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청수(淸水)와 탁수(濁水)

소요유 : 2008. 12. 23. 00:41


초(楚)나라엔 원래 소(昭), 굴(屈), 경(景)의 세성받이 왕족이 있었다.
굴원(屈原)도 굴성을 가진 왕족 출신이었다.
하지만, 굴원은 정치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인에 가까웠다.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반대파를 농락한다든가,
모략질에 능수능란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치인이 이런 모습이라고 전단(專斷)하는 게 옳기는 한가?
하여간,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옳다고 믿으면 누가 뭣이라 해도 그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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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www.dgzx.org/zgx/tk.htm)

천하는 바야흐로 강국 진(秦)나라를 중심으로 한,
나머지 육국의 세력다툼으로 어지러웠다.
진나라는 책사 장의(張儀)를 중심으로 각 나라를 상대로 모략전을 펼쳤다.
초나라는 친제(親齊), 친진(親秦)의 양 파로 나뉘었다.
당시 진이 가장 강력한 나라였으나,
제나라도 나름 무시 못할 실력자였다.

굴원은 이리 주장했다.

“진은 천하의 강대국이다.
친진정책이라는 것은 결국 진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가?
그에 비하면 제는 우리 초와 같은 정도의 나라이기 때문에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단독으로는 진에 대항할 수는 없지만, 제와 동맹을 맺으면 안전할 것이다.”

굴원의 이런 정세관은 초의 입장에서는 옳았다.
실제 이런 전략이 채택되어,
진나라 다음으로 강한 초와 제가 굳건히 손을 잡았다면,
진나라의 천하통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나라가 처음으로 공략한 나라는 삼진(三晋)이었지만,
만약 초가 제와 손을 잡고 배후에서 진나라를 위협하였다면,
마음껏 삼진을 공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진나라의 장의는 초와 제의 동맹 관계를 깨트리고,
초나라 내부의 친진파를 매수하는 전략을 폈다.
하기사 친진파가 원래부터 있던 것이라기보다,
매수 당하여 친진파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진나라가 후에 천하를 취한 이면에는,
막강한 군사력이 뒷받침된 것도 있지만,
육국 대신(大臣)을 상대로 한 적극적인 매수전략에 힘입은 바 크다.

이제나 그제나,
늘 제 일신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배신하는 간신들이 문제다.
게다가 초회왕(楚懷王)은 영명하지 못했다.
친진파의 거두는 상관대부(上官大夫) 근상(靳尙)이다.
그는 이미 진나라 장의의 매수공작에 떨어진 상태였다.

왕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던 굴원을 왕도 꺼리고 있는 점을 이용하여,
근상은 왕을 충동여 자신의 최대 정적인 굴원을 제로 쫓아버리는데 성공한다.
초회왕이 조금만 더 현명하여 굴원을 신임하였다면,
자신이 나중에 진나라에 잡혀 죽는 수모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간의 경과는 건너뛰지만,
초회왕이 진나라의 꾐에 빠져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았다.
더욱 딱한 노릇은 이어 등극한 그의 아들 경양왕(頃襄王)도 친진파였다는 것이다.
재상인 자란(子蘭)도 친진파, 나라의 국시(國是)는 여전히 친진일색이었다.

굴원 혼자 외롭게 반진론을 폈으나,
고립무원 호응하는 세력이 없었다.
그는 결국 추방을 당하고 만다.

굴원이 추방당하여,
강가 연못을 거닐면서,
시를 읊을 때,
안색은 초췌해지고, 형용은 마른 고목 같았다.

어부 하나가 그를 보고 이리 묻는다.
“아니, 삼려대부님이 아니십니까? 어떻게 해서 이 지경에 이르셨는지요?”

굴원이 말한다.
“세상이 모두 흐려있는데 나 홀로 맑다.
모든 사람이 취해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다.
그런 까닭에 이리 추방되어 있다네.”

어부가 말한다.
“성인은 사물에 막히거나 머무르지 않습니다. 세태의 추이에 맡길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어째서 그 진흙을 휘젓고 함께 흐려지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이 취해 있으면 어째서 술지게미를 걸러 마시지 않는단 말입니까?
어이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상하게 행동하여 스스로 추방을 당하게 한단 말입니까?”

