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鬼火)
주공(周公)은 주문왕(周文王)의 아들이다.
이름은 단(旦)이니 흔히 주공단(周公旦)이라고도 불리운다.
새삼 이를 생각해보는 사연은 무엇인가?
지난 주말 밭에 가서,
이웃 비닐하우스에 들르니,
우리 밭을 빌려 쓰는 또 다른 이웃 할머니가 놀러와 계셨다.
비닐하우스 주인께서는 자신의 밭 일부를 이웃에게 빌려주고 계신데,
이 하우스 주인 분을 두고, 그 할머니가 뜬금없이 내게 이르는 말씀이 이러하다.
“마음이 너그러우셔.”
“자기 밭은 남에 거저 빌려주고 다른 밭을 도지를 주며 빌리니 말이야.”
이야기인즉슨,
자신의 밭을 남 주고,
또 다른 밭을 도지를 주고 빌렸음을 나에게 알리고 있음이다.
음덕이든 양덕이어든 거기 무슨 사연이 있으련만,
그게 자신의 소관사가 아닌데 무슨 소용이 닿으랴.
그저 물처럼 담담히 대하면 그 뿐인 것을.
할머니는 만날 때마다,
거의 빠뜨리지 않고 자기 집안의 우환을 말씀 하신다.
왜 아니 걱정이 되겠는가?
하지만, 이웃이라 한들 이를 어찌 도울 수 있으랴.
인명은 재천이라, 천명(天命)을 그 누가 빗겨 갈 수 있겠는가?
나는 의심한다.
욕심이 적지 않은 분이니,
이리 아쉬운 형편을 때맞춰 깔아놓으며,
무엇인가 도모할 방편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우리는 주말에 들려 밭을 보면 마음이 절로 정갈해진다.
할머니 만날 때, 친인척도 아닌 남의 병환 이야기 자주 듣는 것이,
아무리 이웃이라할지라도 가히 마음이 편할 이치가 없다.
이 아니더라도,
지난 해엔 그와 만나는 것만으로도 우리 내외는 적지 아니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러한 실정인데,
그 날, 이웃 분의 관용을 우정 내게 익히라는 듯 펼쳐 놓는 사연을
듣고 있자니 이악스런 셈법에 단련된 노인네 특유의 연출이 사뭇 재미로웠다.
오해라면 다행이겠지만,
평소의 태도로 보아서는 이런 짐작이,
서투르다고 매양 탓할 노릇만은 아니다.
그 역시 기백평 우리 밭을 거저 빌려 쓰고 있음인데,
기껏 주말에만 들르는 내게 더 이상 무엇을 구할 것이 있으련만,
혹여 밭을 더 오래 빌려 쓰고자 함인가?
사전 염려 조처(措處)가 제법 그럴싸하다.
나는 흘려듣고는 가만히 미소를 짓고 만다.
그런데, 이내 내심으로는 '주공단'이 새록 떠오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연이 있으련만,
나와는 관련이 없고,
또한 남의 일엔 공연히 끼여들지 않는 형편인지라,
밭 이웃들 실정이 여하하든 이와 엇비겨 논할 근거는 하나도 없다.
다만,
할머니의 이야기 자락을 곁으로 흘려,
이내 내치고는 나 혼자 샛길로 접어들어 문득 주공단을 마주 하였음이라,
이는 마치 번거로운 시정(市井)을 벗어나,
숲길로 들자 홀연 청사(靑蛇) 하나를 맞닥뜨린 격이어라.
아, 아름다와라 저 파란 빛이란 얼마나 산뜻하니 개결(介潔)한가 말이다.
하여, 그 실마리를 부여잡고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하는 바이다.
이하는 밭 이웃 분들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노파심에서 재삼 확인하여둔다.
***
하(夏)-은(殷)-주(周)
주공단은 이 역사 흐름에서 주나라를 창건하는데 으뜸 공적을 세운 사람이다.
아버지인 주문왕(周文王) 그리고 자신의 형인 주무왕(周武王)을 도와,
은을 거꾸러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사람이다.
은의 마지막 왕 주(紂)는 폭군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는 변술(辯術)이 뛰어나고, 머리도 좋았다.
게다가 맹수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힘도 좋았으니,
문무 모두에 능한 영맹(英猛)한 인물이었다.
