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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차도(跳進車道)

소요유 : 2014. 8. 2. 19:11


도진차도(跳進車道)

내가 어제 청에 따라 어떤 농장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막 유턴을 하여 속력을 차차 내고 있는 참이었는데,
그 때 한 여인네가 급작이 차도로 뛰어들어서는 손을 벌리고서는 막아선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는데,
나는 순간 왼쪽 차로가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급히 핸들을 꺾었다.
그런데 그는 더욱 그 방향으로 게걸음을 치며 막아선다.

아하 이 여인네가 자신을 치어달라는 주문이구나,
주문치고는 고약하다.
그 간절함을 알겠음이나,
제 만족을 위해 남에게 해를 입힐 것을 주저하지 않으니,
사정이 몹시도 급했거나, 염치를 차릴 생각이 한참 모자라기도 하구나.

이미 차의 속력은 사뭇 줄어들었겠다,
차는 더욱 왼쪽으로 빗겨갔으니,
저이의 기도(企圖)는 싱거워졌음인가?
대드는 기세가 한결 누그러진다.

차도 변을 보니 한 사내가 차를 세워둔 채,
그 곁에서 야릇한 비소(誹笑)를 날리며,
여인네를 지켜보며 서있다.

여인네 역시 그 사내에게 핏빛 원망에 젖은 시선을 설핏 설핏 던지며,
그를 도발하며 시험하고 있다.

얼핏 목숨을 걸고 하는 최후의 비장한 작업인 듯싶지만,
거긴 상대를 의식하고 있는 만큼의 유보된 공간이 남아 있다.
그러함이니 그 틈이 쐐기가 되어,
언제든 다시 현실로 복귀해버리며,
연출된 현장은 급히 허물어지고 만다.

이 복원력은 생명이 가진 한계라 불러야나 할까?
곧잘 일어나는 죽음의 충동은,
그 질긴 생존 본능에 의해 쉬이 시들고 만다.
죽음 측에서 보자면 아쉬움이 크리라.
하지만 질기다 하더라도 그 실은 너무 가늘다.
명주실처럼 아슬아슬하니 명줄이 붙어 있을 뿐,
잠깐이라도 마음을 모질게 먹으면 이내 끊어지고 만다.

마치 온돌방 얇은 장판 밑에 연탄불 가스가 사르르 흐르고 있듯,
죽음의 손길은 바로 곁 가까이에 있다.
장판 위의 따스함.
그에 취해 웃고 떠들고 살아들 가지만,
기실 이를 지탱하는 것은 얇디얇은 한 장의 장판 두께의 신뢰 말고는 없다.

그래서 저런 따위의 시위는 복귀가 단기간 유예(猶豫)되어 있을 뿐이다.
거죽으로는 죽음으로 포장된 긴박한 상황 연출이 펼쳐지지만,
상대가 거기 끌려 들어가지 않는다면 실없는 짓이 되고 만다.

상대도 선뜻 거기 응하여 만류(挽留)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자칫 역효과를 내어 연출자가 흥행이 잘되고 있다 믿고,
더욱 기고만장하게 되면 일이 꼬이고 만다.

하지만 인내가 도를 넘게 되면,
연출자는 영 체면이 서지 않게 된다.
이 때 부끄러움이 생긴다.
이 2차적 감정은 본래의 1차적 사태보다 때론 더 심각하다.
왜냐하면 연출의 진정성을 입증할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상대를 도발하여 시험을 하고자 하였음인데,
이젠 도리어 자신이 시험을 당하게 된 폭이다.

사태가 벌어진 현장에서,
이런 감정들의 수용 한계를 새로 시험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게다가 죽음을 담보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런 시험은 평소에 잘 해두어야 한다.
각자는 상대에게 자신의 수용 능력을 미리 알려 두어야 한다.
가령 저자는 고집이 황소라 어떠한 도발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든가,
마음이 여려 곧잘 굴복하고 만다든다 하는,
반응 신호 양식을 미리 선전해두어야 하며,
일편은 이를 미리 잘 알아두어야 한다.

그러할 때라야,
저런 행위 연출은 사고 없이 무사히 치룰 수 있다.

무당의 푸닥거리라는 것도,
그게 그리 영험이 있어서라기보다,
때론 그리 모여 든 사람들이 무당의 연출에 잘 협조하여,
한 마당 극을 잘 치뤘다는데 의의가 있다.
우리는 이리 성실하니 극에 임하였다,
그러하니 어찌 앞 일을 염려하랴?

그렇다한들,
나 같이 운전이 서툴러 속력을 내지 않는 이를 만났으니 그럭저럭 큰 탈 없이 치뤘지,
아니라면 자칫 감당키 어려운 사태가 벌어졌을 터다.

그나저나,
저 분들 그 날 밤,
서로 부둥켜안고 서러움을 나눠 가졌으면 싶다.

연출자 여인이나 그를 지켜보는 사내나,
모두는 다 사는 것이 서럽다면 왜 아니 서럽지 않으랴?

나는 무엇이 급하다고,
저들을 거리에 내버려 두고 서둘러 내 갈 길을 내쳐 가고 말았는가?

잠시 저들과 함께,
막걸리 나누며 서러움을 왜 아니 나누지 못하였는가?

無情쿠나.

無情不似多情苦

무정한 이는 정이 많은 이의 고통을 모르는 것.

이는 모다 나의 잘못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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