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환공과 박근혜
제환공과 박근혜
내가 오늘 북한산을 오르는데 지나던 할머니 하나가 내게 말을 부려놓는다.
저기 강아지가 울고 있는데 누군가 버렸는가 보다.
이 말을 듣고는 그리로 다가가 살펴보았다.
도복(倒伏)된 나무를 잘라 개울 변(邊) 한 군데 쌓아놓은 곳이 있다.
나무 더미 속에서 강아지 소리가 들린다.
참 난감한 일이다.
왜 그런가?
대개는 국립공원 당국에 신고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한 것이어야 한다.
당국이야말로 공원 관리의 책임 주체가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아마도 저들은 동물구조단에 되넘겨 처리를 하고 말 것이다.
왜인고 하니, 현재 저들은 스스로 이를 해결할 채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리 되면, 저 강아지의 명운은 실로 풍전등화라, 위험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저들은 잠깐 보호하다가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 시키고 만다.
이게 작금의 슬픈 현실이다.
이거 신고하였다한들 강아지를 구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내가 애써 사지로 몰아넣는 결과가 초래되리라.
그러니까 공원에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물리적으로 없애는 단순 공원 행정 처리에,
내가 부조를 하였을 뿐,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애초의 뜻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하니 차라리 신고를 하지 않고 놔두는 것이 외려 나은 방책이 될 수도 있다.
지나는 등산객이 먹이를 챙겨줄 수도 있기에,
그런 가운데 공원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저 아랫동네 험한 꼴을 당하며 사는 친구들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내가 어떻게든 구조하여 키우는 것이다.
이런 결정은 내 개인적인 수용 조건을 더 점검해 보아야 한다.
지금 농장엔 서울에서 데려온 길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녀석들을 돌보느라, 일이 없어도 3일에 한 번씩은 시골 농장에 들르지 않을 수 없다.
살면서 동물들과 인연을 지으려 하여 지을 때도 있지만,
원하지 않았음에도 不忍이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짓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매양 생기는데,
어이 하여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행정 처리 체계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 북한산에 살면서 해마다 이러한 사례를 수 차례 겪지만,
행정당국의 규범이나 규칙에 입각한 처리나, 적극적 실천 의지를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개개 시민이 마음 아파하며 감당할 뿐,
우리 사회는 법률적 규율 체계가 아직도 미비하며,
행정 당국의 집행내지는 개선 의지 역시 박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아래에서 말하겠지만 이 역시 한 마디로 법치(法治)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강아지 저 녀석을 어찌 할 것인가?
내겐 또 하나의 숙제가 생겼다.
이제, 강아지 이야기는 그만 하거니와,
저 등산객을 만나기 전에,
산을 오르며 불현듯 떠오르던,
생각 하나를 여기 간략히 적어 두고자 한다.
춘추오패(春秋五霸) 중 으뜸으로는 제환공(齊桓公)을 꼽는다.
오패는 사기(史記)에선 齊桓公, 秦穆公, 晉文公, 楚莊王, 宋襄公 이리 꼽는다.
하지만 齊桓公을 제한 나머지 넷은 출전에 따라 다른 이를 내세우기도 한다.
가령 순자(荀子)에선 齊桓公, 晉文公, 楚莊王, 吳王闔閭, 越王句踐 이리 본다.
백호통(白虎通)에선 齊桓公, 秦穆公, 晉文公, 楚莊王, 吳王闔閭 이리 달리 본다.
그렇지만 齊桓公만은 다른 어떠한 책에서도 빠지지 않고 꼽을뿐더러,
제일 으뜸으로 취급하는데 있어 한결 같다.
거슬러 올라가면, 제양공(齊襄公) 말년에 국정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공자 규(糾)와 소백(小白)의 서로 왕권을 다투었는데,
종국엔 소백(小白)이 이겨 왕권을 거머쥐게 된다.
이가 곧 제환공이다.
원래 관중(管仲)은 공자 규를 섬겼지만,
소백을 섬긴 친구 포숙아(鲍叔牙)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소백 진영으로 넘어오게 된다.
관중은 제환공의 신임을 얻어 제나라의 재상이 된다.
관중은 당시로선 제일 지혜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관중은 나랏일을 맡자,
大司行, 大司田, 大司馬, 大司理, 大諫之官 등 오관(五官)을 두었는데,
이들은 각기 外交, 經濟, 軍事, 刑法, 監察을 담당한다.
