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롱(賣弄)
오늘, 문득 한 글귀를 떠올린다.
而親近倖臣,未崇斷金,驕溢踰法,多請徒士,盛修第舍,賣弄威福。道路讙譁,眾所聞見。地動之變,近在城郭,殆為此發。
(後漢書)
이 글은 양진(楊震)이 황제에게 간하는 글이로되,
간신들이 황제의 총애를 믿고, 교만하고, 법을 무시하며 별 짓을 다 저지르고 있으니,
지진이 이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빗대고 있는 것이다.
이중, 특히,
賣弄威福。道路讙譁
이 글귀는,
위세와 복을 팔며, 자랑하기 바쁘니,
길가에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가 가득하다는 뜻이다.
매롱(賣弄)이란 말은 요즘 잘 사용하지 않지만,
현대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듯,
예전에 곧잘 사용하던 말이다.
사전에 따르면,
‘뇌물을 받고 권리를 파는 따위로 농간을 부리다.’라 풀이 되어 있다.
하지만,
賣弄이란 자의를 자세히 따져보면,
사전의 표면적 풀이 외에,
숨겨진 깊은 뜻을 건져 올릴 수 있다.
賣는 본디 으스대며, 자랑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弄은 상대를 멋대로 놀리며, 깔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賣弄威福은,
잔뜩 위세를 부리고, 복을 팔지만,
이게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하여 그리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내게 보탬이 되지 않는다든가, 필요치 않으며,
언제고 마음이 뒤바뀌어 도리어 해를 끼치게 될는지 알 수 없다.
威福은 威와 福이니,
구체적 현실 세계에선,
곧 관직과 재물로 대표된다.
주위 사람에게 관직을 높여주고, 재물을 푸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을 것도 없이 수족처럼 부리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작금의 정치 현실을 보라.
남재준, 김관진, 故변창훈, 故정씨, 방송사 대표 등등을 보면,
이 모두는 威福의 제물이거나, 示威와 降福의 주체인 것이다.
하지만, 그 정점을 거슬려 올라가면 당시 정권의 꼭짓점에 位한 자가 있음이다.
이 모두는 賣弄하고, 기꺼이 威福에 阿諂하던 이에 불과하다.
賣弄은 때론 위세를 부리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저 체면을 차리며, 생색을 내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체면을 차리고, 생색을 낼 때는 잠시 우쭐해질 수 있다.
하지만, 대개 범인(凡人)은 남에게 복을 나눠주고, 도움을 주는 데엔 한계가 있음이라,
저들은 일정 선을 넘는 정도까지 부담을 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부담을 견딜 정도를 넘어선다면,
체면을 차릴 이유가 없어진다.
체면이나 생색은 어디까지나,
철회하기 직전까지의 피로 한계가 있는 것이다.
賣弄은 바로 이런 경계 선상 안짝에 서있는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엔 곧잘 모금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지키고,
뜻을 모아 행동을 일으키곤 한다.
가령 어떤 발의자가 무엇을 하자며 동참을 호소하게 되면,
사람들은 십시일반(十匙一飯) 푼돈을 쾌척하여,
힘을 보태며, 그 뜻에 호응을 하게 된다.
여러 사람이 많이 참여할수록,
이 일의 성공은 밝다.
헌데, 큰 목돈을 요구 받는다든가,
아무리 작은 푼돈이라도 누차 지속적인 거출(醵出, ≒갹출)이 예정된다면,
그 모금의 목표 활동이 앞에서처럼 잘 진척될는지는 미지수다.
갹출금을 잘게 쪼갤수록 참여하는 개인의 부담은 적어지며,
체면, 생색의 기회를 널리 뿌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럴수록 더 많은 사람이 참여가 없으면 모금의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즉, 모금은 ‘賣弄’을 파는(賣) 형식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고, 활동을 연대하는 장치가 된다.
대단히 교묘한 일이 아닌가?
뜻을 모으거나, 아름다운 사업에 동참을 함에 있어,
실인즉 賣弄이란,
결코 작위적 주체의 내심의 실질, 그리고 그 견고함은 묻고 있지 않고 있다.
외려, 악의는 아닐지라도,
선전과 꾐이,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질펀하니 뿌려진다.
참여하는 개별 주체들의 실질 내용은,
개인 스스로의 양심이 점검해야 할 노릇이나,
이게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뤄질는지는 아무도 그 끝을 전망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저런 형식의 모금은 언제나 일시적이며, 불안함을 내포한다.
모금에 참여하는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참여의 지속성은 그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외왕(外王)으로써,
그리고 내심의 실천 의지의 굳건함은 그 내성(內聖)을 반영한다.
賣弄은 본질적으로 비열한 짓이지만,
이게 짐짓 아닌 척, 선의로 포장되어,
개인의 위선을 위해, 또는 다수의 대중을 동원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賣弄은 어떠한 경우라도,
의지할 것이 되지 못한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수파(水波)에 몸을 맡기고,
짓까불리는 지푸라기 신세를 여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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