을 대(對)한다.
'Beat the market'
이로부터 유래한다.
하지만, 속 뜻은
세상을, 시장을 감히 이긴다라는 뜻보다는
이들로부터 속지 않는다, 또는
간악한 이들의 폭거로부터 소중한 것을 지켜낸다라는 어의(語義)를 지닌다.
그런데 중국무협을 보면 타구봉(打狗棒)이라 하여,
개방(丐幇)의 핵심 봉술이 있다.
거지 집단이 몽둥이를 들고 개들을 다루는 봉술이란 의미다.
하지만 역으로,
내가 쓰는 봉타(棒打)는
강아지, 동물, 산(山), 물(水)을
거지 발싸개 같은 인간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것임이니,
나는 오늘, 봉타(棒打)란 말을 빌어,
“我雖不殺伯仁,伯仁由我而殺”
이 간사한 말을 다루고 있음이다.
그렇지 않은가?
얼마나 간사한 말인가 말이다.
거죽으로는 용서를 구하는 양 싶지만,
그의 말을 헤집으면,
“나는 죽인 게 아니야, 남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에 방점이 있는 것임이랴.
왕도들에게 나 또한 봉타(棒打) 한 방을 먹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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