내가 이리 애써 새기고 있는 것은,
이로써 당시 일반화된 세습 관리들의 권력을 제약하고,
왕권 중심으로 재편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그는 정전제를 폐지하고, 토지 사유화를 인정하며,
세제를 개편하였고, 상업을 장려하는 등 사회 제도를 크게 변혁하였다.
이를 관중변법(管仲變法)이라 하는데,
변법(變法)이란 곧 이제까지의 법과 제도를 크게 바꾼다는 것을 지칭한다.
이리 혁신하여, 중국문화의 기틀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게,
정치역사학계의 일치된 평가다.
일찍이 공자는 관중을 두고, 管仲之器小哉! 이리 말했다.
즉, 관중은 그릇이 작다 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 편 微管仲,吾其被髮左衽矣。이리 말하기도 하였다.
즉, 관중이 없었다면, 나는 머리 풀고 오랑캐 옷을 입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 左衽이란 옷깃을 좌로 여민다는 뜻으로, 이는 당시 중국 문화와는 반대이니,
오랑캐 풍속을 일컫는 것이다.
하니까 공자가 보기에 관중은 사상적으로는 마뜩치 않았으나,
정치 행정적으로는 그 능력의 뛰어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본디 관중은 법가(法家)에 가까워,
공자와는 그 가는 길이 달랐다 하겠다.
제환공은 관중을 믿고,
음주가무를 즐기고 색을 밝히며 마음껏 행동하였지만,
워낙 관중의 정치, 행정력이 뛰어나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관중이 죽자 난이 일어나고 만다.
여기 제나라 그 마지막 장면을 잠시 훑어보자.
刁蒞事三年,桓公南遊堂阜,豎刁率易牙、衛公子開方及大臣為亂,桓公渴餒而死南門之寢、公守之室,身死三月不收,蟲出於戶。
(韓非子)
“수조가 정무를 본지 삼 년,
제환공은 남쪽 당부 땅을 유람하였다.
수조는 역아, 위공자 개방 그리고 대신을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켰다.
제환공은 목이 마르고 굶주린 채,
남문의 침전에 연금된 채 죽었다.
시신을 3개월 동안 거두지 않아 구더기가 문 밖으로 기어 나왔다.”
사실 바로 이 장면을 연상하며,
나는 박정권 세력들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16:10경이나 되어서야,
탄핵소추 안이 가결된 것이었건만,
난 친박이 폐족이 되었다는 언론들의 평 이전에도,
저들의 형편이 바로 이 제환공 짝이 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수조는 제환공이 여색을 밝히는 것을 알자,
스스로 불을 발라 까고 내시가 되었으며,
역아는 재환공이 아직 맛보지 못한 것이 사람 고기라 하자,
제 자식 머리를 삶아 바쳤다.
개방은 본디 위나라 공자로서 제에 와서 환공을 섬겼으되,
십오 년 동안 한 번도 제 부모를 뵈러 가지 않았다.
환공이 관중의 충고를 무시하고,
관중 사후에, 이런 위인들을 가까이 하더니만,
종국엔 이리 처참한 말로를 걷게 되었다.
춘추오패 중 으뜸으로 꼽는 제환공이었지만,
충신 관중의 말을 무시하고 수조, 역아 따위처럼,
아랫도리 핥으며 아부하는 이들만 골라 중용하더니만,
종국엔 이들에 의해 연금을 당하고 굶어 죽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를 누나로 부른다며 뻐기며 그의 위광을 업었던 자들,
문고리 삼인방이니, 비선 실세니, 기춘 대군이니 하며,
그의 주변엔 난다 긴다 하는 이들이, 그야말로,
東湧西沒, 西湧東沒, 南湧北沒, 北湧南沒, 邊湧中沒, 中湧邊沒임이라,
육방(六方)에서 출몰하며 난리를 쳤었다.
이들이 제대로 된 인사들이었다면,
박근혜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별론으로 하되,
이 지경으로 속절없이 허물어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헌데, 해가 저물자,
이들은 마치 돌 주워내자 흩어지는 가재 떼처럼,
제 각기 제 살길을 따라 도망을 가고 마는구나.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란 이리도 허망한 것이다.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이 없어지면, 그냥 허물어지고 만다.
관중이 죽자, 법치 역시 따라 사라지고,
수조, 역아 따위의 간신들에 의한 인치가 판을 치게 된다.
인치가 성공하려면, 군주가 총명하거나, 신하가 관중처럼 지혜가 뛰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가 되면 오늘날 바로 목격하는 난리가 나고 만다.