이에 굴원이 답하여 가로대,
내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필히 관을 털어 쓰고,
새로 목욕한 자는 필히 옷을 털어서 입는다 하더라,
어찌 결백한 몸으로서 남의 더러움을 받을쏜가?
차라리 소상강에 달려들어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희디 흰 몸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쓴단 말인가?

그러자 어부는 빙그레 웃고, 돛대를 두드리고 떠나며 노래를 불렀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
마침내 떠나고 다시 더불어 말하지 못하였다.

屈原既放,游於江潭,行吟澤畔,
顔色憔悴,形容枯槁。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何故至於斯!”
屈原曰:“舉世皆濁我獨清,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

漁父曰:“聖人不凝滯於物,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何不淈其泥而揚其波?
衆人皆醉,何不餔其糟而歠其釃?
何故深思高舉,自令放爲?”

屈原曰:
“吾聞之,新沐者必弹冠,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而蒙世俗之塵埃乎!”
漁父莞爾而笑,鼓枻而去,乃歌曰:
“滄浪之水清兮,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
遂去不復與言。

屈原遭到了放逐,
在沅江邊上游蕩。
他沿江行走吟哦,
面容憔悴,
模樣枯瘦。

§

漁父見了向他問道:
"您不是三閭大夫麽?
爲什麽落到這步田地?"
屈原説:
"全社會都肮臟只有我幹净,
大家都醉了只有我清醒,
因此被放逐。"

漁父説:
"聖人不死板地對待事物,
而能隨着世道一起變化。
世上的人都肮臟,
何不攪混泥水揚起濁波?
大家都醉了,
何不既吃酒糟又大喝其酒?
爲什麽想得過深又自命清高,
以至讓自己落了個放逐的下場?"

屈原説:
"我聽説:
剛洗過頭一定要弹弹帽子,
剛洗過澡一定要抖抖衣服。
怎能讓清白無比的身體,
沾染上污穢不堪的外物?
我寧願跳到湘江裏,
葬身在江魚腹中。
怎能讓晶瑩剔透的純潔,
蒙上世俗的灰塵呢?"

漁父聽了微微一笑,
摇起船槳動身離去。
唱道:
"滄浪之水清又清啊,
可以用來洗我的帽纓;
滄浪之水濁又濁啊,
可以用來洗我的脚。"
便遠去了,
不再同屈原説話。

결국 굴원은 멱수(汨水)와 나수(羅水)가 합치는 멱라(汨羅)에 가서
돌을 품고 투신을 했다.
그 시를 일러 회사부(懷沙賦)라 부른다.
즉 돌을 품에 안고 투신한다란 의미이다.

후세 사람들은 굴원을 애석하게 여기고 그 원령을 위로하기 위해,
그가 자살한 5월5일에 쌀을 넣은 대통을 물에 던져 공양했다.
이것을 편수(粽 : 대나무 잎 등으로 싸서 찐 떡)의 기원이라고 한다.

위에 등장하는 어부는 은자(隱者)다.
이들은 세상에 가끔 나타나 정의를 위해 갈심진력하는 이들을 비웃곤 한다.
공자의 앞에 나타나 꾸짖기도 한 "장저(長沮)와 걸익(桀溺)" 그들과 성격이 같다.
(※ 참고 글 : ☞ 2008/12/17 - [소요유/묵은 글] - 멱라수(汨羅水)에 잠긴 달 그림자)

