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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주석에 비춘 암호화폐 단상

decentralization : 2018. 1. 23. 14:34


노자 주석에 비춘 암호화폐 단상


내가 오늘 기사 하나를 읽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화폐(암호화폐) 관련해 “두 가지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밝혔다. 

~

“블록체인 기술이 숲이라면 가상통화는 그 숲에서 우뚝 자란 나무”라며 “문제가 된 나무에 대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규제를 만들어서 빨리 대처해야 하지만 숲은 건전한 나무들이 자라게끔 생태계 조성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 출처 : ☞ 김동연 '가상통화·블록체인, 분리될 수 없다..곧 대책 발표')


이제 좀 공부를 한 폭인가?


그런데 김동연 이 분은 앞에서 이런 말을 하였었다.


01.16 : ☞ 김동연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살아있는 옵션“


김 부총리는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도 살아있는 옵션이냐는 질문에는 "살아있는 옵션인데 부처간 진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속한 시일 내에 진지하면서도 국민이 보고 거기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종합대책을 내겠다"면서 "정부가 가상화폐 대책과 관련, 규명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주지 못했다는 데 대해서는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01.17 ☞ 김동연 "가상화폐, 합리적 규제 필요…블록체인과 같은 건 아니다“


 "블록체인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의 하나로서 많이들 생각하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페가 같은 게 아니지 않나


김동연의 발언을 추적해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뭇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주 전만 하더라도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분리 가능하다고 하였으되, 오늘은 이게 불가분 관계라는 것으로 바꿔 토설하고 있다.


암호화폐가 아닌 일반론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정책 당국자의 이런 식의 인식 태도는 너무 안일하고, 위험하다. 수백만이 개입하고 있는 시장을 마구 교란시킬 정책 발언을 하면서도 그 실질 내용을 모르고 있다면, 그에게서 칼을 빼앗아야 한다. 본디 제왕은 천하의 대도(大刀)를 혼자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민주주의란 이름의 권능으로 이 칼을 빼앗아, 분산 시켜버렸다. 즉 입법, 사법, 행정 이리 삼권(三權)으로 나눠 일방적 칼의 권능을 제한한 것이다. 왜 그런가? 칼은 본디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전지전능 완벽하지 않다. 때문에 한 사람이 전권을 쥐고 휘두르면 사고가 날 우려가 높다. 이에 따라 인민은 도탄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십상이다. 민주주의란 바로 이런 위험에 대한 시민의 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 실질 결과 내용에 관계없이, 김동연의 조석개변의 인식 변화는 너무 안일하다. 선무당 칼춤 추는 격이라 할 터이다. 그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릴 지극히 위험한 인물이라 하겠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눈물 흘리고, 손잡아 주며 감성팔이하는 것으로 국가 경영이 가능하다면, 차라리 우리는 연예인을 정치 대표로 뽑아 놓고도, 베개를 높이고 편히 밤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저들 정책 당국자는 작년부터 연구를 하였음인데, 이제껏 전혀 공부가 되지 않았음이 폭로되었다. 저들은 불쑥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앞잡이로 세워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를 하겠다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다 저항에 부딪히자 발을 슬쩍 빼며 비껴가는 양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내심으론 여전히 이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저들이 이중 플레이를 한다고 생각한다. 거죽으로는 갈짓자 걸음을 걸으며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며 얄팍한 술수를 펴지만, 애시당초 거래소 폐쇄가 저들의 목표였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폐쇄냐 유지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중대한 문제를 충분히 연구 검토를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시행하려 하였다는 점이다. 저항이 있으면 구부리고, 아니면 짓밟고 나아가려 하였다. 갈대에 이는 바람 형편대로 흔들릴 정도라면, 저들은 그저 오합지졸이 모인 집단에 불과하다는 평을 들어도 싸다. 


실제 오늘 뉴스를 보면, 아직도 연구, 조사를 더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소리꾼도 폭포를 상대로 목구멍에서 피를 쏟아가며 수련을 하고, 똥물을 받아 먹어가며 고련(苦鍊)을 견디어 낸 후라야 무대에 조심스럽게 올라선다. 항차 국가 공무 담임자가 시민을 상대로 중차대한 정책을 펴는데, 준비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그저 장삼이사 장바닥에서 떠들 듯 기분 내키는 대로 흰소리를 내질러야 하겠음인가? 저들은 국가 권력을 쥐고, 수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할 위치에 있지 않은가? 무엇이 부족하기에 저리 안일하게 일을 처리하였어야 하는가? 설익은 정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13 차례 광화문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 박 정권에 분노를 일으켰을 뿐이지, 이리 엉성한 도당들에게 정권을 맡기려 하였음이 아니다.