폭군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가 좋지 않으면 신하들의 견제에 의해 그 역할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역사상 유명한 폭군들은 대개는 머리가 총명한 경우가 많다.
그렇지 못하면, 무도한 짓을 하면 바로 거세되기 때문에,
역사에 폭군으로 기록될 만한 시간을 도대체가 벌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하니 유명한 폭군이 되려면, 오래도록 무도한 짓을 지속하여야 하는데,
이러려면 똑똑하거나, 아니면 힘이라도 좋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잠깐 있다 축출 당하기 때문에,
약간의 악명을 얻을지언정 결코 유명해지지는 못한다.
때문에 유명세를 치룬 폭군은 대개는 여간 똑똑한 이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주(紂)는 뒤뇌뿐이 아니라, 힘도 절륜(絶倫)했다.
그렇지만, 자신 보다 더 잘 난 인간은 없다는 자만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기실, 절대왕권을 가진 사람이 문무를 겸하고 있으니,
어지간히 어질지 않으면 황음무도한 길로 질주하는 자신을 스스로 제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 똑똑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삼가고 살펴 정치를 잘 하였을 터인데,
혹간 잘 난 인물이 그러하듯이, 안하무인 기고만장 거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은나라는 신권국가(神權國家)인지라, 자신을 거의 신처럼 절대화하였으니,
비극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한 나라에 충신이 있으면, 간신이 왜 아니 없겠는가?
주(紂)가 거느리고 있는 신하 중에,
상용(商容), 조이(趙伊)와 같은 충신의 간언은 쓰기가 소태같이 쓰고,
비중(費中), 오래(惡來)와 같은 간신의 아첨은 달기가 꿀 같았음이라.
여기 등장하는 주공단이란 인물은 그럼 무엇인가?
충신인가? 간신인가?
이제 하회(下回)를 지켜보라.
공자는 주공단을 성인으로 추앙하였다.
신권국가인 은나라가 지고,
주나라가 들어섰을 때,
예악과 제도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기초를 놓은 것은 주공단이다.
공자는 시대의 역할모델을 신화시대의 요순으로 끌어올리기 전에,
구체적 현실인 주공단에서 찾아 모셔 올렸음이리라.
게다가 주문왕(周文王)의 64괘와 더불어 주공단은 괘효사(卦爻辭)를 지었다 하니,
부자의 지혜가 모두 수승(殊勝)하였음은 여축 없다 하겠다.
신권정치가 어둠이라면,
예악과 제도에 의한 정치는
무지몽매한 역사현실을 밝히는 등불과 같았으리라.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은나라의 신하로서 주공단을 놓고 본다면,
그는 결코 충신 또는 성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
나는 지금 그 장면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보고자 한다.
은말(殷末)에 주(周)는 이미 상당한 실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그들은 당시 은(殷)을 집어 삼킬 야욕이 무릇 무릇 솟아올랐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주(紂)는 탐욕과 주색에 찌들어 가고 있었다.
주공단은 이를 더욱 가속화하려고 공작을 하기로 하였다.
그는 유소씨(有蘇氏)와 교섭하여 미모가 뛰어난 그의 딸을
주(紂)의 비(妃)로 헌상하는 작전을 짠다.
이 때 등장한 주인공이 천하의 요부로 알려진 달기(妲己)다.
이 부분은 야사(野史), 이설(異說)에 따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섞여드는데,
이를테면, 달기의 아버지인 소분생(蘇忿生)이 주(紂)에게 죄를 얻어,
이를 면하려고 달기를 받쳤다는 설도 있고,
이를 주공단이 의도적으로 기획했다는 설도 있다.
하여간, 주(紂)의 비가 된 달기는,
주(紂)를 황음무도(荒淫無道)한 폭군으로 이끄는데 일조를 한다.
주(紂)를 폭군으로 묘사하는데 동원되는
주지육림(酒池肉林), 포락지형(炮烙之刑)이란 말은 누구나 잘 안다.
이 모두 그 중심 배역에 달기 역시 맡아 자리했다.
달기를 주(紂)의 비로 침투시켜서 주(紂)를 타락시키고,
민심이 이반되도록 만든 것이 주공단이란 설이 제법 설득력이 있다.
가령 주공단의 아버지인 주문왕은 주(紂)에게,
포락의 형을 중단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낙서(洛西)의 땅을 바치겠다고 탄원한다.
