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훼예(毁譽)

소요유 : 2016. 9. 29. 19:38


지난 일요일 농장에 한 분이 방문하셨다.

서울 분인데, 여기 시골에서 펜션을 경영한다.


그는 내가 하는 짓을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지 얼추 알고 있다.


내가 풀의 공덕에 대하여 몇 마디 풀어내놓자,

대뜸 내게 강사로 나서란다.

암 환자를 모아 자연식으로 식생활을 하게 하고,

텃밭에서 자연 재배를 하며, 함께 사는 단체를 꾸리려 준비하고 있다 한다.

이미 집 세 채를 지어놓고 있는데, 

이를 기획하며 미국 모 단체를 다녀왔다고 한다.

이 분은 그간 내게 여러 사업 계획을 수 차 털어놓고는 협조를 구한 적이 있는데,

이제껏 한 번도 제대로 사업을 꾸린 적이 없다. 

워낙 바삐 사시는 분이다.


往者不追,來者不拒。


그러거나 말거나,

가는 자 소맷자락을 붙든 적이 없고,

오는 자 막은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분 말씀이,

사람마다 각각이라 비아냥거리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란다.

만약 강사로 나설 때, 

혹여 청중 가운데 투덜거리는 이가 있을 것을 염려하는 말씀이리라.


내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들려주었다.

오늘 이글의 주제 말씀이다.


1. 유가(儒家)

子貢問曰:「鄉人皆好之,何如?」子曰:「未可也。」「鄉人皆惡之,何如?」子曰:「未可也。不如鄉人之善者好之,其不善者惡之。」

(論語)


“자공이 여쭙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말씀 하시다.


‘좋지 않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면, 어떠합니까?’


‘좋지 않다.

선한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착하지 않은 자들이 그를 싫어함만 못하다.’”


여기 未可也를 나는 그저 좋지 않다고 역하였는데,

이는 不好라 하여도 좋다.

마땅치 않다, 옳음에 미치지 못한다. ....

한편, 惡이 아니고 未可 또는 不好라 함도 음미할 만한 표현법이다.


칭찬 일색이거나, 전무하거나 한 사람은 모두 현자가 아니다.

선한 이는 칭찬하고, 선하지 않은 이는 비난하니,

칭찬과 비난이 반반인 사람이야말로 현자이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 공자가 혹 현인을 가려낼 수는 있겠지만,

발화자(發話者) 그 당자(當者)인,

칭찬을 한 사람을 선하다 이르거나,

비난을 한 사람을 선하지 않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

혹여 칭찬한 사람이 착하지 않다거나,

비난을 한 이가 선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여기까지는 미혹에 빠져 잘 가리지 못한다.


게다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하여,

선하지 않다거나, 현인이 아니라 단정하는 태도도 위험하다.


2. 기독교(基督敎)

세상에 예수처럼 안티가 많았던 이가 또 있었을까?

종내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하셨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았고, 

대제사장은 예수를 처형하는데 앞장선다.


그 해의 대사제인 가야파가 그 자리에 와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그렇게도 아둔합니까?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이 말은 가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을 한 셈이다. 

그 예언은 예수께서 유다 민족을 대신해서 죽게 되리라는 것과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죽는다는 뜻이었다.

그 날부터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요한복음 11:49-53)


예수가 비난과 압제에 굴복한다면,

세상은 진작 악으로 덮였을 것이다.


3. 佛家

宮城北門外有窣堵波,是提婆達多與未生怨王放護財醉象欲害佛處。此東北有窣堵波,是舍利子聞阿濕婆恃苾芻說法證果處。次北不遠有大深坑,是室利毱多(唐言勝密)受外道邪言,以火坑、毒飯欲害佛處。次火坑東北山城之曲有窣堵波,是時縛迦大醫(舊曰耆婆,訛也)於此為佛造說法堂處。

(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 沙門慧立本 釋彥悰箋)


“궁성 북문 밖에 탑이 있으니,

데바다타(提婆達多)가 미생원왕(未生怨王, 阿闍世)과 더불어 호재(護財)란 취상(醉象),

즉, 술 취한 코끼리를 풀어 부처를 죽이려 했던 곳이다.

여기 동북쪽에도 탑이 있으니,

사리자(舍利子)가 아습바시(阿濕婆恃, 馬勝) 비구승의 설법을 듣고 깨우친 곳이다.

여기 북쪽 멀지 않은 곳에 깊고 큰 구멍이 있다.

이는 실리국다(室利毱多, 勝密)가 외도(外道)의 사언(邪言)에 빠져,

불구덩이와 독반(毒飯)으로 부처를 해치려 했던 곳이다.

다시 불구덩이 동북 산성 구비처에 탑이 있다.

지바카(時縛迦, Jivaka)란 의사가 부처를 위해 설법당을 만든 곳이다.”


부처는 사촌인 데바다타의 시기와 질투심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기까지 한다.

道高魔盛,逆順萬端

도가 높으면 마가 성하고,

온갖 사단이 벌어진다.

부처라 할지라도 이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함인데,

우리 같은 범인이 세상의 훼예(毁譽)에,

크게 구애(拘碍) 받을 게 무엇이 있겠는지요?“


이리 말해주었다.

내가 이리 의젓한 듯 말을 하고 말았으나,

기실 나는 온라인에서 크게 논쟁을 벌이곤 한다.

이것 제법 재미가 있다.

지금은 내 블로그외 어디 밖으로 나들이를 하지 않으니까,

별반 시비가 생기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는 시비곡직을 밝히자고 남과 상대를 한 적이 몇 차 있다.


허나, 오프 라인 상 모임이라면,

더구나 남의 사업 장소라면,

좀 참고 겸양하는 수밖에.


이거 영 재미없겠구나.


(餘滴)


自此東南行九百餘里,至羯羅拏蘇伐剌那國(東印度境)。伽藍十餘所,僧徒三百餘人,學小乘正量部法。別有三伽藍,不食乳酪,此承提婆達多遺教也。

(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 沙門慧立本 釋彥悰箋)


“이로부터 동남으로 9백 여리를 가면, 갈라나소벌랄나(羯羅拏蘇伐剌那國) 나라에 이른다.

가람이 십여 개, 300여 승려가 있고, 소승의 정량부(正量部)를 배운다.

이 밖에 3 개의 가람이 있는데, 유락(乳酪 )을 먹지 않는다.

이는 데바다타(提婆達多)의 유교(遺教)를 믿기 때문이다.”


세간엔, 데바다타와 관련된 야릇하며 흥미로운 이야기가 돌아다닌다.

‘부처와 교설이 다를 뿐, 세가 여의치 않아 밀렸다.

데바다타를 흉한 이로 꾸미는 것은 승자에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내가 깊게 연구를 하지 않았은즉 함부로 말할 입장이 아니다.


유다 역시 야릇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소위 유다 복음서엔,

‘유다의 예수 배반'이 사실은 예수가 인류 구원이라는 지상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 유다와 미리 모의한 것으로 쓰고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B%8B%A4_%EB%B3%B5%EC%9D%8C%EC%84%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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