반면, 법치가 확립되면, 군주나 신하가 설혹 범용(凡庸)하더라도,
별 무리 없이 질서가 잡히고 나라가 굴러갈 수 있다.
아래에서 다시 살펴 볼 것이지만,
현명한 이가 나오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우리 사회는 법은 있지만,
그 규범력, 규율력이 권력자 아래에 놓여 있곤 한다.
특히 범용하거나 용렬(庸劣)한 이가 권력을 잡게 되면,
법이 자의로 해석되고, 권한을 뛰어넘은 짓이 마구 저질러진다.
이럴 경우 이를 바로 잡고자 나서는 이는 갖은 견제와 수모를 받게 되며,
거꾸로 간신들은 한 몫 잡으려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게 된다.
우리는 오늘 이 현장에 살며, 눈앞에서 바로 목격하고 있다.
이번에 대통령의 중대한 범법 사실이 드러났으면,
법적 절차에 따라 지체없이 탄핵소추를 하여야 했음에도,
여권은 물론이거니와, 야권 인사들 중에서도,
별별 해괴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앞에서 거론한,
‘자진 하야 하면 명예를 보장하겠다’는 말이다.
(※ 참고 글 : ☞ 근애필주(近愛必誅))
인치는 누가 보아도 옳지 않다.
하지만, 흔히 유가의 덕치(德治)와 법가의 법치(法治)를 두고도,
무엇이 우월하냐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유가가 말하는 덕치는 기실 신분 계급 질서를 전제로 하고 있다.
군주가 백성의 민심을 얻고, 이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선,
덕과 인으로써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以力服人者,非心服也,力不贍也;以德服人者,中心悅而誠服也,如七十子之服孔子也。
(孟子)
“힘으로써 사람들을 복종시키면,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힘은 충분치 않다.
덕으로써 사람들을 복종시키면, 마음에서 우러나 진심으로 기뻐하며 복종한다.
70여명의 제자가 공자에게 복종한 것과 같다.”
법치는 본질적으로 사람을 신뢰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말을 더 잇기 전에 여기 한비자의 말을 먼저 이끌어 둔다.
夫聖人之治國,不恃人之為吾善也,而用其不得為非也。恃人之為吾善也,境內不什數;用人不得為非,一國可使齊。
(韓非子)
“무릇 성인의 나라 다스림엔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착한 일을 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악한 짓을 하지 못할 도리를 찾는다.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착한 일을 기대한다 하여도,
나라 안에서 열 건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대신 (법으로써)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한 나라를 가지런히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누구보다 덕이 뛰어나고, 지혜가 뛰어나,
그 위계로써 다른 사람을 복종시킬 것을 꾀하거나,
덕이나 지혜가 뛰어난 사람을 구하지도 않는다.
이에 대하여는 나의 앞선 글을 참고함이 좋겠다.
사실 오늘날 민주 사회에선 누가 누구보다 더 잘나고 못난 것이 아니라,
다 잘나, 저마다 재주껏, 개성껏 살아간다.
또 이것을 존중하며 평등하게 보장해준다.
하지만, 사회 질서와 안녕을 위해 미리 정한 법을 위반하면,
그 누구라도 가차 없이 규율한다.
그러니까, 선하다 악하다를 따질 일도 없다.
덕이 많다, 적다도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빈부, 귀천도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들은 법 아래 평등하다.
이것을 보면 제가(諸家) 중에서 법가야말로 근대 이념에 제일 가깝다.
법이 정한 테두리를 넘지만 않으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살며, 그리고 평등하게 존중 받는다.
당시의 강고한 신분 계급적 질서까지 허무는 상당히 진보된 이념이라 하겠다.
나아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경제적 계급 차별, 기득권 부패를 규율할 수 있는 것은,
덕치로선 가당치 않은 일이고,
오로지 법치라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덕이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이를 중심 가치로 선양하며, 사회 통치를 하는 것은,
오늘날처럼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며, 이해가 교차하는 사회에선 기술적으로도 어렵다.
게다가 개인의 인격과 양심을 외려 제한하는 소이가 될 수도 있다.
덕과 같은 추상적 가치로 개인을 규율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사람의 양심이란 개인적인 것이라,
함부로 외부에서 그 형성과 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이를 선언하고 있다.
(※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인치는 제일 나쁘다.
오늘의 최순실 게이트처럼,
자신의 측근이라 봐주고, 법을 넘어, 사익을 추구하며,
타자의 정당한 권익을 침해한다.
탄핵 통과이후, 이젠, 정말로, 원하거니와,
법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사회가 튼튼하게 구축(構築)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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