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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소요유 : 2016. 10. 24. 18:17


농장이 있는 시골 동네.

차량으로 2~3분 상거(相距) 되는 곳에 전곡중고등학교가 있다.

원래 그리 붐비는 곳이 아니었는데,

차츰 집들이 하나, 둘 들어서더니만,

요즘엔 길 양변이 주차하는 차량으로 상시 점령되어 있다.

여길 지나려면 잔뜩 긴장하며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


온 동네 집들의 차량이 나와 도로를 개인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주차금지 구역임을 나타내는 표식이 도로가에 새겨져 있지만,

이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닿지 않는다.


내가 행정 담당 공무원에게도 이르고,

때론 불법주차 차량 주인에게 직접 타이르기도 하였으나,

이런들 앞일이 달라질 것을 기약할 수 있으랴?


얼마 전 농장에 들른 이웃 이장에게도,

이야기 끝에 이를 지적하며 도리를 찾아 처치를 하지 않는,

도로 교통 행정 당국의 안일함을 탓한 적이 있다.


그러함인데,

지지난 주 게를 지나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문제의 지역 조금 벗어난 초입 도로 한 가운데에, 차로 중앙 분리봉이 좌르르 박혀 있었다.

아, 그러함이니 차들이 주차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주차를 하면 도로가 막혀 차량이 통과를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이 단순한 작업 하나로,

일거에 문제가 해결되고 만 것이다.

허나, 정작 불법 주차가 극심한 곳을 빗겨나 있으니,

저것은 봐주려 함인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다시 농장을 가게 되었는데,

드디어 문제의 그곳까지 분리봉이 마저 설치가 된 것이다.

이젠 전곡중고등학교 근방은 훤히 뚫려 차량 소통이 원활해졌다.

실로 수십 년 만에 당국이 나선 것인데,

누군가 좋은 안을 내놓은 것인지 몰라도 크게 상찬하고 싶다.


하지만, 그 윗 길, 분리봉이 되어 있지 않은 쪽으로 주차 차량이 옮겨져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어찌 될 것인지 확실해질 것이다.

하지만, 옮겨 가려도 자신의 집과 멀어지면 주차하려는 유인력은 약해질 것이다.


시스템(system)


사람의 선악을 시비하기 전에,

시스템을 채비하면 고질적인 문제가 절로 풀리곤 한다.


예전 은행이나 관공서를 가면,

창구에 사람들이 몰려 힘이 센 놈이거나, 염치를 팽개친 인간들이,

앞 사람을 밀치고 대들어 일을 빨리 끝내곤 하였다.

하지만, 대기 번호표 제도가 도입되자,

사람들은 유순하게 되어 앞을 다투지 않게 되었다.

이는 순서대로 일을 처리 될 것을 믿기에,

앞일을 불안해하거나, 서두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선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좋은 시스템 안으로 사람들이 포섭되었을 뿐인 것이다.


여기서 하나 더 지적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은 대기행렬이론(Queueing theory)에 따른 복잡한 이론을 소개할 계제가 아니라,

내 개인적인 경험 하나를 말하고자 한다.

예전에,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모대학교 병원 각과 진찰실 앞은 장사진을 치고,

환자들이 복도에서 서성거렸다.

이것 치료 받으러 와서는, 자기 차례 기다리다가 몸이 외려 축날 형편이다.

진료 차트가 안으로 들어가기는 하나,

저게 과연 순서대로 집행될 것인가도 의심스럽고,

언제 자기 차례가 올지도 몰라,

환자들은 잔뜩 긴장하여 밖에서 귀를 세우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번호표를 주기 시작하였다.

이제껏, 이 간단한 것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병원 당국이란 참으로 게을렀다.

그래서 저 인간들이  이젠 정신을 차렸구나 싶었다.

헌데 순번은 부여 받았지만,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올는지는 잘 알기 어려웠다.

간호사들이 이름을 부르긴 하는데,

이게 몇 번인지 알 수가 없으니,

도대체 번호는 왜 만들었단 말인가?

내가 곁에서 지켜보다 간호사에게 충고를 하였다.


대기 순번제를 시행하는 것은 만시지탄이나 잘한 노릇이다.

허나, 대기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제대로 알기엔 아직 부족하다.

자신이 지금 어디쯤 서있는지 알려면 무엇인가 가늠할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 상태를 공시(公示)함이 우선이다.

이름을 부를 것이 아니라, 번호를 부르면,

그것과 비교하여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알 수 있게 된다.


대기행렬의 복잡한 이론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상태에 대한 외부로의 공시, 공지가 따르지 않으면 절름발이가 되고 만다.


어쨌건,

중앙 분리봉 하나 설치함으로 인해,

그동안 공연히 멀쩡한 사람들의 시간과 정력을,

무단히 절취한 저들 불법 주차 차량의 폭거가 종식되었음이다.


國無常強,無常弱。奉法者強則國強,奉法者弱則國弱。

(韓非子)


“국가란 항시 강한 것도, 항시 약한 것도 아니다.

법을 받드는 자가 강하면 나라가 강해지며,

법을 받는 자가 약하면 국가도 약해진다.”


여기 국가란 말은 맘에 차지 않는다.

하지만, 전제국가 시절의 사상이니,

이를 오늘 날의 문법에 바꿔 맞추면 될 일이다.

가령 시민 개개인의 행복쯤으로 바꿔 새겨도 가하리라.


난 도대체가, 애국하라든가, 애국가를 부르라든가, 국기를 달라고 하는 자를 의심한다.

이제껏 이리 주장하는 자들을 보면,

이게 진정 나라를 위한 것인지 아닌지 불명할 뿐더러,

제 사인의 권력에 봉사하라고 이끄는 말이거나,

붕당질에 여념이 없는 축들이 제 당에 이익이 될 때,

이런 말들로 사람을 꾀고, 윽박지르곤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국가란 도시 애매모호한 것이라,

개개인의 삶이 행복해질 때, 나라가 충실해지며, 절로 나라를 지킬 마음도 생기는 것임이라,

개인의 삶보다 실체도 불분명한 저것이 우선일 이유도 없다.


헌즉, 애국이란 목적이나 목표가 아니라,

결과일 뿐인 것임이라,

본말을 전도시키는 저 말에 나는 저항한다.


만약 내가 독립운동을 한다면,

나라를 걱정하는 데, 앞서 내 양심, 양지(良知)의 부름에 응할 따름이지,

애국을 앞세워 행동에 나설 일은 아니다.


따라서 저 한비자의 말은 이리 돌려 해석하고자 한다.


“선량한 양심을 잘 지키는 자가 많으면,

사회가 건강해지고, 개인의 삶이 복되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어지러워지고, 개인의 삶은 피폐해진다.”


主施其法,大虎將怯;主施其刑,大虎自寧。法刑狗信,虎化為人,復反其真。

(韓非子)


“군주가 법을 펴면, 호랑이도 두려워 할 것이며,

군주가 형을 집행하면, 호랑이도 얌전해진다.

법과 형이 개의 믿음에 가해지면,

호랑이가 사람이 되어, 

참 모습으로 돌아온다.”


불법 주차를 하며, 안하무인으로 공익을 해치고, 사익을 취하던 무리들은,

법과 시스템이 제대로 동작하면, 이제 짐승의 마음을 버리고 참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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