주(紂)는 이 제안을 받아 들였으니,
낙서의 땅을 받아들이고, 그 대신 포락의 형을 폐지하였으며,
주문왕을 서백(西伯)으로 임명한다.
이런 소식은 빠르게 백성들에게 전파되었다.
“주문왕은 어질다.”
아마도 이 뉴스는 주문왕 측에 의해 의도적으로 전국에 적극 흩뿌려졌을 것이다.
역시 지혜가 뛰어난 주공단의 원려심모(遠慮深謀)의 결과라 하겠다.
주문왕이 비록 지금은 낙서 땅을 잃었지만,
천금보다 귀한 민심을 얻었음이며,
나중에 천하 대권을 훔쳐오면 까짓 낙서가 문제랴.
"주고 빼앗는다."
앞에서 소개한 왕망(王莽) 역시 자신의 평판을 높이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구사했음이다.
(※ 참고 글 : ☞ 2008/12/30 - [소요유] - 왕망(王莽))
보다 쉽게는 요즘 영악한 정치인들을 트레이싱 페이퍼 삼아,
이 장면 위에 겹쳐 보면 얼추 돌아가는 당시의 실상이 손에 잡히고도 남는다.
“주문왕은 어질다.”라는 말과 더불어,
“주왕(紂王)은 모질다.”라는 선전술이
주문왕 측 특히 책략가 주공단의 주도하에 펼쳐졌으리란 개연성은 충분하다.
도처에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만 가고,
각처에 웅거한 실력자 집단들은 주문왕(周文王)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원성이 높아 가면 인심은 떠나가고,
인심을 얻으면 사람들이 모인다.
이 당연한 이치를 주공단이 꿰고 공작을 벌인다.
머리 좋은 그가 꾀하고 획책할만한 정황이 이제 펼쳐지고 있었음이다.
주(紂)의 숙부인 비간(比干)이 목숨을 걸고 간하려 할 때,
달기가 왕에게 말한다.
“저 사람은 성인이옵니까?”
“세상에서는 그렇게 말하고들 있긴 하지만 …….”
“소첩은 성인의 심장엔 구멍이 일곱 개가 있다고 들었사옵니다만 …….”
결국 비간은 죽어 해부를 당한다.
이러자 또 다른 숙부인 기자(箕子)는 거짓 미치광이 행세를 하기까지 한다.
이리 충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을 하지만,
주문왕 등 주(周)나라 희씨(姬氏)들은 먼발치에 물러나,
사태를 관망하며 와해 공작을 획책하고 있었을 뿐이다.
주공단이 공자에게 성인으로 추앙을 받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즈음 천하를 노리며 셈판을 두들기고 있었음이다.
그가 공자 말씀대로 진정 성인이라면 어찌 남의 나라를 빼앗을 궁리를 트고 있었을 터인가?
시절인연이 서서히 농익어 가고 있는 때,
고죽국(孤竹國)의 백이(伯夷), 숙제(叔齊) 형제는
마침내 주무왕(周武王)이 주(紂)를 토벌하러 나서는 길목을 막고,
죽음을 무릅쓰고 부당함을 호소한다.
"신하된 이가 설혹 왕이 무도하다고 한들,
어찌 반역을 꾀할 수 있단 말인가?"
주무왕의 부하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이들을 죽이려고 하자,
주무왕을 보필하고 있던 강태공은
그들은 의인(義人)들이니 죽일 수 없다하여,
천만 다행 목숨은 건진다.
하지만,
후에 은(殷)이 망하고 주(周)가 서자,
그들 형제는 불식주속(不食周粟) 즉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는다.’라며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를 먹으며 연명하다 끝내는 굶어 죽는다.
(※ 不食周粟
粟이란 글자는 '조'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겉곡식을 말하고 있으며, 봉록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하니 不食周粟란 일반적으로 해석하듯,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는다라고 보기보다는,
周를 섬겨 벼슬을 살며 봉사(奉事)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보다 근리(近理)하다는 견해가 있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의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이리 말했다.
余甚惑焉, 儻所謂天道, 是邪非邪
(※ 邪 : 보통은 '간사할 사'로 새기지만, 여기서는 '그런가 야'로 새기며, 耶와 통용된다.)
“나는 심히 헛갈린다.
천도(天道)는 과연 옳으냐 그르냐?”
백이, 숙제는 절개를 지켜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다 죽었다.