그런데 이들의 위치는 참으로 묘하다.
가령 초나라 조정은 사익과 권력 쟁투를 위해 부도덕한 일도
서슴지 않는 이들로 꽉 차있다.
하기에, 굴원 같은 개혁파들은 이들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에 쫓겨,
추방을 당하고 말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들 은자는 굴원 같은 정의파들을 향해 한껏 조롱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현실정치를 외면하고 은일(隱逸)의 세계를 노닌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성격의 집단일까?
이 시를 보면, 굴원을 비웃고 있는 듯싶지만,
내심으론 굴원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다만, 굴원의 이상과 개혁을 향한 열정이 
끝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아는 것이다.
그래 짐짓 어깃장 부리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은(小隱)은 산야(山野)에 숨고, 대은(大隱)은 조시(朝市)에 숨는다.”
저들 은사는 현실 세계로 가끔 고개를 드밀어 기웃거리며,
이쪽을 넘봄으로서 천하에 책임을 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유자(儒者)들은 정치세계에 거하여 적극적으로 세상의 도덕과 질서를 바로 잡으려 한다.
반면 은자(隱者)들은 정치를 등지고 있지만,
무욕(無慾)함으로서 무도(無道)한 세상에 빛을 던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비정치적 포지션을 통해 현실정치에 경종(警鐘)이 된다.
그들 역시 천하를 사랑하고 있는 군자(君子)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은, 대은이라는 것도 실인즉 위장된 말장난일 수도 있다.
가령 위진(魏晋) 교체기에 나타난
소위 죽림출현이라고 일컬어지는 7인도 혜강인가 하나를 빼고는
나중에 거의 관직에 다시 나아가 출세를 하고 만다.
한즉, 현실정치를 등진 게 아니라,
다만 밀려나 있었던 것이라,
그럴 듯이 위장하고 있으며 기회를 엿보며,
후일을 기약하고 있었음이 아닌가?

순자(荀子)를 벼리로 하여 흘러내린 법가(法家)들은
법으로 질서를 세우고 천하를 바로 잡자고 한다.
도가(道家), 병가(兵家), 종횡가(縱橫家) ...
이들이라 한들 천하를 근심하고 사랑하지 않았을 터인가?
다만, 개개인의 인욕(人慾)의 만사(萬絲)가 교직(交織)하는 것이
이 거칠고 탁한 세상이거늘 ...
그러하니 굴원이야말로 그 가운데 보석 같은 인사라 하겠다.

후대의 한(漢)나라 유안(劉安)은 굴원의 시 이소(離騷)를 평하여 가로되,

蟬蜕于濁穢之中, 浮游于塵埃之外, 皭然泥而不滓。

“흙투성이의 허물에서 매미가 빠져나온 것 같다.
먼지투성이인 이 세상 밖으로 빠져 나온 듯이
거기에는 티끌도 묻어 있지 않게 깨끗하다.”

라고 했으니, 그의 시와 삶은 한점 다름없이 닮았다 하겠다.
與日月争光!
그 뜻을 살핀즉, 가히 일월과 빛을 다투는 경지라 했던가?

하마, 굴원 역시 꿋꿋한 신념을 갖고 있음엔 틀림없지만,
현실의 두터운 벽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게라.

결국 굴원이나 은자나 다 체념의 동지관계다.
하나는 현실정치란 지형 위에서 자기의 이상을 불사르고 있으며,
하나는 은일의 세계에 숨어 가끔씩 고개를 삐죽 내밀며 세상을 점검한다.
이들은 모두 현실이 변할 것이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다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뻘밭 같은 이 현실 세계가,
굴원이 꿈꾸는 이상의 세계로 변할 가능성은 요원하다.
불교에서 불국토를 이 진토(塵土)에 세우자고 말하지만,
이 또한 허무한 주문임이 이미 2500년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하기사 또 다시 2500년을 시험해 볼 수는 있겠다.
아직 겪은 것은 아니니까 단언은 할 수 없겠다.
그렇다한들,
나 역시 굴원을 다시 등장시킬 염치는 없다.
아직 제대로 사모도 다하지 못한 주제에,
다시 그를 소환하여 어찌 욕을 뵈이랴?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말이다.
도저히 변할 리없는 이 뻘밭 같은 현실,
바로 그러하기에 더욱 더 굴원의 삶이 아프게 사랑스러운 게 아닌가?

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다 아는 말이다.

“물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결백) 사람이 꾀지 않는다.”

물이 맑으면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물이 더러우면 더러운 곳에 잘 사는 고기가 꾀고,
깨끗하면 그를 즐기는 고기가 들 뿐이다.
깨끗한 1급수라야 열목어, 산천어 등 고급 어종이 산다.
오히려 요즘엔 물이 더러워서 고기가 집단으로
폐사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청렴강직하면,
주위에 사람이 꾀지 않는다는 말은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결점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하니, 내 결점을 환히 꿰고 살피는 이가 있다면,
자못 견디기 힘들 것이라,
그에게 가까이 할 사람이 줄어들 것은 정한 이치다.

