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고양이 하나가 아파트 쓰레기장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다.
나는 그 때 옆으로 난 언덕길을 막 오르려 하는 중이었다.
그리 오르면 고물할아버지 집이 있고 더 고개를 넘어가면 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마침 언덕 나들목에는 산책을 나왔는지,
30대 초반의 사나이가 샌들을 신고 어슬렁거리고 있다.
내가 먼저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야옹~’ 소리를 낸다.
그러자 고양이가 나를 보고는 ‘야옹~’하며 마주 화답을 한다.
내가 언덕길로 접어들자 고양이는 반달을 그리며,
그 사나이를 슬쩍 돌아 피해서는 나를 따라온다.
나는 그를 고물할아버지 집으로 데리고 들어갈 심산이다.
거기에 가면 밥그릇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사기 그릇, 플라스틱 과자 곽 등등 마당가엔 지천으로 나뒹굴고 있다.
달래 고물집인가?
녹슬고, 고장 난 것이지만 각종 연장, 종이상자, 천막, 탁자, 깡통, 유리병, TV, 쓰레기 …….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다만 거기 집 구석엔 불 발린 환자(宦者)처럼 있어야 할 것이 거세되어 있다.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다 가질 인정(人情) 한 터럭도 남겨진 것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괴이쩍은 일이다.
찌그러진 과자 그릇일망정 하나 주어 얼추 닦아 대접하면,
땅 바닥보다는 한결 우아한 한 끼를 먹일 수 있다.
언덕을 앞서 올라, 아래를 살펴 보니,
‘어 이것 봐라’하는 표정으로 그 사나이가 눈으로 고양이 뒤를 한참 쫓는다.
나는 무심히 고양이를 데리고 고물할아버지 집으로 들어갔다.
그 동안,
내가 강아지를 돌보는 사춤에,
비둘기가 군식구로 끼어들고,
고양이 역시 손님으로 들어 앉았다.
처음엔 경계를 몹시 하더니만,
이젠 내가 모르고 지나치면,
저 녀석이 어느 새 나타나서는 ‘야옹~’하며 나를 부른다.
그 소리가 마치 내 손등을 핥듯 부드럽고 은근하다.
이번에 그 언덕을 내려오는데,
이 녀석이 저 멀리 길 한가운데서 떡 하니 앉아서는 ‘야옹~’하며 나를 맞는다.
나는 한 구석 반반한 곳을 찾아 입으로 후 불어 흙을 털어내고는,
사료를 한 움큼 부려 주었다.
이 녀석을 이번에 한번 사진 찍어 볼까 하고,
핸드폰을 들이밀고 몇 장을 찍었는데 도중 전화가 온다.
한참 응대를 하고나니 녀석이 없어져버렸다.
‘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렸구나’하고 나는 내쳐 내려오면서,
그래도 멀리는 가지 않았을 테지 하고 ‘야옹~’ 하며 한데에다 소리를 던져보았다.
그러자 바로 바로 옆에서 ‘야옹~’하며 화답 소리가 난다.
바로 길 옆 축대 밑에 지어진 노인정 지붕위에 녀석이 널브러져 자고 있다,
귀찮다는 듯 고개만 살짝 들고는 나를 쳐다본다.
내가 자리를 옮겨도 아주 늘어진 채 고개만 비비 틀어 돌려 쳐다볼 뿐,
몸뚱이는 지붕 위에 착 달라붙은 채, 그대로 축 퍼져 있다.
오늘 하루는 배가 불렀으니,
그저 좋은 날이렷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하루 분만큼의 행복을 그 날 하루 바로 만끽하는 저들.
운문(雲門) 스님은 혹여 고양이를 보고 도를 깨우치신 것은 아닐까?
남전(南泉)이 참묘(斬猫)하여 법(法)의 영(令)을 세웠듯이.
(※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하루하루가 좋은 날.
碧巖錄 第六則
(本則) 擧. 雲門垂語云. 十五日已前不問汝. 十五日已後道將一句來. 自代云. 日日是好日.
(頌) 去卻一拈得七. 上下四維無等匹. 徐行踏斷流水聲. 縱觀寫出飛禽跡. 草茸茸. 煙羃羃. 空生巖畔花狼籍. 彈指堪悲舜若多. 莫動著. 動著三十棒.
여기 호일(好日)은 흔히 좋은 날로 번역하는데,
석지현은 당시 중국어로 볼 때 이 말은 본디 생일(生日)을 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조사해 보니,
당나라 때는 좋은 날씨, 길일(吉日)로도 쓰였고,
명나라 때는 결혼일(結婚日)로도 쓰였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출처가 되는 벽암록(碧巖錄)은 송나라 때 지어진 것이고,
운문(雲門)은 당말(唐末) 때 사람이니,
석지현 스님의 말씀처럼 호일(好日)을 생일(生日)로 보아도 좋겠다.
하지만, 길일로 보든, 결혼일로 보든 모두 경사스러운 날이 아니겠는가?
내 생각엔 전거에 충실하려면 생일로 새겨 보아도 되고,
그 뜻을 짚어내자면 어느 하나로 특정 하느니 그냥 ‘좋은 날’로 보아 주어도,
그저 한가로이 좋지 않을까 싶다.
허무장발승(虛無長髮僧)
나모다모(南無多毛) 석지현(釋智賢).
내 영혼에 허무란 이름의 바람을 긴 수염처럼 한껏 불어 넣어 주던,
그 젊은 날의 서리서리 영기(靈氣) 뿜어내던 그도,
최근에 사진을 보니 한참 늙어 있다.
좋은 날.
)
(※ 참고 글 : ☞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ⅱ)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破窯賦 (0) | 2009.09.16 |
---|---|
무측은지심 비인야(無惻隱之心 非人也) (2) | 2009.09.15 |
떡 썰기 (0) | 2009.09.11 |
스물 남짓 (0) | 2009.09.03 |
불균수지약(不龜手之藥) (1) | 2009.08.24 |
공갈 (2) | 2009.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