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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축(蘊蓄)

농사 : 2014. 11. 25. 12:44


온축(蘊蓄) 

이 글은 앞 선 글,
reset 농법의 보론(補論)이다.

나는 앞의 글에서 유기농이든 관행농이든 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반적인 행태를 비판적 시각에서 점검하여 보았다.
년년세세 밭은 주인에 의해 깡그리 쥐어짜내지고,
봄이 되면 농부는 무엇인가를 다시 처넣어 작물에게 새롭게 공급한다.
그러니까 밭은 늘 새롭게 reset되고,
그 현장엔 역사적 기록, 계승이 부재한다.

그러니까 가용자원을 한껏 동원하여 투입하고,
작물을 몰아치며 최대한의 소출 제고에 몰두한다.
따라서 한 해가 지나고 나면 밭엔 남겨진 것이 없다.
오늘날 이런 작법 형식은 밭뿐이 아니라 논에서도 마찬가지로 자행된다.

일 년 내내 논에 비료와 농약이 퍼부어진다.
농업기술센터에선 이에 대한 시비 처방을 일러준다.
아, 친절도 하여라.
가을이 되면 농부는 나락을 수확 하고,
왕겨는 물론 볏짚조차 원형 베일러를 만들어 싹쓸어간다.
잡초 역시 제초제로 이미 제압된 상태인즉,
논엔 그야말로 아무런 것도 남겨지지 않는다.

그러함이니,
봄이 되면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제초제와 농약이 해마다 투입되기 때문에 소출은 줄기 십상이다.
이를 보충할 요량으로 비료는 더 많이 투입될 뿐 결코 줄지 않는다.
소출은 전적으로 NPK 따위의 인공적 화학비료에 의지할 뿐,
논, 밭엔 유기물은 전혀 공급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병충해가 늘어만 간다.
농약 사용이 결코 줄어 들 수가 없는 구조이다.

그러다 보니 영양제이니, 발효제재니, 미생물, 강력 살충제, 살균제이니 하는,
요상스런 제 2차 상품이 등장하여 농부들을 꾄다.
미생물만 하더라도 밭에 유기물이 없는데,
설혹 섬짝으로 퍼부은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내가 생각하기엔 저들이 미생물 제재를 아무리 퍼 넣은들,
효과는 미생물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외려, 덩달아 투입되는 미생물 배지라든가 배양액에서 좀 얻을 수 있으리라.
이게 곧 포도당 따위이니 비료 대용으로 좀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자연재배에서 말하는 ‘무투입‘이란,
이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는 말씀이다.
이는 관행농, 유기농 현장에서 일어나는 ‘착취’에 대한,
질타이자, 인간의 자기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하겠다.
흙을 홀대하여 알짜 없이 껍데기까지 벗겨내어 착취할 생각을 하는 한,
비료-농약, 이 엄청난 물량 투입의 연환(連環) 작법 체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따위 방식으론 미처 백 년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그 전에 흙은 돌이킬 수 없도록 황폐해져 절단이 나고 말 것이다.
'무투입'이란, 
쳐넣지 말자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알짜없이 빼앗지도 말자는 선언의 말씀이다.

오늘날, 유기농이든 때론 자연재배라는 이름을 빌어 나서는 이들을 보면,
농사짓는 태도에 있어서는 관행농과 별반 다름이 없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말이다.
유기농, 자연재배에서 청초 액비를 만든다 할 때,
저이들은 미생물을 배양하고, 청초에 부어 발효를 시킨다.
그러면서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고 가슴을 쑥 앞으로 내어밀며 자랑을 한다.
물론 저것이 화학비료보다는 사뭇 뛰어나리라.
하지만 과연 이것으로 면책이 되는가?

질량/에너지보존의 법칙(the law of conservation of mass and energy)

멍키 통에서 발효를 시키는 동안,
미생물에 의해 효소, 비타민, 호르몬 따위의 새로운 물질이 생기지만,
애초의 총량 기준으로 보면 그 질량은 사뭇 줄어들게 된다.
즉 미생물의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소모가 되었을 터이고,
유기물이 단기간에 급격히 분해가 되었기 때문에,
열과 가스가 발생하여 사라지기 때문에,
질량 감모가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리 발효한 것을 밭에 투입하면,
식물은 바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생육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당년도 소출은 늘어나는 양 싶기도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발효의 공덕이다.