이리 의인(義人)은 아사(餓死)로 비참히 죽고 말았지만,
한편 도척(盜蹠)이란 천하의 흉악한 인간은 천수를 다할 때까지 유복하게 살았다.
天道, 是邪非邪!
반면,
주문왕 그리고 그의 아들들 주무왕, 주공단 그들은 어떠했는가?
과연 그들은,
백성들이 폭군 주(紂)에 의해 도탄에 빠졌음을 함께 아파하며 안타깝게 여겼음일까?
보자,
주(紂)가 차츰 인심을 잃어가자,
주무왕, 주공단은 궐기할 것을 주문왕에게 권한다.
이 때 주문왕은 이렇게 말한다.
“5백년이나 지속된 나라이다.
비록 왕이 덕이 없다고 바로 쓰러뜨릴 수는 없다.”
“주(紂)가 저리 포학해도 더 견뎌야 합니까?”
“아직 저 정도라면 5백년 적덕이 지탱해줄 것이다.”
“그럼 아직도 포학함이 부족합니까?”
부족하다면,
외부에서 도와 채워 넣을 수도 있다.
달기를 유소씨로부터 사서 주(紂)에게 봉헌하여,
그 포학함을 더욱 부추겼을 때,
당연 백성들의 고통은 더욱 심하였을 터.
이게 은나라를 하루 빨리 쓰러뜨리기 위한 고육책일 뿐,
진심으로는 백성들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의 발로였을까?
아니면 남의 나라를 빼앗으려는 야욕 때문이었을까?
이 물음에 주(周)나라 부자(父子)는 제 본심을 제대로 드러내 답할 수 있을까?
주(紂)에게 낙서 땅을 받치고,
포락지형을 거두게 한 것이 과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인심을 사기 위한 작전에 불과한 것인가?
백이, 숙제가 옳다면,
주무왕, 주공단의 행위는 그릇된 것일까?
반대로,
주무왕, 주공단이 옳은 것이라면,
백이, 숙제의 죽음은 헛된 것인가?
백이, 숙제의 결백으로 과연 누추한 역사가 극복이 될 수 있을까?
저 처연한 아름다움은 필경은 아사(餓死)로 귀결되고 말았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주(周)를 세운 사람들은,
일견 비열함, 또는 누추함으로 일어서서,
끝내는 공자가 늘 사모하는 예악과 국가 제도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나는 감히 이들 삶과 비교할 수 없지만,
공간 한 점을 덜어내고, 시간 한 선을 베어내어,
이런 주제로 최근 여기 북한산에서 조그만 실험을 하고 있다.
여기 조그만 실험 터에서도 내가 제풀로 쓰러져 죽을 판인데,
고사리 먹다 아사(餓死)하고만 백이, 숙제 형제들의 저 붉은 절개란,
도대체가 얼마나 저리도록 아픈가 말이다.
절개, 결백이라는 것을 지켜,
궁극으로 옳고 의로운 것을 추구함이 종내 죽음으로 귀결되고,
그리고 도척의 비루한 삶이라는 것이 종국엔 부(富)와 수(壽)를 보장하는 세상이라면,
사마천은 어이하여 궁형(宮刑)으로 수모(受侮)를 받고,
고통스럽게 명을 부지하며 역사를 남겼어야 하는가?
天道, 是邪非邪!
사마천이
천도의 시비(是非)를 헛갈려 하며,
이리 외치면서도,
청죽에 역사를 새겨 넣음은 도대체 무슨 노릇이란 말인가?
사기(史記) 전권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물음 역시 이러한 게 아니던가?
이런 물음조차 부질없다고 외면하고도 말 작금의 삽질족들이란 또한 어찌된 무리들인가?
인간의 조건이란,
참으로 얄궂다.
인간 조건의 극복엔 일정분 양보가 따라야 함인가?
저 주공단처럼 야욕 또는 백성을 향한 측은지심으로 현실과 타협하였지만,
종내 공자도 우러르는 성인이 되었지 않은가 말이다.
수양산에서 고사리 먹고 죽어버린 백이, 숙제는
양보와 타협없이 최전선에 서서 푸르진 순결을 지키다 죽었다.
하지만, 이제는 역사책에서조차 형해화(形骸化)되어,
초췌(憔悴)하니 귀화(鬼火)가 되어 밤을 울고 있을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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