따라서 사람살이는 적당히 때를 묻히고 살며,
남의 허물은 그저 덮어주는 것이 처세에 바람직하다는 식의
처세술이 설득력을 얻어간다.
시시비비 가리지 말고 적당히 두루 뭉실 덮고 살자는 게니,
거꾸로 원칙대로 바르게 사는 사람은 경원시 되고, 배척된다.

하지만, 허물을 덮는 게 남을 향한 관대함이라면 조금 나을지 모르지만,
정작은 자신의 과오를 숨겨 합리화하기 위해 저 글이 동원되지는 않을까?

남의 개인적인 허물을 꼬치꼬치 들어 탓하는 것이야 경계할 노릇이지만,
人至察則無徒
이 말을 견강부회(牽强附會)하여,
적당히 부정 저지르고, 부패하며,
공적인 과오도 덮고 끼리끼리 묻혀 지내는 게 능사라고 한다면,
어찌, 한참 비굴한 해석이 아니라 하겠는가?
게다가 개결(介潔)한 인사를
손가락질 하며 비웃는 소인배들이 이 문구를 즐겨 동원하니,
참으로 문자는 아무에게나 가르칠 수 없는 노릇일새라.

저 위에서 어부가 굴원을 겨눠 부르는 노래는
조롱치고는 격조라도 높다.
그러하기에 저것은 단순한 비웃음이 아니다.
애석(哀惜)내지는 애석(愛惜)의 정조가 깔려 있음이라,
은자인 어부 역시 굴원을 향한 짙은 애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녹록한 인사가 아닌 것이다.
깡패가 아닌 것이다.

깡패는 보통 조직을 만든다.
왜 그럴까?
절대 혼자서는 이 세상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선은 개개(個個) 실력이 갖춰져 있지 않다.
저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만을 아낄 따름이다.
그러하니 조직을 만든다.
비루한 인격들이 무리를 짓고, 붕당을 만들고, 인맥을 형성하며,
완력을 끌어 모아 천하를 농탕질을 치기 위함이니,
이 때라야 부끄러움을 잊고 기세(欺世), 도절(盜竊)한다.
(※ 欺世 : 세상을 속임. 盜竊 : 도적질)

무리가, 붕당이, 인맥이 나쁜 것이 아니라,
제 뜻을 가장하여 숨기고,
무리를 위한 무리,
붕당을 위한 붕당,
인맥을 위한 인맥을 짓고,
정의를 외면하고, 도덕을 능멸하며,
오로지 제 사욕을 사무쳐 취하기 때문에
천하가 어지러운 것이 아닌가?

굴원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얼치기들의 말이겠지만,
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
이 글을 들어, 굴원의 처세를 나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사실은 그 글을 읽고는 내가 이 글을 적을 생각을 했다.
그 글은 일견 외양을 적당히 분칠을 했지만, 요지인즉슨
“홀로 고고한 척 했지만, 결국 강물에 빠져 죽었더라.”
그러하니, 세상은 적당히 흐린 채 살아가야 한다는 투였다.
“人至察則無徒”를 제 식대로 독해하고 그를 신조로 삼고 산다면
내 뭣이라 탓할 까닭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굴원의 삶을 왜곡하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노무현에 표를 던진 사람이지만, 그를 용서하지 못하겠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이 감정은 여전하다.
언젠가 그는 일본 TV쑈에 출연하여,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는 질문에,
"예전엔 김구였는데 그는 실패자라서 링컨으로 바꾸었다." 이런 식의 답변을 했다.
차츰 차츰 미심적어 하던 차,
이 말을 듣고 나는 더 이상 그를 미심적어 하는 일을 그만 두었다.
도대체가 굴원을, 김구를 비웃는 인간들의 영혼이란 얼마나 천박하단 말인가?

