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청둥오리

소요유 : 2008. 12. 16. 10:00


여름 내내 북한산에서 목격되던 청둥오리가 며칠 전 다시 발견되었다.
그것도 이곳 정릉 편으로는 등산객들의 거의 99%가 지나는
청수폭포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잡고 유유히 물놀이를 하다니.
저들은 텃새가 되고 있음인가?

수컷 한 마리가 암컷 하나를 거느리고,
등산객들의 시선과 떠드는 소리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암컷이 둘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첩실일까?
오늘은 무엇 때문엔가 토라져 숲속에 혼자 남았는가 보다.

수컷의 파란 머리가
다듬은 청석(靑石)처럼 어여쁘게 빛난다.

등산길에 드물지 않게 보게 되는
여인들의 빨간 루주가
내겐 때로 당혹스럽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물장사 하는 사람 외에는 그리 시뻘건 루주를 칠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엔 70 노인네도 물위에 버려진 스치로폴 조각처럼
장미빛 루주가 얼굴 한가운데 동동 떠서 애처롭게 오물오물 물장구를 친다.

언제부터인가,
여인네의 얼굴엔
고도(孤島) 하나가 떠있다.

외로운 깃발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홀로 남겨진
진홍빛 슬픔 하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수폭포, 제법 아름다운 곳인데 디카로 서투르게 찍었더니 대단히 미흡하다.)

이 때, 60대 아주머니가 놀라 외친다.
“저거 돌을 던져서 쫓아버려야 해”
폭포 밑에는 버들치가 살고 있다.

순간 나는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다음 선시(禪詩)를 떠올린다.

 뱀이 개구리를 삼키고 있는데,
 구하는 게 옳은가, 구하지 않는 게 옳은가 대중에게 묻다.
 대중이 말이 없은 즉, 대신 스님이 말하여 가로대,
 구하는 즉, 두 눈이 멀 것이요.
 구하지 않은 즉, 형체도 그림자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僧問 蛇呑蝦
 救則是 不救則是
 師云 救則雙目不睹 不救則形影不彰
 (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http://www.songchol.net)"
(※ 참고 글 : ☞ 2008/02/21 - [산] - 야묘소묘(野猫素描))

아주머니의 저 즉각적인 반응은 얼마나 놀라운가?

하나를 구하면 하나를 잃고,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구한다.

구함에 두 눈이 멀어,
돌멩이를 던지려는 저 마음보.

세상은 그래서 청맹과니 당달봉사가 그득하다.

예서, 평화는 구하지 마라.

북한산엔 인간이 벌이는
전쟁, 쓰레기, 소음으로 가득하다.

북한산에 울(篱), 책(柵)을 치고 싶다.
인간이란 종자가 감히 접근하지 못하도록.

평화는 구하지도 않지만,
그 때라서야,
동산양개의 저 어줍지 않은 물음이라도 쉬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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