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
알파고가 재작년에 이세돌을 이겼다.
알파고의 활약은 가히 경이적인 결과를 내고 있다.
가령 프로 기사를 상대로 60연승을 기록하였다.
사람이라면 제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가진 이라 하여도,
단 일 패도 없을 수는 없다.
가령 권투 선수 조지 포먼만 하더라도 한 때 40전 40승 37KO 위업을 이루었지만,
알리와의 대결에서 패하고 만다.
그의 생애 통산 전적은 76승(68 KO승), 5패다.
알리의 경우 56승 5패의 통산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알파고는 왜 사람을 상대로 하여 이런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는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의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리라.
과연 그런가?
이런 규정으로 충분한가?
나는 지금 이에 의문을 일으키고 있다.
알파고의 기술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두드러진 전략적 특징에 주목하고 싶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 심리적 존재이다.
따라서 심리적 조건에 따라 행동 양식, 판단 내용이 영향을 받는다.
파죽지세(破竹之勢)
이게 무슨 말인가?
대나무 끄트머리에 쐐기를 박고 내리 치면,
이 이하는 어쩔 수 없이 쐐기로 벌어진 결을 따라 순식간에 쪼개져 버린다.
夫雷電之起也,破竹折木,震驚天下,而不能使聾者卒有聞;日月之明,遍照天下,而不能使盲者卒有見。
(韓詩外傳)
“무릇 번갯불이 일어나면 대나무를 쪼개고 나무를 빠개버리고 만다.
천하는 이 기세에 놀라 자빠지고 만다.
귀머거리에게 갑자기 듣게 할 수는 없다.
해와 달의 밝음은 온 천하를 두루 비춘다.
하지만, 맹인에게 이를 급히 보게 할 수는 없다.”
헌즉, 사람과 사람이 싸울 때는,
번갯불처럼 벼락 내리며,
세를 몰아 쳐들어가는 것이 유효한 전략이 되곤 하였다.
凡戰者,以正合,以奇勝。故善出奇者,無窮如天地,不竭如江河,終而復始,日月是也;死而復生,四時是也。聲不過五,五聲之變,不可勝聽也。色不過五,五色之變,不可勝觀也。味不過五,五味之變,不可勝嘗也。戰勢不過奇正,奇正之變,不可勝窮也。奇正相生,如循環之無端,孰能窮之哉!
(孫子兵法 兵勢)
“무릇 전쟁을 치루는 자는 정규전으로 적을 막고,
기습(게릴라전)으로 이긴다. .....
전세는 기정(奇正, 정규전, 기습전)에 다름 아니다.
단지 이 두 가지에 불과하지만,
그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
이게 무슨 말이고 하면,
奇可生正,正可生奇라,
기(奇)가 정(正)을 만들고,
다시 정(正)이 기(奇)를 만들며,
전세를 무궁무진하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나간다는 말이다.
無頭無尾라,
이 둘을 교합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상대를 몰아쳐 나가니,
그 변화가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기실, 이게 이제까지 알려진 모든 병법의 핵심 이론이다.
故善戰者,求之于勢,不責于人,故能擇人任勢;任勢者,其戰人也,如轉木石,木石之性,安則靜,危則動,方則止,圓則行。故善戰人之勢,如轉圓石于千仞之山者,勢也。
(孫子兵法 兵勢)
“고로 잘 싸우는 자는 세를 구할 뿐,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고로 적절한 사람을 택하여 세에 맡긴다.
세의 흐름을 따라 사람과 싸우는 바라,
나무, 돌처럼,
안정되면 가만히 있고,
위험하면 움직이며,
불리하면 그치고,
유리하면 움직인다.
그런즉 잘 싸우는 사람의 세란,
마치 천 길 낭떠러지에 있는 돌을 굴리듯 하니,
이게 곧 세다.”
이것 명문이다.
그리고 천고 만변의 진리다.
그런데, 알파고 이후 이게 큰 위협을 받고 있다.
무슨 말인가?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자 함인가?
손자병법의 저 말씀은 애오라지 사람하고 상대를 할 때에 먹히는 전법이다.
아마, 사람하고 싸울 때 저 이치를 꿰고 있다면,
백전백승할 것이다.
헌데, 천하의 난다 긴다 하는 프로기사들이, 모조리 알파고에게 패하였다.
이게 무슨 사연인가?
아직도 그저 단순히 알파고의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믿는가?
알파고는 세를 의식하지 않고 싸운다.
그는 인간을 의식하지 않고 상대와 싸운다.
아니 싸우지 않고 게임에 임한다.
다만, 그는 이길 수 있는 수(數)만 골라 둔다.
여기 비밀이 있는 것이다.
알파고 이후,
기존의 바둑 정석은 수정되고, 때론 버려지고 있다.
기왕의 이론은 재해석되고,
새로운 가치가 발견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이제까지의 정석, 전술, 전략은 사람을 상대할 때나 유효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싸워 이겼다.
그렇다면 더 이상 사람을 상대로 한 싸움의 원리는 최선이 아님이 아니겠는가?
알파고는 공연히 위세를 부리고, 남을 궁박하고, 속이는 따위의 짓을 하지 않는다.
이 모두는 인간들이 곧잘 하는 세를 불리고, 기세로 상대를 제압하는 따위,
그렇다, 바로 사람의 심리 기제를 완벽히 우회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 투자 역시 사람의 심리 상태에 매인 이상,
주식 알파고를 이길 수 없다.
내가 여기에 나타나 초기에 글을 써 올리니,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하였다.
통계, 기술적 분석 다 서툰 짓이고,
호가창을 들여다보면 만사 오케이라든가,
정량 분석이 아니라, 정성 분석을 해야 한다며,
헛기침 소리 내며 나를 점잖게 타일렀다.
