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꾸짖길 두려워하지 말자.
景行錄云,
責人者不全交 自恕者不改過
경행록에 이르기를,
남을 책(責)하는 자는 사귐을 온전히 하지 못하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자는 자신의 과오를 고치지 못 하느니라.
이 글귀를 보자하니,
불현듯 마음 밭에 별스런 낙수(落穗)가 떨꾸어 구른다.
화롯불에 사위어 가는 불씨 헤집듯 들추어 보기기로 한다.
얼핏 그럴듯하니 훌륭한 경책의 말씀인 양 싶다.
과연 그러한가?
수십 년 글 하나를 읽은 적이 있다.
독일로 교환교수를 간 이의 이야기이다.
이 자가 교통질서를 위반하여 딱지를 떼었다 한다.
범칙금 통지서가 날아왔는데 얼마 후 귀국할 처지인지라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korean style인 셈.
그러자 재차 통지서가 날아왔다.
그게 대수이랴.
조만간 한국으로 날아갈 판인데.
그 후 이자는 태연히 출국하여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모 대학으로 복귀하였다.
얼마 후,
대학 행정처로 편지 하나가 날아왔다.
독일 경찰서로부터 온 것이다.
내용인즉슨,
이자가 여차저차 두 번씩이나 ‘생깠다.’
이를 알리노니 귀국, 귀대학의 지침에 따라,
의율(依律) 처리하길 기대한다.
아연 놀란 당국은 그자를 해임 처분하였다 한다.
독일 경찰이 아니었다면,
저자는 점잔빼면 여전히 한국 거리를 누비고 다녔을 터다.
그에겐 독일 경찰이 사뭇 쓴 영약이 되지 않았으리요?
만약 저 경행록의 가르침을 따른다 하면,
독일 놈들이 사뭇 낯선 인간들이라 일러야 할 터.
남의 허물을 그냥 덮지 못하고 널리 알려 망신을 줄 수 있음인가?
도가 미치지 못하고 덕이 박한 것들이 아닐쏜가?
우리가 사위(四圍)를 돌아볼 때,
걸리느니 다 일가요,
부딪히는 이가 모두 친척인 농경사회라면,
일응 저 말씀이 그럴듯하다.
허나,
이즈음엔 앞뒷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산다.
내 서울 집의 경우 몇몇을 빼고는 다 문 닫고들 산다.
모두 다 제 잘난 맛에 기고만장하여 살고들 있는 것이다.
이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선 내가 우정 나서서 남을 챙겨주려 하여도,
도대체 닫힌 문 열어젖히고 그러할 틈도 없다,
이게 잘된 일인지, 못난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허나 분명한 것은 우리네 삶은 이리 흘러들어가고 있음이다.
남의 허물을 덮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남의 담장을 넘는 도적을 보면 즉시 신고하는 것이,
어찌 不全交를 염려함만 못하리요?
여기 시골 촌놈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온갖 플라스틱, 비닐을 태우는 것을,
어찌 눈 감고 보아 넘기는 것이 능사이랴?
만약 저 경행록의 가르침이 그럴싸하다 하여,
이를 그냥 넘기려든다면,
여기 시골구석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
저 탁한 황하가 어느 때인들 맑아질 날이 있으랴?
나라면 不全交일지라도 저 못난 짓거리를 멈추는 것이,
백번 옳은 일이라 여기리라.
그러한즉,
남을 책하는 것을 꺼려,
내 교제술을 뽐내려함은 과시 소인배들의 얕은 처세술에 불과함인 게라.
떨치고 일어나 남의 허물을 나무라야 한다.
그러할 때라야 내가 문 닫아 걸고 홀로 살아도,
남에게 책임을 지고, 당당히 사는 일임이니,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아니랴?
저 경행록의 말씀은 자신의 안전과 행(幸)을 구함엔 혹 요긴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공(公)을 생각한다면 사뭇 안일한 처세가 아닐 수 없다.
이웃의 삿되고 못난 일을 나무라고, 그에 힘에 부치면 신고하여야 한다.
경찰, 또는 행정관서는 이러한 구질스런 일을 담임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이들에게 저리 못난 짓거리를 처리하도록 채근하고 맡겨야 한다.
이게 그리 되바라진 일이 아닌 것이다.
외려 사회 전체를 염려하고 아우르는 우국충정의 처세인 게다.
저들은 저러한 일을 처리함이 마땅히 감당하여야 할 책무이자, 소명인 게다.
저들을 꺼려 성가시고 무서운 관청이라 여기지 말고,
이러한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심부름꾼이라 여겨야 한다.
이 때라야 비로소 저들은 우리의 친구가 되고,
사회 전체는 밝고 스마트하게 굴러간다.
이 때 낱낱의 개개인들은 행복하니 제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음이다.
하기에 난 저 따위 경행록의 말씀은,
거죽으론 닦아 세우며 그럴 듯하니 사람들을 부추기지만,
외려 현대 사회를 더디고, 무디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리 의심을 하곤 한다.
저 말씀은 너무 개인에 함몰되어 있다.
자신 하나에겐 혹간 득책이 될지는 몰라도,
저 상태로 사회 전체가 흘러간다면,
부정, 비리는 개골창의 썩은 쓰레기처럼 켜켜로 쌓여갈 것이다.
종내는 위선이 판치는 끔찍한 세상이 펼쳐지고 말 것이다.
난 이를 심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공연히 남을 헐뜯는 것이야 삼갈 노릇이지만,
그릇 된 일이라면 사회 전체가 결연히 나서서 나무라야 한다.
이 때래서야,
대의(大義)가 늠연(凛然)하니 바로 서고,
천하는 화평(和平)해진다.
재삼,
이 자리에서,
남을 나무라는 것이 결코 마냥 부덕한 일이 아님을 새겨두고자 한다.
우리의 얼을 얽어 맨 저 사이비 주박(呪縛)을 과감히 벗겨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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