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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

소요유 : 2009. 8. 7. 13:08


며칠 전,
마을로 내려가는데,
고물할아버지가 입성 반지르르한 모습으로 올라오고 있다.
내게 인사를 전하지만 나는 서툴게 맞받고 서로 갈려 지난다.
그의 뒷짐 손에 빈 캔이 하나 들려 있는 것이 얼핏 곁눈에 비춘다.
그의 생업이 넝마주이이니 의당 그리 길거리에서 보이는 대로 주어 챙기는 것이리라.
(※ 참고 글 : ☞ 2009/07/05 - [소요유] - 북두갈고리)

아랫동네에서 주어오는 것이로되,
저 빈 깡통이 돈으로 치자면 단 십 원도 되지 않을 것이니,
언덕길을 오르는 그의 수고로움이란 참으로 힘겹다 하겠다.

수년래 지켜보건대,
그의 생활형편이 충분치는 못할런지 몰라도 그리 곤궁한 것은 아닐진대,
저것이 그의 생활 방편이라기보다는 타성에 이끌려,
궂은일도 그치지 못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십 원의 가치를 위해 언덕길 오르길 마다하지 않는 저 열성을 가진 이가,
어찌 하여 지금 따뜻한 피가 혈관을 허위허위 지친 듯 흐르는,
제 집 마당가의 강아지의 저 슬픔은 외면하고 있는가?
저들 강아지들의 고통을 계량하면 그것이 어찌 십 원에도 못 미치랴?
엄동설한의 추위, 배고픔의 무게가 어찌 가벼우랴.
이를 살피지 못하는 무정철한(無情鐵漢),
저이의 저 마음보란 얼마나 가없이 딱한 노릇인가 말이다.

그런데, 그날 또 그 집 식구 하나를 만났다.
그 날 따라 일이 있어 강아지 먹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다가,
저녁 늦게 먹이를 챙겨 나서는데,
고물할아버지의 처가 우리 집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노인정 옆 좁다랗게 난 계단에서 딱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는 나를 못 본 양 지나친다.
등에는 배낭을 걸머지었으니,
필경은 뒷산으로 등산을 가는 모양새다.

나는 지금 저녁을 먹고는,
미쳐 자위도 돌리지 못하고(소화) 어둡기 전에 서둘러 길을 나서고 있는데,
저들은 제 살 도리는 다 챙기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주객이 이리 전도(顚倒)되고 있음이라.
아,
나는 까마득한 동굴 속으로 끌려들어가며 환영을 본다.
나는 아마도,
전생에 지은 죄가 깊으니,
미쳐 갚을 업보가 중하고 깊어,
이리 죄닦음을 하고 있음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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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09. 8. 7. 1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