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寒林)과 이화(梨花)
한림(寒林)과 이화(梨花)
왕사성(王舍城)은 범명(梵名)으로 曷羅闍姞利呬(할라살길리혜, Rajagriha)라 하는데,
이는 제왕이 거처하는 곳이란 뜻이다.
왕사성은 불교 신자라면 친숙하게 듣는 말이다.
왕사성 남쪽에 있는 죽림정사는 인도 최초의 승원으로 유명하다.
나는 오늘 뉴스 하나를 접하고는,
왕사성이란 이름을 얻게 된 사연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대지도론(大智度論)에는 3가지 설이 적혀 있다.
有人言:「是摩伽陀國王有子,一頭,兩面,四臂。時人以為不祥,王即裂其身首,棄之曠野。羅剎女鬼名梨羅,還合其身而乳養之。後大成人,力能并兼諸國,王有天下,取諸國王萬八千人置此五山中。以大力勢治閻浮提,閻浮提人因名此山為王舍城。」
復次,有人言:「摩伽陀王先所住城,城中失火,一燒一作,如是至七。國人疲役,王大憂怖,集諸智人問其意故。有言:『宜應易處。』王即更求住處,見此五山周匝如城,即作宮殿於中止住,以是故名王舍城。」
復次,往古世時,此國有王名婆藪,心厭世法,出家作仙人。
(大智度論 龍樹菩薩造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이 중 두 번 째 설을 풀이하면 이러하다.
“마가다국 왕이 성에 주하고 있을 때,
성 안에서 불이 자주 나서,
한 번 불에 타버리고 나면 또 짓기를 일곱 번에 이르다.
나랏 사람은 노역에 지쳤다.
왕은 이를 우려하여 지혜 있는 이들을 모아 의견을 물었다.
‘마땅히 다른 곳으로 옮기소서.’
왕은 즉시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였다.
다섯 산이 성을 둘러싼 곳이었으니,
궁전을 즉시 짓기 시작하되, 도중에 머물렀다.
이에 왕사성이라 하였다.”
그런데, 대자은사삼장법사전에는 이와는 약간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次東北三四里至曷羅闍姞利呬多城(唐言王舍城)。外郭已壞,內城猶峻,周二十餘里,面有一門。初頻毘娑羅王居上茅宮時,百姓殷稠,居家鱗接。數遭火災,乃立嚴制,有不謹慎,先失火者,徙之寒林。寒林即彼國棄屍惡處也。頃之,王宮忽復失火。王曰:「我為人主,自犯不行,無以懲下。」命太子留撫,王徙居寒林。時吠舍釐王聞頻婆娑羅野居於外,欲簡兵襲之。候望者知而奏,王乃築邑。以王先舍於此,故名王舍城,即新城也。後闍王嗣位,因都之。至無憂王遷都波吒釐,以城施婆羅門。今城中無雜人,唯婆羅門千餘家耳。宮城內西南隅有窣堵波,是殊底色迦長者故宅(唐言星曆,舊云樹提伽,訛),傍又有度羅怙羅處(即佛子也)。
(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 沙門慧立本 釋彥悰箋)
내용인즉슨 이러하다.
성안에 화재가 잦았기에 엄한 법을 만들었다.
불을 낸 자는 한림(寒林)으로 이사 가게 하였다.
한림은 시체를 버리는 곳을 이른다.
그런데 얼마 후 왕궁에서 불이 났다.
왕은 말하길 내가 임금인데 스스로 죄를 범하고는 벌을 받지 않으면,
아랫사람을 징계할 도리가 없다.
태자에게 나라를 맡기고는 한림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자 비사리(吠舍釐, 毘舍離, Vaisali)왕은
빔비사라(頻婆娑羅, Bimbisara)왕이 바깥 야외에 거주하는 것을 알고서는,
습격을 하려 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낌새를 눈치 채고 아뢰니,
왕은 성을 축조하게 이른다.
이에 왕이 먼저 머무르니,
왕사성이라 이름하게 되었다.
대자은사삼장법사전의 내용이 더 실감이 나고 드라마틱하다.
내가 바로 이 한림을 떠올리는 것은,
이화여자대학교와 관련된 바로 아랫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노 의원은 "최씨의 딸은 2015년 1학기에 학사경고를 받고 2학기에는 휴학을 했다. 올해 1학기에도 수업에 불참해 지도교수에게 제적 경고도 받았다"며 "이에 최씨가 4월 이대에 방문해 국제대회 참가 등으로 출석이 힘든 점을 참작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교롭게도 이대는 올해 6월 학칙을 개정해 총장이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학점을 줄 수 있도록, 최씨 딸을 구제할 예외조항을 만들었다"며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출처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9/28/0200000000AKR20160928095252001.HTML)
왕조차 스스로 시체 버리는 한림으로 퇴거를 하였음인데,
이대는 학칙을 개정하여 일개 개인에 불과한 학생을 구제하려,
하였다는 의심을 받아야 하겠는가?
내가 학교 다니던 소싯적,
이대는 여자대학으로는 최고로 꼽았다.
그러함인데,
김활란(天城活蘭) 동상 철거를 둘러싼 분란을 일으키고도 모자라,
이젠 학칙까지 개인을 위해 고칠 정도로 윤상(倫常)을 무너뜨리고 있음인가?
내 소싯적 이대는 배꽃처럼 아름다운 이들이 모여 배움을 더하고,
진리를 탐구하던 곳이었다.
이제 이리 허망하게도 그 이름을 더럽히고 있음이니,
이는 그대들의 수치가 아니라,
실인즉 내 삼삼 칠칠한 기억을 잿빛으로 퇴색시키는 짓임을 알아야 한다.
내 축제 때 첫 미팅 상대도,
이대 여학생이었다.
고(高)씨였는데,
그이는 심장이 약하여,
숨이 고르지 않았었지.
아, 시간을 더해도 천지자연은 변함없이 아름다운데,
사람이 짓는 일은 이리도 누추하기 짝이 없구나.
가을바람에 가슴을 맡긴다.
짧은 계절의 숨소리를 듣는다.
여름과 겨울.
벌건 욕정과 검은 냉혹.
그 돌 틈 사이를,
가을바람이 아슬하니 지난다.
***
明主之國,官不敢枉法,吏不敢為私,貨賂不行,是境內之事盡如衡石也。
(韓非子 八說)
“밝은 군주의 나라는,
관이 감히 법을 구부리지 않고, 관리가 감히 사리를 도모하지 않아,
뇌물이 행해지지 않으니, 이는 국내의 일들이 저울질과 말질과 같이 극진하기 때문이다.”
枉法
법을 굽히고,
사리를 도모하면,
그 나라는 끝장이 나고 만다.
어찌 법을 제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음인가?
시민들이 발분(發憤),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