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공해
오늘 아침에 (아파트) 안내 방송이 들린다.
삼일절이니 국기를 달라는 내용이다.
전임 소장 때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안내방송을 해대더니만,
비리 때문에 물러나고 새 소장이 온 이후로는 방송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내가 신임 소장한테 주의를 주었다.
“방송이라는 게 아주 요긴한 것이나 하는 것이지,
별 일도 아닌 것 시도 때도 없이 하지마시라.
집안에 편히 쉬는 사람에게 폐가 되느니,
어지간하면 방문(榜文)으로 처리하라.”
전임 소장이 군출신이라고 하던데,
요령만 부리고 일은 거의하지 않았다.
매일 방송해대며, 나 일 열심히 합네 하는 시위용임을
내가 모르는 바 아니었으니...
그 자는 기어히 공금 횡령 등 갖은 비리를 다 저지르고 쫓겨나고 말았다.
신임소장이 와서는 이제 방송 없어도 아파트 관리가
여축없이 잘 돌아 가고 있다.
하지만,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온 것인지,
국경일에 국기 달라는 방송, 투표일 이라는 등의 안내방송은
빠지지 않고 잘도 해댄다.
국민동원시대도 아니고,
요즘같이 매체가 잘 발달된 세상에,
저런 류의 방송을 해대는 저들의 의식 수준이 난 못 마땅하다.
하지만, 저 정도라면 하고 그냥 참고 만다.
감히 어느 놈이 남 보고,
투표를 하라 마라 할 수 있음인가 ?
더욱이 관리소 직원이라는 게 아파트 주민 입장에서는
그저 피고용인에 불과한 자 아닌가 ?
무슨 대단한 감투를 썼기에 평온한 가정 거실까지 쳐들어와 불쑥,
마이크 들이대며 무엇을 하라 마라고 권할 입장인가 말이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가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게 하나 있다.
조례, 종례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학생들에게 전할 말들은 모두 榜으로 처리된다.
전할 말들은 모두 게시판에 공지하는 것으로 그만이다.
그래도 잘 굴러간다.
저놈의 안내 방송문화가 없어지는 날인즉, 곧,
모든 사람들이 제 주체적 인식과 행동으로 떳떳히 살고 있음의 징표가 되지 않으리.
편히 쉬는 내 집 거실에 들리는
별 볼일 없는 안내방송은 무지이자, 곧 폭력과 다를 바 없다.
***
오늘 오마이뉴스를 보니
☞ "시내버스 기사 라디오 틀면 벌점?” 이라는 제하에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기자의 논조는 은연중 이를 비판하는 듯 싶다.
버스라는 게 다중이 이용하는 곳이 아닌가 말이다.
거기 운전수 제 맘대로 라디오 틀 권리가 있는가 ?
게중엔 그날 몸이 몹시 아파, 만사 귀찮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저 어서 빨리 목적지에 가기 바쁜데,
라디오에서 뽕짝 음악소리가 흘러 나오면
여간 성가시고, 참고 들어내기 고역이다.
게중엔 조용히 눈을 감고 편히 쉬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물론, 라디오 소리를 즐길 사람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이를 싫어할 사람이 있을 수 있다라는 자각의 순간.
점잖은 사람은 함부로 라디오를 켤 수 없다.
이를 우리는 예의라고 부른다.
제가 듣고 싶으면, 방책을 세우면 된다.
운전기사라면 이어폰을 장만하여 듣거나, 말거나,
승객이라면 MP3를 장만하여 듣거나, 말거나.
이리 개별적으로 준비하면 된다.
이 복잡한 세상에 함께 살아 가려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도리”를 배워야 한다.
예의염치 !
옛로부터 예의염치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했음이다.
등산 길에서도,
염치없이 라디오를 크게 켜고 올라가는 이들을 만난다.
거기 싸구려 뽕짝이라도 흘러나오면 정말 기분이 확 잡친다.
저 한심한 노인네,
저 나이 먹도록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게 얼마나 악덕임을 배우지 못하였단 말인가 ?
저렴한 인간이 되는 순간이다.
난 소리로부터 탈출하고 싶다.
산이고, 버스고, 심지어 내 집 아파트 안에서도,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있고 싶단 말이다.
이게 그리 큰 욕심인가 ?
어이 구영식 기자 !
“재난 방송은 그럼 어찌 하라고 ?” 이리 걱정하셨는가 ?
재난이 매일, 매시 일어나는가 ?
그리 겁나면 해드폰 끼고 나다니시고,
잠 잘 때도 라디오 켜놓고 자시구려.
내 그러지 않아도 저기 글 하나( ☞2008/02/15 - [소요유/묵은 글] - 기우(杞憂) )
준비해놓은 게 있으니, 한번 읽고 가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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