보아라, 현 정권은 말만 무성하였지, 정작 적폐청산은 지지부진하기 그지없다. 인천의 성냥팔이 소녀도 아니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중뿔나게 눈물 흘리기 바쁠 뿐,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놓은 것이 없다. 교육부의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혼란을 보자면, 지난번 정권에서의 이경숙의 오렌지-어뢴지 논란을 다시 떠올리고 만다. 수백만이 거래하는 거래소를 충분한 준비도 없이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보는 저들 도당들을 대하다 보면, 이리 엉터리로 국가를 경영하여도 좋은가 의문이 든다.


암호화폐 시장을 규제하는 것이 옳으냐, 그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충분한 연구를 거쳐 합리적 정책을 시행할 의지와 능력이 없음에 있다. 저들은 이럴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내가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사토시의 백서를 읽고, ‘탈중앙화’ 사상, 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나는 작년까지 이 분야에 대하여 무지하였고, 전혀 관심도 없었다. 예전에 주식에 관하여는 조금 공부를 한 폭이지만 이는 다 지난 일이다. 그러다 우연히 관련 동영상을 보다 '탈중앙화' 사상에 깊은 인상을 받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을 뿐이다. 암호화폐 투자, 거래와는 관련이 없는 이에 불과하다.


탈중앙화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하여 중앙화 세력, 기득권 집단이 반발하는 것은 십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엉터리 집단이라지만, 개중엔 눈 밝은 이가 하나 둘은 있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도대체 이들은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가? 과학, 기술적 주제에 대하여 전혀 소양이 없는 문과 전공자들이 새로운 혁신 과제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마구 정책 집행을 하여도 좋은가? 모르면 인재를 구하고, 배움을 더하여 시간을 기다려 익은 정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동안 놀고 있다가 선불 맞은 멧돼지 모양으로 이리 천방지축 날뛰어도 좋은가?


오늘 김동연의 말이 달라진 것을 나는 저들이 실제 대오각성을 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최근 문의 지지율이 연속으로 대폭 하락하고, 앞으로 다가올 지방선거가 염려되기에 잠깐 멈춘 것에 불과하다. 언제고 세가 바뀌면 다시 망발을 늘어놓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나는 이 지점에서 노자 도덕경을 떠올린다.

노자 주석으로는 하상공(河上公)과 왕필(王弼)의 것이 유명하다.

그런데 이 양자의 주석은 묘하게 다르다.

때문에 재미가 있다.

나는 저들의 말씀을 앞에 두고,

나의 비판적 관심을 증폭시키며 즐거움을 느낀다.

어리석은 이가 고맙게도 선인들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는다.

이제, 가령 報怨以德을 주석하는 태도를 관찰해본다.


報怨以德。脩道行善,絕禍於未生也。

(老子河上公章句)


“원한을 덕으로써 갚아라.

허나, 화(禍)는 미처 생기기도 전에 잘라버려라.”


報怨以德。

小怨則不足以報,大怨則天下之所欲誅,順天下之所同者,德也。

(老子道德經王弼注)


“작은 원한은 갚으려 할 필요 없다.

하지만, 큰 원수는 천하가 모두 죽여 없애려 한다.

그런즉 천하인이 모두 한가지로 하고자 하는 바에 따르는 것이 덕이다.”


거죽으로 읽으면 이 양자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허나 냉정히 헤아려 보면, 이 양자의 함의는 전혀 다르다.

이 양자는 사뭇 대립적이다.


하상공의 태도는 정치적이다.

첫 구절을 읽어보면,

백성을 상대로 원한은 덮고, 덕으로써 대하여야 한다고 가르치는 양 보인다.

참으로 착하구나.

허나, 이어지는 구절을 대하면 섬뜩해지고 만다.

그게 무엇인가?

가령 백성들이 난을 일으켜 반역을 꾀하려 한다면,

가차 없이 싹을 잘라버리고 말겠다는 말이다.

그러하니, 기실 선후 구절은 절대 가치 차원에서 양립할 수 없다.

때문에 정치적이다.

폭압적 언술인 후귀에 이르자,

전귀는 그저 면치레에 불과한 선전술에 불과함이 이내 밝혀지고 만다. 