그들은 모두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들은 참으로 서툴구나.
나는 제안한다.
사람의 심리 상태를 연구하는 것이 무작정 무용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뛰어 넘어야 한다.
흔히 주식(코인)시장은 심리, 기세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많다.
그리고 이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이가 또 대부분이다.
허나, 나는 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알파고는 사람의 심리에 기반을 둔 수를 두지 않는다.
그는 파죽지세를 믿고 기세 좋게 바둑돌이 바둑판을 쪼개듯 후려치며,
기합을 지르며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정작은 그런 짓을 할 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60전 전승을 하고 있다.
사람의 심리, 세를 믿지 않기 때문에.
이쯤이면, 사람을 이기고 있는 알파고의 진실을 이젠 알 만하지 않는가?
심리, 세가 아니라,
이길 만한 수를 둘 뿐이다.
심리, 세는,
인간 세상에 퍼져 있는 미신과 같은 것.
시장은 괴물이다.
이 괴물을 상대로 이기려면,
사람이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심리 운운하면,
더 이상 들어볼 것도 없이 이미 진실을 떠난 말이다.
주식 알파고가 되어야 한다.
그의 전략 절목(節目)엔 파죽지세란 없다.
그는 인간의 심리에 기대지 않는다.
세칭 존버는 투자 세계에 있어 발현되는 인간 심리의 극단적 형식이라 생각한다.
그럼 퇴장투자(退藏投資)는 성공하지 못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아주 고집스럽고 미련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털 하나 뽑으면 그 자리에 다시 심어야 마음이 놓이는 위인이었다.
이 자가 잠실에 아파트 하나가 있었는데,
남들은 몇 차 팔고 사기를 반복하였지만,
이자는 궁시랑 거리기만 하였지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격으로,
그게 마침 잠실이었기에망정이지,
산골 벽지라면 몇 대를 물려가도 아마 그리 큰 시세 변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잠실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저 퇴장투자 말고는 몰랐기 때문이다.
퇴장투자는 운(運)에 맡길 때 허무투자에 불과하다.
허나,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 확고하다면,
언젠가 탈중앙화는 퇴장투자에 큰 빛을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리 되길 진실로 기원한다.
운에 맡기는 퇴장투자.
이런 것은 파죽지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팥죽지세임이라,
그저 쌀 가지고 밥을 짓지는 못하고,
연신 물 부으며 죽이나 끓이고 있는 것이다.
이만 하여도 다행이라 할 터.
아마 조금 더 지나면 묵은 쌀에선 바구미가 날고, 구더기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알파고는 심리가 아니라,
다만, 이길 곳을 두어야 이긴다고 가르치고 있다.
바둑 기사들은 이제,
전과는 다르게 기왕의 이론을 거스리는 수도 태연히 두고 있다.
바둑판이 알파고 이전과 이후는 이리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알파고를 따라한들 궁극엔 그를 이기는 것이 녹록치 않을 것이다.
왜냐?
인간은 여전히 심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이 바둑을 두고 있다.
허나,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기계가 선수로 나왔지 않은가?
그러자 인간들은 판판히 깨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 심리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정석, 전술, 전략은 온전치 못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三年狗尾 不爲黃毛
개꼬리 삼년 땅에 묻는다고, 결코 족제비 꼬리 되지 않는다.
바둑에서 이기는 자가 되려면 사람(심리)을 뛰어 넘어야 한다.
코인 판에서 이기려면 그대가 사람(심리)임을 부단히 회의하여야 한다.
전엔 알파고가 없었기에 바둑에서 사람들 간에 승패 우열이 정해졌다.
하지만 알파고가 등장하자 사람은 그 누구도 알파고를 이기지 못했다.
전엔 자동 매매 프로그램이라든가 봇이 없었기에,
주식, 코인 시장에서 사람들 간에 고래, 개미로 나뉘어져 불리어졌다.
그리고 이기는 이와 지는 자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게 등장하자, 개미는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고래도 판판히 깨지고 있다.
이젠 이 판에도 알파고를 이기려면, 고래, 개미란 가면을 뒤집어 쓴 인간을 넘어서야 한다.
이제, 결코 심리에 매인 인간이 아니라,
이길 만한 수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춘 새로운 인류의 등장이 요청되고 있다.
세는 없다.
있다면 그것은 당신을 꾀는 매소부(賣笑婦)의 미소, 손짓일 뿐.
언젠가 그 미소와 술 한잔에 취한 그대를 매소부는 팬티까지 벗기고, 문밖으로 쫓아낼 것이다.
그런즉 그대가 이기려면,
세란 믿음을, 그 신앙을 버려야 한다.
신은 죽었다.
그대는 차라투스트라가 되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의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내게 물어보지 않았다. ... 차라투스트라는 도덕이라는 오류를 최초로 고안해낸 인간이다. 그렇기에 그는 도덕의 오류를 최초로 인지한 인간임이 분명하다. 성실성을 통한 도덕의 자기 극복, ... 이것이 차라투스트라의 이름이 지시하는 의미이다.
심리는 없다.
시장엔 이제 사람을 대신하여 기계가 포진하고 있다.
그런즉 심리에 매이면 최선의 수를 찾아낼 수 없다.
어제까지 심리는 최고의 전략 요소였다.
하지만, 오늘, 그리고 내일이 되면, 심리를 버리지 않는 한,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신은 죽었다.
그대는 차라투스트라가 되어야 한다.
바둑 세계에선,
벌써 수많은 프로 기사들이 세, 심리를 버리고,
새로운 탐색을 펴며 대장정에 나서고 있다.
헌데, 주식, 코인 시장에선,
과연 이를 의식하는 프로가 있기나 한가?
오늘 이 물음을 던지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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