하지만 충분히 부숙되어 바로 흡수가 가능한 자원은,
단기간에 소비 되거나, 강우에 유실되기 때문에, 
밭엔 남겨져 축적될 여유가 없다.
이런 방식은 매년 긴장된 노력 투하가 따라야하며,
항구적인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난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관행농이든 유기농이든 이런 행태는 한 치도 다름없이 자행된다.
난 이런 짓의 추동력은 상당 부분 욕심에 기(基)한다고 본다.
물론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생존 현실의 구조적 한계,
그 때문에 벌어지는 슬픈 모습일 수도 있으리라.
이는 이 자리의 주제를 벗어나야 하니, 의론을 잠시 접어두자.

만약 저 청초라든가 수확 후의 작물 자체의 잔사물(殘渣物) 따위가,
밭에 자연스럽게 남겨져 있다면 어찌 될 것인가?
시간의 세례를 받아 천천히 발효되지 않겠는가?
일부는 식물에게 다시 취해질 것이며,
일부는 남아 밭에 유기물이 축적되어 갈 것이다.
이에 따라 년년세세 밭의 유기물 총량은 늘어가고,

땅은 폭신폭신 솜처럼 살아나 숨을 여유롭게 쉴 것이다.
미생물은 안정적인 그 터전에서 천년 삶을 꾸려 갈 것이다.
마치 숲처럼.

숲은 백년 된 것은 그 시간만큼,
천년, 만년 된 것은 그 역사의 무게만큼,
유기물이 축적되어 있으며 그 다음을 간단(間斷)없이 이어 간다.
그런데 여긴 단지 축적으로만 따질 수 없는 비밀스런 세계가 숨겨져 있다.
그 자리에 온갖 생령이 깃들어 저마다의 생을 구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때문에 거기 그 자리엔 천년 전설이 익어가고, 만년 신화가 서린다.

<周易>
小畜 亨。密雲不雨,自我西郊。

소축은 형통하니, 구름은 빽빽하니 짙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있는 서쪽부터 시작하리라.

주역의 소축괘는 풀이가 여럿이지만,
은(殷)의 주왕(紂王)을 주문왕(周文王)이 노리고 있는 장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自我西郊。

여기 자(自)는 영어의 from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자신이 있는 서쪽 교외로부터란 뜻이다.
오늘날은 은나라의 주왕은 대개 포악한 왕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본디 재주도 많고 총명한 왕이었다.
기실 독재자 치고 머리가 명석하지 않은 이는 없다.
아무리 전제군주 시대일지라도 머리가 따르지 못하는데,
패악질만 일삼다가는 오래지 않아 쫓겨나고 만다.
오래도록 이름이 난 폭군들은 대개는 머리가 비상하다고 보아야 한다.

密雲不雨

구름은 짙게 드리워 있는데 아직 비가 오진 않는다.

구름이 짙으면 비가 오련만,
아직 비가 오지 않음은 때가 아니란 말이다.

주나라는 조그마한 세력을 이끌 뿐,
아직 세가 충분치 못하다.
허나 태공망 즉 세칭 강태공을 초치하고,
백성의 인심을 사모아 잔뜩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충분치 않다는 의미이다.
자중할 일이다.

헌데 오늘날 밭에선 무슨 이리 벌어지고 있는가?
멀쩡한 청초도 멍키 통에 넣고 미생물 퍼부어 발효를 시킨다고 분주하다.
빨리, 많이 소출을 내어야 하니까,
자연의 시간을 거슬려 조그마한 통에서 시간을 빚내어,
욕심껏 질러가려 함이 아니더냐?

密雲不雨

대저 큰 비가 쏟아지려면,
구름이 짙어야 하는 법.

