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無私)
무사(無私)
내가 앞에서 잠시 인용한 천지불인(天地不仁)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보충해두고자 한다.
이것 자칫 잘못하면 불인(不仁)하다는 자귀에 묶여 오해를 하기 쉽다.
天地不仁,以萬物為芻狗;聖人不仁,以百姓為芻狗。
천지가 불인하다는 것은,
천지가 이성 또는 감정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령 A가 더 예쁘니까 더 챙겨주고, B가 미우니까 더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결국 이는 만물을 일시동인(一視同仁) 차별하지 않고 같이 아우른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불인(不仁)하다는 것은 인(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동인(同仁)으로 대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를 대인(大仁)이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성인이 불인하다는 것은,
백성들을 차별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시동인(一視同仁) 공평하게 대한다는 뜻이다.
천지는 호오(好惡)의 감정으로 사물을 대하지 않는다.
그러하니 연민을 가질 일도 없다.
다만 만물 스스로에게 맡겨 스스로 생하고 자라며 죽게 내버려 둔다.
기실 이러하자면 무사공평(無私公平)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천지불인(天地不仁)이란 곧 무사공평(無私公平)의 다른 표현으로 보아도 좋다.
불인(不仁)에서 불(不)은 인(仁)을 부정하는 표현이 아니다.
다만, 불인(不仁), 인(仁)의 차원을 넘은 상태를 이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 구속되지 않는다.
유신론적 세계관과는 판연히 다르다.
‘유신 천국, 불신 지옥’
이것은 분명 유인(有仁)의 모습이다.
헌데 유인은 역으로 증오(憎惡)를 예비하고 있다.
어질지 않은 자에겐 필연적으로 미워하고 징벌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신이 거기 있는데,
믿지 않는 녀석을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천지불인의 사상은 정치사회학적으로는 무위(無爲)의 담론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작위적(作爲的)으로 백성들을 규율하고, 예치(禮治) 따위로 번거롭게 인도하지 않는다.
예치가 한발 더 나아가면 법치(法治)로 나아가고,
창칼로 징벌하는 데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유인(有仁)의 끝은 아이러니하게도 종내는 정반대의 길에 이르른다.
왜냐하면,
인을 실현하자면,
인하지 않은 것을 쳐내고, 징벌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노자는 자연의 질서에 맡기고,
사람이 관여하지 않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天地任自然,無爲無造,萬物自相治理,故不仁也。
(王弼道德經注)
“천지는 자연에 맡기고,
일을 작위적으로 하지 않고, 지어내지도 않는다.
만물은 스스로 굴러간다.
고로 불인하다 한다.”
나는 최소 자연에 대하여는 이 사상이 옳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내가 농사를 지을 때도 역시 이를 따라,
무위(無爲) 농업을 지향한다.
소출을 더 내려고 비료 치고, 농약 뿌리고, 제초제 쏟아 붓질 않는다.
풀이 자라면 자라는 대로 내버려둔다.
다만 유목 시절엔 풀에 치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 도와준다.
할 수 있는 한 자연에 맡기려 노력한다.
하지만 사람 간의 일은 예치를 넘어 법치로 규율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여기 시골 땅에 와서 사람의 검은 마음을 너무도 많이 엿보았다.
증광석시현문(增廣昔時賢文)이란 아동 계몽서가 있다.
이것은 性本惡이라 사람의 본성은 본디 악하다는 것을 전제로,
인간 사회를 통찰한 글을 가르치고 있다.
몇 구절을 훑어본다.
畫虎畫皮難畫骨,知人知面不知心。
“호랑이를 그리고, 가죽을 그릴 수는 있지만 뼈다귀를 그리기는 어렵다.
사람을 알고, 얼굴 표정을 알 수는 있지만,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莫信直中直,須防仁不仁。
“정직함을 믿지 마라.
모름지기 사람의 어짐을 방비하고, 경계하라.”
山中有直樹,世上無直人。
“산 중엔 곧은 나무는 있어도,
인간 세상엔 곧은 인간은 없다.”
내 원래 이런 토막글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 아이 상대로 이런 성악설에 근거한 내용을 가르친다는 것이,
너무 신선하였다.
사람의 살림살이란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防仁不仁
사람들의 거죽 어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것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치면,
아이들이 악해질까?
天地는 不仁하지만,
인간은 유인(有仁)하다는 것을 동시에 가르친다면,
별로 염려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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