'네들에게 선정을 베풀 수는 있겠으나,

내게 대들면 용서하지 못하겠다.'

이런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후귀에 무게 중심을 옮겨두고 이 문장을 해석하면,

전귀는 그저 정치적 연출, 쇼로도 읽힐 수도 있다.

실제 정치인들의 변신, 변절은 얼마나 쉽게 일어나던가?


기억하는가?

문은 촛불이전에, 박이 자진 하야(下野) 하면 편리를 봐줄 수 있다고 말하였다.

당시, 그는 원래 촛불 정신을 선도하기는커녕 뒷전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허나 촛불이 거세게 타오르자 은근슬쩍 타는 붉은 마차에 아닌 척 편승하였을 뿐이다.

반면 이재명은 초지일관 언제나 적폐 세력에 대항하여, 칼을 갈았다.


요즘 문을 보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눈물을 흘리고, 손을 잡아준다.

이를 두고 그 누가 있어 폄훼할 수 있으랴?

허나, 나는 이 장면에서 바로 하상공의 脩道行善를 떠올린다.

실제 현실의 세계에선 저들은 어떠하였는가?

비리 인사 장관 임명을 강행하고, 

시간이 제법 흘렸지만,

말만 무성하고, 정작 적폐청산은 지지부진하지 않았던가?

그러다 최근 암호화폐시장 자체를 전격 폐쇄하려는 모습을 보고는,

이내 絕禍於未生也를 떠올렸던 것이다.


아, 하상공의 저 절창(絶唱)이라니

오늘, 하상공의 무리들이 천지에 가득하고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쉽다.

세월호 당시 박도 눈물 연출을 하지 않았던가?

눈물은 결코 바로 믿을 것이 아니 된다.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한다.

손에 몽둥이를 들어 시민들을 윽박지르며, 

창칼을 들고 살을 저미며, 피를 흘리길 강요하지 않는가?

이런 의심을 지속하여야 한다.

정치인들은 하상공의 제자들이지,

결코 왕필을 스승으로 모시지 않는 족속들인 게라.

명심할 일이다.


그럼 왕필은 하상공과 무엇이 다른가?


小怨則不足以報,大怨則天下之所欲誅,順天下之所同者,德也。


小怨, 大怨

여기 小, 大는 私, 公으로 바꿔놓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그러니까 사적 원한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일이지 문제의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허나 공적 차원에 이르면, 

모든 천하인들의 공의(公議)에 부쳐, 공의(公義)로 다룰 일이란 말이다.


하상공의 경우에, 그 말의 주체는 위정자, 왕이다.

허나, 왕필에 이르면 이게 백성으로 바뀌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백성들이 원한을 갚아야 할 객체는 왕이 된다.


하상공은 왕권에 복역하고 있다면,

왕필은 이를 뒤집어 백성 편에 서 있다.

오늘날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그는 주체적 인격인 시민을 중심 가치로 두고 있는 것이다. 


하상공은 왕, 기득권의 이해를 염려하기에,

잘하면 원한을 덮어줄 수는 있다고 눈깔 사탕 들고 백성을 어르는 일편,

뒤로는 창칼로 으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왕필은, 원한은 공적 이해로 재량하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오늘의 적폐청산도 보복이라 여기면 하상공의 문도가 되지만,

시비곡절(是非曲節)을 철저하니 의(義)의 칼로써 재단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순간 이들은 왕필의 사당에 무릎 꿇고 제향(祭享)하는 상제(喪制)가 된다.


나는 처음부터 미적지근한 문 정권을 의심하였다.

그러다 요즘엔 분노하고 있다.


비리 장관 임명 강행하고,

적폐청산은 지지부진하고,

부동산은 폭등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를 떠올린다.

그는 대선전 공약인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뒤집고,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며 바로 재벌에 투항하였다.

당시 끝없이 이어지던 부동산 폭등을 기억하라.


요즘 문 정권 아래 이런 노 정권의 환영을 다시 본다.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여자 아이스하키팀 단일팀 구성 문제 ...


급기야, 최근에는,

문정권이 이런 따위의 즉흥적 정책을 남발하고 있지 않은가?

설익은 아마추어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부가 따르지 않은 소이(所以)다.

하여 나는 여전히 문 정권을 사뭇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저들의 성공을 바라지만,

아니,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을 턱이 없지만,

저들의 거듭되는 어줍지 않은 짓으로 보아서는 애저녁부터 기대난망이 아닌가 싶다.