허나, 오늘 날의 농부는 당장 돈을 갈퀴로 긁어내길 원한다.
허니 청초도 있는 대로 긁어 모으고,
미생물도 한껏 쏟아 부어 무.엇.인.가.를 왕창 만들어,
밭에다 들이 붓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안치 않은 것이다.

허나 문왕은 나대는 아들 무왕을 지그시 누지르며,
아직 때가 아니라 타이른다.

初九:復自道,何其咎,吉。

초구는 돌아옴이 길로부터이니 무슨 허물이 되리, 길하리라.

수레를 몰아 앞으로 나아가 은나라 주왕을 거꾸러뜨리고 싶다.
허나 아직 때가 아니다.
돌아와 머무르다.
어찌 허물이 있으랴?
길하리라.

미생물로 발효시킨다고 욕심껏 나대지 말고,
자연스럽게 자연에 맡길 노릇이다.
한 해 두 해가 가면,
밭엔 유기물이 서서히 쌓여 가고,
그 안에 사는 미소(微小)동물은 저마다 분수껏 생을 영위한다.
그런 가운데 흙 속엔,
효소, 비타민, 호르몬, 부식 따위의 건강한 물질들이 풍부해지고,
청순한 기운이 감돌며 하늘가로 지피어 오르게 된다.
이 때라면 어찌 작물인들 편히 자라지 않으랴?

온축(蘊蓄)

속에 깊이 쌓아 놓음을 일컫는 말이다.
주문왕처럼 아직 밖으로 내놓지 않고 옷깃을 여며, 안으로 실력을 쌓아야 한다.

密雲不雨

여기 불우(不雨), 비가 오지 않음에 주목하면,
현대인처럼 매사 조급하니 분주한 사람이 된다.

허나, 밀운(密雲), 실력을 쌓아 감에 마음을 두게 되면
시간이 가며 뜻은 익어가고, 때가 이르게 된다.
종국엔 대우(大雨), 미우(美雨)가 자애로이 내려,
온 천하가 저마다 제 성명(性命) 대로 자라리라.

今以人蘊蓄其能,謂之藝者,如百穀之有種也。

사람이 재주를 안으로 깊이 쌓아 감을 예(藝)라 한다.
마치 백가지 곡식이 씨앗에 생명의 비밀을 간직하듯이.

겸손하니 시간을 응시하라.
시간을 욕심으로 재단하여,
비료와 농약, 미생물, 액비 따위와 엿 바꿔 먹지 말라.

난, 소망한다.
이 땅의 모든 밭이 천년 숲처럼 자연스럽게 숨을 쉬길.

미생물이니 액비니 하는 것을 애써 만들어 처넣으며,
바구니가 찢어지도록 소출 올릴 것을 원치 말라.
작물 잔사물을 밭에 돌려주고,
때를 기다리며 땅 스스로 그들의 역사를 일구도록 놔두라.

한 해, 두해 지켜보다보면,
밭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며,
거기 의지하여 살아가는 모든 생령들을 축복하리.

헌즉,

密雲不雨

구름이 짙게 모여들 듯,
때를 기다릴 노릇이다.

隨時之義大矣哉!

때를 따르는 뜻이 크도다.

오늘날은 시간을 축약하고, 역사를 거스르려 온 천하인이 혈안이 되어 있다.
도대체가 유기농이니 자연재배하려 하는 뜻은 어디에 있음인가?
그게 자연을 본받아 따르며 안심입명하고자 함이 아니라,
다만 관행농을 비웃고자 함인가?

허나 실상인즉 비웃고 있는 관행농과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소출을 많이 올리고자,
‘유기농’이란 말을 빌리고,
‘자연재배’란 옷을 훔쳐 입으며,
자신의 욕심을 채워,
허허벌판에서 깨춤을 추며,
세상을 속이고 있지 않은가?

곁에서 지켜보는 소비자, 이들 역시,
저들 농부들이 속여가며 살아가길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를 위해,
농부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방임하고 있지 않은가? 

난, 천하의 온 전장(田莊)이,
천년 숲처럼 넉넉하고 편안하여지길 소망한다.
美在其中
그 가운데 아름다움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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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 2014. 11. 25. 12: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