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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

소요유 : 2018. 1. 11. 20:43


내 어렸을 적엔 마차, 우마차는 물론 심지어는 당나귀가 끄는 수레가 짐을 싣고 도로를 오갔다. 그렇다고 하여 이게 까마득한 옛날이 아니다. 오늘날처럼 화물차가 이들을 몰아내고 화물 수송 일을 대체한 것은 기껏 50여 년 밖에 아니 된다. 이제 나는 초등학교 때 목격한 슬픈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교 길에 우마차가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잔뜩 땔나무를 실었는데 언덕길에서 멈추면 뒤로 주르르 미끄러질 형편이었다. 소를 모는 주인은 기다란 나무를 끌어내더니만 소잔등을 가차 없이 후려쳤다. 그러자 게거품을 마구 흘리며 소는 가까스로 수레를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린 눈에 주인이 무섭기도 하고 너무 미웠다. 커다란 눈을 가진 슬픈 그를 다시금 떠올린다.


소싯적엔 왜 그리도 동상들을 많이 걸렸는지, 내성이 약한 이들은 겨울엔 동상을 달고 살았다. 대개 지체부(肢體部)인 손, 발에 동상이 걸리곤 하였는데, 이 병에 걸리면, 환부가 부어오르고 몹시 가렵기 때문에 환자는 견디기 어려워 고통을 호소하게 된다. 허나, 당시엔 백약이 무효인지라 이들은 그저 겨울이 물러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기발한 처방들이 적지 아니 사람들의 귓가를 솔깃 울리고 지나갔다. 

(※ 참고 글 : ☞ 불균수지약(不龜手之藥))


이제 하나를 떠올린다. 우마차들이 거리를 지날 때, 우마가 똥을 쌀 때가 있다. 이들이 똥을 내지르면 그냥 도로 한가운데 커다란 한 무더기 잔해를 남기게 된다. 이게 사뭇 곤란한 일이라 우마 꽁무니께에 천차루를 횡으로 길게 걸어두어 똥을 받아내게 조치를 하곤 하였다. 하지만 이게 완벽하지 않아 일부는 도로께로 떨어지곤 하였다. 

그나마 이 똥받이가 없었을 때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똥이 대야만한 크기로 큰 무더기를 이루며 도로 한가운데를 거리낌 없이 차지하고는 위엄을 뽐내곤 하였다. 누군가 말하였다. 양말을 벗고 갓 싸놓은 소똥 속으로 맨발을 넣고 한동안 서있으면 동상이 치료가 된다. 처방치고는 사뭇 망측(罔測)도 하구나. 아마 김이 뭉긋하니 솟아오르는 저 똥무더기가 너무나도 포근하게 느껴져 그를 빌리면 동상이 고쳐지리라 여겨졌을 것이다. 일종의 유감(類感) 주술(呪術)에 가까운 것일 텐데, 주위에 이를 실제로 행한 이는 만나보지는 못하였다.


나는 오늘 바로 이 유감주술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문 정권은 얼마 전 이 자를 장관으로 밀었다. 당시 국회의원들의 강한 이의제기를 밀치고, 임명을 강행하였다. 기억을 떠올리자니 너무도 민망하다. 그는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를 7차례 체납하고, 자동차세·과태료 미납으로 15차례 차량이 압류 등록된 당사자임이 확인됐다. 체납된 것을 넘어 차량이 압류될 정도라면 여간내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이를 법무부장관으로 추천한 이도 문제지만, 이를 알고도 임명을 강행한 문정권의 사고방식, 통치 철학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문정권의 대선 공약인 '5대 비리자 인사 배제' 원칙은 바로 파기되었다, 하지만, 장관 인선이 끝나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바로 앞으로는 '5대 비리자 인사' 배제 원칙을 지켜나가겠다고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 얼마나 편리한 셈법인가? 너무도 뻔뻔하구나.


박상기 장관이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으르자, 거래자들은 청와대에 청원을 올리고, 금감원장, 금융위원장 직위 해제를 요구하며 아우성을 쳤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어날 수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지켜볼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어 청와대 발 기사가 나왔다. 


청와대는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입법 발언에 대해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 출처 : http://www.viewsnnews.com/article?q=153055)


그러니까 대가리는 멀쩡한데, 수족이 잠시 잠깐 얼이 엇나갔을 뿐이란 이야기리라. 다 같은 정부 부처이며, 그 동안 관련 부처들이 머리를 맞대며 수없이 회합을 하며 궁리를 터오지 않았던가? 그리고는 체납으로 15차 차량 압류를 당한 이를 수장으로 모시고 있는 법무부가 총대를 메고 앞장서기로 한 것이 아니었던가? 사실 나는 이 대목에서 전과 14범 이명박을 ‘부자 되게 만들어주겠다’란 말 한 마디에 속아 대통령으로 만든 이 땅의 궁민들을 겹쳐 놓는다. 그는 욕심 사납게도 나라 곳간을 헐어 개인 호주머니를 불린 정황들이 속속히 까발려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함인데 이번엔, 15범 장관이 눈을 부라리며 국민들을 향해 으름장을 놓도록 등을 떠밀던 청와대는 뒤늦게 나타나 슬쩍 발을 빼놓고 있지 않은가? 아마 곧 닥칠 지방선거를 걱정하고 있으리라. 내 단언하건대, 최소 선거 때까지는 결코 거래소 폐쇄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들에게 필요한 표를 구하려며 도리없이 그 때까지는 마음을 숨겨야 할 터이니까.


바로 이 기사를 보자, 나는 엄동설한 소똥 위에 맨발로 서있는 가여운 동상 환자를 떠올리고 말았던 것이다. 현 정권은 아마 소똥을 구할 수만 있다면, 며칠이고 그 속에 맨발을 담그고 덜덜 떠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머릿속으로는 결코 동상이 치료되리라 기대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리 애처로운 모습을 보이면, 표를 구걸하는데 효험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인천의 성냥팔이 소녀도 아니고, 이리 가서 눈물 흘리고, 저리 가서 아픈 이들의 손을 잡으면서 깊은 시름에 잠긴 모습을 보이는 데는 이골이 난 정권이다. 하지만, 적폐 청산이란 말은 요란한데 뭐 별로 시원한 성과는 없다. 내가 엄동설한에 촛불 들고 열 세 차례나 나간 것은 문이 예뻐서가 아니라 적당(賊黨)들이 미웠기 때문이다. 그저 감성 팔이로 세월을 눅이고, 적폐들과 한 치도 다름없이 국민들을 오라로 질러 옭아매고, 작대기로 몰아대며, 다그치라고 정권을 맡긴 것이 아니다. 오늘 저들을 보자 나는 그저 소똥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저들에겐 실로 소똥도 아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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