***


보족(補足)


내가 위에서 문과를 언급하였은즉, 이게 이를 내리 까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내 이를 염려하여 보충의 말을 남겨두고자 한다.


새는 좌우로 난다는 이영희 선생의 말씀처럼 문과, 이공계 이리 세상을 나누는 것은 못난 짓이다.

다만,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를 주장하는 이들의 면면을 보니 죄다 문과 출신 일색이라, 

내 염려가 커서 이를 특별히 지적하여 두었을 뿐이다.


흔히 아는 제갈공명은 문사(文士)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는 병법에도 밝고, 실제 천군만마를 직접 지휘하여 전쟁터를 누비었고, 

실로 범인이 이룰 수 없는 공을 이룬 무인(武人)이기도 하다.

문무쌍전(文武雙全)이니, 그를 두고 오늘 날 식으로 문과 출신이라 폄훼할 일이 아니리라.

게다가 그는 목우유마(木牛流馬)를 만들어 운송 체계를 혁명적으로 개선한 기술자이기도 하다.

내 어디선가 목우유마에 대하여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만, 

이는 오늘날로 치면 테크니션이자 사이언티스트라 불러도 큰 허물이 없다 하겠다.


(출처 : 新浪網)


목우유마가 등장하는 삼국연의(三國演義)의 장면을 여기 잠시 끌여들여본다.


孔明笑曰:「吾已運謀多時也。前者所積木料,並西川收買下的大木,教人製造木牛流馬,搬運糧米,甚是便利。牛馬皆不水食,可以晝夜轉運不絕也。」


공명은 목우는 물도 먹지 않고, 주야를 쉬지 않고  물건을 운반한다 하였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주목할 것은 便利하다는 말이다.

인민에게 이(利)가 된다는 말이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무작정 폐쇄하고 말겠다는 이 땅의 저들 위정자들의 결기 앞에 나는 질리고 만다.

이게 미래에 성공할지 아닐지 누구도 모른다.

헌데, 인민이 폭락하여 손해를 볼 것을 염려하여 폐쇄를 하겠다고 말하지만,

나는 저 말이 곧이 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한국은행 발권의 화폐 시스템에 교란이 올까 염려하고,

기득권 체계에 화가 될까 염려하기 바쁠 뿐이다.

나는 저들이 행동이 이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便利는 인민이 아니라,

저들의 便利일 뿐인 바라,

이게 혹 저들의 이해에 반할까 놀라고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은 대개 공부를 할 때 문과 이과 이리 나눠져,

마치 들녘 까마귀떼처럼 꼬마가 던진 돌맹이에 놀라, 각기 찢어져 흩어지기 바쁘다. 

하지만, 어느 한 곳에 편협되면 큰 공(功)을 이루기 어렵다.

심히 다변화된 세상이지만, 거꾸로 큰일은 여럿을 종합적으로, 체계적으로 엮어서,

일으켜 세울 때라야 큰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런즉 전공을 하나로 묶어두면 저들 관청에 있는 인사처럼, 봉사 문고리 잡듯 엉뚱한 짓을 저지르게 된다.


전공은 최소 셋 이상을 해야 한다.

마치 제갈공명이 문(文), 무(武), 기(技)를 한데 아울렀듯이,

요즘 인재는 셋, 너댓 이상의 전공을 넘나들어야 큰일을 감당해낼 수 있다.


허나, 요즘 한국의 위정자들을 보면 대다수가 법학, 경제학 전공자들 일색이다.

변호사, 검사, 법관 출신들이 사법부는 물론, 행정부서, 입법부서 중심에 포진하고 있다.

이것 너무 쩨쩨한 구성, 조직 구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폭 넓은 배움을 갖추고, 열린 마음을 가진 인사가, 공적 기관에 많이 들어가, 균형 잡힌 시야로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종합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이가 등장하여야 한다.

위정자가 이런 인식을 할 수 있어야 되는데, 이는 차치하고서라도, 비리 인사를 장관에 버젓이 올리고도, 

바로 다음날 이제 앞으로는 5대 비리 인사는 절대 등용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치지 않던가? 

얼마나 희극적인 언사인가 말이다. 

제 할 것 다하고 나서는, 앞으로는 아니 그러겠다고 뻐기면서 공갈을 친다. 

아니 나아가 나에겐 협박처럼 들리기까지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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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ntralization : 2018. 1. 23. 14: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