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으로
폭풍 속으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고전 하나를 이끌어 들이고자 한다.
宋襄公與楚人戰於涿谷上,宋人既成列矣,楚人未及濟,右司馬購強趨而諫曰:「楚人眾而宋人寡,請使楚人半涉未成列而擊之,必敗。」襄公曰:「寡人聞君子曰:不重傷,不擒二毛,不推人於險,不迫人於阨,不鼓不成列。今楚未濟而擊之,害義。請使楚人畢涉成陣而後鼓士進之。」右司馬曰:「君不愛宋民,腹心不完,特為義耳。」公曰:「不反列,且行法。」右司馬反列,楚人已成列撰陣矣,公乃鼓之,宋人大敗,公傷股,三日而死,此乃慕自親仁義之禍。夫必恃人主之自躬親而後民聽從,是則將令人主耕以為上,服戰鴈行也民乃肯耕戰,則人主不泰危乎?而人臣不泰安乎?
(韓非子)
“송양공이 초나라와 탁곡에서 싸웠다.
송은 이미 진을 벌리고 있었지만,
초는 아직 강을 다 건너지 못하였다.
우장군 구강이 종종 걸음으로 나와서 간하여 말하였다.
‘초군은 많고 송군은 적습니다.
청컨대 초군 반이 건너와 아직 진을 다 벌리지 않았을 때 공격하면,
저들은 반드시 패하고 말 것입니다.’
송양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듣기로,
군자가 말하길,
부상자를 거듭 다치게 하지 말며,
반백인 사람을 포로로 잡지 말 것이며,
험지로 사람을 밀어 넣지 않으며,
궁지로 사람을 몰지 말며,
진을 다 갖추지 않은 적을 공격하지 말라 하였다.
이제 초군이 아직 강을 건너오지 않았는데, 이를 치면 의를 해치게 된다.
초군이 물을 다 건너고 난 후,
진을 치고 나서,
북을 치며 공격하게 하리라.’
우사마가 아뢰다.
‘왕께서 송의 백성을 아끼지 않고, 군사의 안전을 돌보지 않으시며,
의를 이루려 하시는군요.’
왕이 말하다.
‘진열로 돌아가지 않으면, 군법으로 다스리겠다.’
우사마가 물러났다.
초군이 이미 열을 짓고 진을 다 쳤다.
왕은 이제야 북을 치며 공격을 하였다.
송군은 크게 패하고, 왕은 다리를 다치고 삼일 만에 죽었다.
이는 곧 스스로 인의를 부르짖다 화를 당한 경우이다.
무릇 반드시 왕이 직접 행한 다음에야, 백성이 따를 것이라 믿는다면,
이는 바로 왕이 직접 밭을 갈고, 전쟁에 나서야,
백성도 밭을 갈고 전쟁에 나아간다는 격이다.
그렇다면, 왕은 너무 위태롭고,
백성은 편안하지 않겠는가?”
이 고사를 두고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 한다.
내가 이를 처음 접하고는,
세상에 과연 이런 인물이 있겠는가 생각하였다.
헌데, 어제 폭풍 속으로 들어가서 이런 인간을 실제 만났다.
내, 이제부터는 결코 옛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으리.
兵者,詭道也。
(孫子兵法)
손자병법에 이르길 전쟁이란 적을 속이는 일이라 하였다.
그런즉, 능하되 능하지 않은 양 꾸미고,
가까우나 먼 것처럼 여기도록 하고,
머나 가까운 것처럼 속이며,
이(利)로써 상대를 꾀는 법이다.
본디 전쟁이란 의(義)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이(利)를 다투는 행위일 뿐이다.
의가 그리 중하다면, 애시당초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누가 있어 의가 아름답다는 것을 모르랴?
허나 원치 않아도 전쟁을 치루지 않을 도리가 없을 때가 있다.
그 누구라도 전쟁을 하고 있는 인간은 너무도 슬프다.
전쟁터에 나아가, 의를 부르짖고자 하면,
북을 치며 자신의 군사를 전쟁터로 몰기는 왜 몰았는가?
자신의 군사가 전쟁터에 나아가면,
필시 피를 흘리며 죽는 자도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자국 병사를 이리 사랑하지 않음을 두고,
어찌 의롭다 하겠음인가?
어제 폭풍 속에 들어가 있었다.
거기 어느 한 인간이 의로움을 지키노라 외치고 있었다.
수 천년 시간을 넘어 돌아온 송양공 하나를 보았다.
나는 속으로 송양지인을 떠올렸다.
이는 곧 사랑하는 형제를 져버리는 짓을 저지름과 같다.
이를 그는 왜 모르는가?
그렇다면 어이하여 전쟁터에 나섰는가?
전쟁을 치루는 것은,
전쟁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나라 백성을 아끼고,
군사를 사랑하여,
이들을 지켜내기 위함이 아닌가?
凡民:以仁救;以義戰;以智決;以勇間;以信專;以利勸;以功勝。故心中仁,行中義,堪物智也,堪大勇也,堪久信也。讓以和,人自洽。自予以不循,爭賢以為,人說其心,效其力。
(司馬法)
무릇 백성은 인(仁)으로 구하고, 의(義)로써 싸우며, 지혜로써 결단하며, 믿음으로써 오로지 전일케 하고, 이익으로써 권하고, 공으로써 이긴다.
그런즉 가슴엔 인(仁)을 품고, 행동 가운데엔 의(義)가 있는 법 ....
전쟁이란 의를 저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실은 의를 지키고자 어쩔 수 없어 벌이기도 하는 법인 것임이라.
이를 義戰이라 한다.
인의(仁義)를 동시에 구하고 이루려 함은 인지상정이라, 누구나 바란다.
하지만 전쟁터에선 이 모두를 한꺼번에 다 아우를 수 없다.
한즉 전쟁이란 인간에게 얼마나 슬픈 형식인가?
살아 생전,
결코 폭풍 속, 전장터로 나아가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라.
허나 도리없이 전쟁터로 나아가면,
과연 인간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송양공은 되고 싶지 않다.
송양공은 용렬(庸劣)하다는 욕을 듣고 끝내 삼일 만에 죽고 말았다.
이는 자업자득이라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죽어간 백성들과 군사는 누구에게 그 억울함을 호소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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