그런데, 아시는가?
굴원을 내치고 그 후 초나라는 어찌 되었는가?
초회왕은 속아서 적국 진나라에 가서 죽었다.
지 아비가 적국의 꾐에 빠져, 뻔히 죽은 것을 알면서도
새로 왕이 된 경양왕이지만 그 역시 진나라를 자청하여 섬겼다.
막내아들 재상인 자란(子蘭)도 매 한가지고,
사정이 이러한데 굴원 같은 인사들이 씨알 하나도 남겨질 리 없다.
전 재상 근상 같은 모리배 대신 이젠 내쳐 왕족인 자란이 들어섰으니 오죽하랴,
당시 조정의 대신들은 상하 모두 진나라의 뇌물에 녹아난 축들이 장악하고 말았다.
그들은 실인즉 진나라를 사모하여 친진파가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익을 위해 친진파가 된 것이리라.
결국 이들의 정치적, 경제적 허욕 밑에 깔려,
초나라, 그 백성들이 모두 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굴원이 멱라에 투신하고 50년 남짓, 결국 초나라는 없어졌다.
일찍이 굴원은 초.제 연합론을 주장했다.
6국 중 진나라에 병탄(竝呑)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은 게 초와 제였다.
이 둘은 그만큼 강국이었다.
만약 굴원의 주장대로 진 다음의 두 강국인 초와 제가 연합했다면,
진나라의 천하 통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나라 입장에서는 굴원 하나를 잃은 게 아니라,
실로 나라 전체를 잃은 것이니 어찌 애석타 하지 않으랴.

龍食乎淸而游乎淸
螭食乎淸而游乎濁
魚食乎濁而游乎濁

“용은 맑은 물을 먹으며 맑은 물에서 놀고,
이무기(螭)는 맑은 물을 먹고 탁한 물에서 놀며,
물고기는 탁한 물을 먹고 탁한 물에서 논다.”
 
3등 잡고기는 역시나 탁한 물 먹고 탁함에 의탁해,
구차한 목숨을 모질게 부지해 간다.
水至淸則無魚
이 말이 일리가 있는 지점은 딱 여기까지이다.

최소 이무기는 청수(淸水)를 먹어야 산다.
다만, 탁수(濁水)가에서 저들 잡어(雜魚)와 더불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아간다.

용쯤 되면 청수(淸水)가에서 청수(淸水)를 먹고 산다.
떳떳하기 때문이다.

대저, 국가의 대통령쯤 되면,
용에 비견되지 않겠는가?
비록 용이 되기 위해 탁수(濁水)에 잠깐 어울려 놀았다한들,
이제, 용이 되었으면 청수(淸水)처럼 맑고 바르게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탁수에 사는 4등 잡어보다 더 처신이 잡스러우면,
이를 어찌 일러 용이라 부를 수 있으리오?

하기사,
물고기는 영원히 물고기,
용은 영원히 용이지,
국격(局格)이 바뀌기가 쉬운가?

현대 중국 네티즌은
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
이 말을 짐짓 꾸며, 이런 말을 만들어내었다.

水至清則無魚, 人至賤則無敵!

그들의 비굴함의 정수를 보는 것 같다.
아니, 일부는 자탄에 빠져 자기비하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얼굴에 가면을 쓰고 한껏 낮추면,
그에게 적은커녕 친구들이 몰려들 것이라.
과연 그럴까?

애초에, 人至察則無徒 이 구절을,
사람이 너무 결벽하면 친구가 없다고도 새기기도 하는데,
거꾸로 새기자면,
흐린 물속에서 더불어 함께 하면,
친구가 많이 생긴다는 풀이가 성립된다.

그런데, 목적이 따로 있고, 이해를 셈하며 사람들과 사귀게 되면,
그게 물고기 떼처럼 아무리 하 많은들 이를 친구라 이를 수 있겠는가?
이런 것은 친구라 할 것 없이 그냥 떼거리 무뢰배 도당들로 불러야 마땅하다.

‘제주마 사랑찾기’
요따위 모순화법을 빌어 말싸움을 말사랑이라고 기망하는 사회,
이게 제주시 관청에서 앞장서서 꾸미는 현실이다.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57352
그러하니 저리 탁수에 몰려든 사람들을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
무슨 허물이 되리.
하지만,
어느 훗날 끈 떨어지면,
저들 친구라는 이름인들 온전하리?

아마,
콩사발 엎어지듯 흩어져 달아나기 바쁘고,
돌 들어내자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가재를 방불(髣髴)하리.

다시 한 번 새긴다.
당송팔대가의 하나인 한유(韓愈)가 그의 文友인 유종원(柳宗元)의 묘비명에 쓴 글이다.

".....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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