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새끼 재판
한(漢)나라에 장탕(張湯)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漢) 무제(武帝)의 신임을 받아
정위(廷尉), 어사대부(御史大夫) 등의 벼슬을 한 사람이다.
정위란 요즘으로 말하자면 사법부 수장쯤 된다.
그러하니 장탕은 본시 법률에 밝은 신하였다.
장탕의 법집행은 엄혹(嚴酷)하기로 정평이 났었다.
후인은 그를 두고 혹리(酷吏)의 대표적 인물로 꼽기도 하나,
혹자는 청렴결백한 염리(廉吏)라 이르는 이도 적지 않다.
한무제의 황후였던 진황후(陳皇后)를 폐위시키는데,
결정적인 임무를 수행한 것도 장탕이다.
어린 한무제는 주위를 둘러 싼 여인들로부터 벗어나길 원했다.
그만의 의지대로 조정에 신풍(新風)을 일으키고 싶었으나,
자신이 황제가 된데 공이 있음을 내세워 위세를 부리는 황후,
그리고 그녀의 모친, 조모인 두태후(竇太后) 등 여인네들에게 포위되다시피 했다.
두태후가 죽자, 한무제는 서서히 기지개를 펴며,
자신의 입지를 확보해나가는데,
우선 처음으로 별로 사랑하지도 않는 황후를 내치기로 한다.
마침 황후는 한무제가 사랑하는 애비(愛妃)인 위자부(衛子夫)를 해할 목적으로
무당을 시켜 저주의 주술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진상 조사를 장탕이 맡았다.
장탕은 한무제의 뜻을 잘 헤아려,
진황후의 죄상을 밝혀내는데 공을 세웠음이니,
이후 관도(官途)에 나아가 장구(長久)했다.
(©2008 Baidu)
오늘 새삼 그에 대한 한 가지 에피소드를 여기 새겨본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양구(良久) ...
(※ 양구(良久) : 오랫동안 침묵)
하여간 이야기인즉슨 이러하다.
장탕이 어렸을 때 이야기다.
장안에서 관리 노릇을 하고 있는 그의 부친이 외출하면서, 집을 잘 보라고 일렀다.
그런데, 부친이 돌아와보니 쥐가 집에 보관하고 있던 고기를 훔쳐 먹어 버렸다.
부친은 크게 노해 장탕을 곤장(또는 채찍)으로 때렸다.
장탕은 쥐구멍을 파고는 고기를 훔쳐 먹은 그 쥐를 잡아내었다.
먹다 남긴 고기를 찾아내서는 쥐를 고문하며 공술서를 작성했다.
그 문서를 선포하며 다시 철저히 재심까지 하고는,
마침내 먹다 남은 고기를 덧붙여 증거로 하고 죄명을 확정했다.
그런 후, 그는 집 앞에서 그 쥐를 책형(磔刑)에 처했다.
(※ 磔刑 : 찢어 죽이는 형벌, 또는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
그의 부친이 후에 그 문서를 읽게 되었다.
그 심문서는 마치 다년간의 경험이 있는 판관이 작성한 것과 같았다.
(물론 쥐가 말을 할 리는 없었을 터이니,
어린 장탕이 자신의 추리를 짐짓 꾸며 엮은 것이로되,
사개 아귀가 잘 들어맞았다.)
사뭇 놀라울 지경이었던 것이다.
부친의 사후 장탕은 그 아비의 직책을 물려받아 장안의 관리가 되었으며,
오래 그 직을 맡았다.
ps)
내 본시 책형이란 말이 등장하여,
이내 2008/12/04 - [소요유/묵은 글] - 걸견폐요(桀犬吠堯) 여기 인용한 아기돼지 등이 떠올랐다.
게다가, 개새끼, 쥐새끼란 동물을 빌어 하는 표현법도 여러 모로 편치 않았음이라.
하나, 굳이 이 말을 피하지 않고 글제로 삼았으니 이 또한 그 소이연(所以然)은?
그저 양구(良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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