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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6. 10. 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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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가다 앞서 가는 차량의 모델 표식에 눈이 머무르다.

k9

내 잘 모르지만 그렇다면 저게 k1서부터 나아가 k9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의문이 하나 떠오른다.

저들은 k9 다음 모델로 k10을 꿈꾸고 있을까?


내가 예전에 ACDSee란 image viewer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의 경험이 여기 있다.

이게 version 1.0에서 2.0, 3.0으로 진화할 때,

이외에 당시 변변한 image viewer가 없었다.

하여 나는 version up할 때마다 쫓아다니며 열심히 새 것을 구했다.

그런데 이게 4.0 이상으로 변하자, 새로운 기능은 별 것도 없는데,

쫓아가며 구하는 수고가 아까와졌다.

더욱이 새 것을 구하고 난후, 매번 설치를 새로 하여야 하는데, 

이것 역시 번거롭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덩치는 나날이 커져 구동에 부하만 걸리고,

image viewer라 이미지를 보기만 하면 족한 것을,

새롭게 채비되었다고 자랑하는 기능은 내겐 별로 쓰임이 없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가볍고,

image viewer로서의 기능도 충분한 다른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것은 간출하여 설치에 부담이 없었다.

이게 Xnview란 프로그램인데,

당시엔 무료판도 있고, 유료판도 있었는데, 

요즘 어떤 보급 정책을 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수년래 version 2.10에 머무르고 있으며 다음을 탐하지 않는다.


ACDSee 이게 version 차수가 높아지자,

덩치가 사뭇 커져 download 받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문어발 식으로 이것저것 기능이 덧붙여지는데,

image viewer로서의 고유 영역 밖으로 우주 유영을 하고 있는 폭이 되었다.

이 지경이 되어버리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급히 식어갔다.


image retoutch 프로그램으로선 PhotoShop이란 전문 프로그램이 있으니,

ACDSee가 껴넣고 있는 이런 image editor 기능은 성에 차지 않았다.

현재 adobe사에서 인수한 것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bitmap and vector graphics editor로선 Fireworks,

vector graphics editor로선 Illustrator가 있으니,

일개 image viewer로서 이런 기능을 흉내낸들,

위와 같은 전문 프로그램을 당할 재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ACDSee와 진작에 결별을 하였다.

이젠 그저 간단한 Xnview를 사용할 뿐이다.


자동차를 두고 말한다면 k9,

삼성 스마트폰을 가지고 말한다면  노트 7

이런 모델명에 붙은 version no는 대개 9에 이르면,

기능 역사 발전 단계 상 포화(saturation)에 이르게 된다.

차면 넘치게 되고, 그러면 필경 대폭적인 변개(變改)가 일어나거나,

이차원(異次元)의 세계로 나아가 신천지와 대응(對應), 대적(對敵)하여야 한다.


하지만 10, 11 ... 따위로  자체 진화를 지속하는 경우도 현실의 세계에선 존재한다.

수리철학(數理哲學) 관점에서 보자면 9(九)는 극(極)을, 열(十)은 완성을 의미한다.

10은 9를 거쳐 온 것이니, 

10을 내세우는 순간 앞전의 9, 그 구극(究極)을 스스로 부정하는 게 된다.

그런즉 9에 멈춤이 도리를 알고, 욕심을 삼가는 자세라 하겠다.

새 술은 새 부대에란 성경의 말씀처럼 이쯤이면 새 판을 짜는 것이 마땅하리라.


10은 기실 완성을 의미하지만, 10에 1과 0이 동시에 보이듯,

유가 무를 함태(含胎)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0쯤에 이를 정도면 대개는 새로운 모델명을 채용하여,

다른 경계로 나아가게 된다.

아니라면, 그럼 이제껏 열 번이나 판을 갈았음인데,

아직도 더 갈아낼 것이 남아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모델은 자신이 여전히 부실함을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9에서 그침은 이제 더 이상 고칠 것이 없다는 선언임이니,

이는 자존을 지키는 일임과 동시에,

지난 세월에 대한, 그리고 관여한 모든 사람들, 나아가 기술, 상품, 소비자,

이 모두를 향해 감사와 겸손을 표시하는 의식(儀式)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세상과의 결별을 뜻하며,

아울러 새 세상으로 도전과 모험을 의미하게도 된다.

저들과 이제껏 함께 한 객(客)들은,

여기서 저들의 과거에 대한 성실함과 미래의 비전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故新浴者振其衣,新沐者彈其冠,人之情也。

(荀子)


“고로, 새로 목욕한 사람은 그 옷을 털어 입고,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그 관을 털어 쓰는 것은,

사람의 일반적인 성정이다.”


version이 열에 이르렀음인데,

그 이상을 고집하는 것은 목욕을 하고서도,

입던 옷을 털지도 않고, 다시 입는 것과 같은 이치임를 알아야 하리라.


만약, 지난 것에 매이면, 사람이 추레해지고, 

대하는 사람은 지루함을 느끼게 되거나 나아가 지겨워하게 된다.

이 어찌 경계할 일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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