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와 계략
우리 농원 앞에 부대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나 주말엔 저들 사병들을 만나러 오는 면회객들 때문에,
농원은 적지 아니 불편을 겪는다.
무단 주차는 얼마든지 양해를 할 수 있으련만,
저들 중 십중팔구는 떠날 때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
참으로 더러운 인격들이다.
아니 신세를 지고 갔으면,
고맙다고 사례는 하지 못할망정,
게다 저리 패악질을 하고 떠날 수 있음인가?
아직 멀었음이라.
우리네 인심이란 이리도 어리고 몽매하다.
처음엔 참아낼 수 있는 한 참아내었지만,
쓰레기 투기만은 내 인내의 시험 한도를 넘어선다.
하여 그 동안 수차 저들과 접촉하여 쓰레기 투기를 단속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허나, 이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초병에게 쓰레기 투기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교대를 지금 하였기에 나는 모른다.”
우선 저들은 자신의 얼굴 앞에 방패막을 친다.
핑계 그리고 책임회피.
이들은 이게 몸에 배어 있다.
나도 군대를 갔다 왔으니 저들의 처지를 왜 아니 모르겠는가?
졸(卒)이 장(將)하고 다른 것이 무엇인가?
책임을 의식하는 무게가 다른 것이다.
2년도 미쳐 되지 않는 복무 기간에 책임을 자진하여 짊어질 유인이 없다.
저들은 현재, 아니 찰나를 빗겨갈 뿐.
영원을 아니 단 일 개월도 지고 이며,
현실을 부담할 정도로 충용(忠勇)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저들이 참으로 끔찍하다.
2년 동안 이런 방식으로 제 몸과 마음을 구속하면,
얼마나 저들은 뻔뻔해지고 비열해질까나?
(※ 참고 글 : ☞ 2011/01/11 - [소요유] - 군대에서 배운 것 하나)
그러한데,
그러면 장교는 다른가?
내가 저들과 부단히 부딪히며 느끼건대 졸과 하나도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손자병법을 보면,
“兵者, 詭道也. 故能而示之不能, 用而示之不用, 近而示之遠, 遠而示之近. 利而誘之, 亂而取之, 實而備之, 强而避之, 怒而撓之, 卑而驕之, 佚而勞之, 親而離之。
攻其無備, 出其不意, 此乃兵家之勝, 不可先傳也.”
이런 명문을 만나게 된다.
이는 폐일언하고 무릇 병가란 속임의 길을 걷는 자란 뜻이다.
그런한데 나는 앞에서 졸병들이 핑계 그리고 책임회피를 밥 먹듯이 한다고 일렀다.
그렇다면 속임도 핑계인가?
여기서의 속임은 사실 좀 더 그럴 듯이 고상하게 격상(格上)시켜 말하면 계략(計略)이다.
계략은 승리(勝利)하기 위하여 적을 꾀고 속이는 것이다.
아군에게 핑계를 대고 속이는 것이 아니다.
여기 바로 이 지점에 큰 경계가 그어지고 차이가 있다.
졸(卒)은 아(我)를 속이고 핑계를 대어 책임을 피하기 급급하다.
하지만 명색이 장(將)이라면 아(我)가 아니라 피(彼)를 패퇴(敗退)시키고,
굴복시키기 위해 꾀를 내고 긴긴 밤 잠을 못 이룬다.
하지만 나는 장과 졸의 차이를 여기 시골에선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겠다.
내가 오늘 새벽 풀방구리(강아지)를 산책 시키려고 부리나케 거동하였다.
잠깐 새 비가 아니 오시니 서둘러 산책길을 나섰다.
그러한데 라면 박스 반 토막 만한 골판지 박스가 농원 앞에 버려져 있다.
발로 툭 쳐보니 스티로폼 그릇에 담진 자장면 찌거기가 터져 나온다.
단무지, 춘장, 젓가락 등속이 흩어지는데 ...
이것을 얼추 셈하여 치자니 10L 쓰레기봉투 하나로는 모자를 게고,
두어 개는 가져와야겠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저 지저분한 것에 손을 더럽힐 생각을 하니,
부아가 솟구친다.
산책을 갔다와서 CCTV 녹화 영상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부대 면회객이 버린 것이다.
이런 더러운 녀석들이 다 있는가?
부대 앞을 나서자마자 바로 부대 정문 앞 우리 농원에 버릴 수 있음인가?
아니 버리더라도 저만치 가다가 논두렁에 버리면 버리더라도,
초병이 지켜보고 있는데 바로 부대 앞에 차마 버릴 수 있음인가?
내가 논두렁에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는 인간이라면,
부대 앞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맞은 편 농원에 버릴 정도로,
인성이 기울어지고 양심이 허물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지하 싸구려 헐한 것들임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진즉 CCTV를 직접 설치했다.
곳곳에 보이지 않게 설치했음은 물론 booster 회로를 나름 고안 설계하여,
성능을 배가하여 배설(排設)하였다.
그동안 패악질을 하는 이웃들을 내가 파악하고 있음인데,
정보만 축적하고 그냥 참고 넘어가고 있다.
농원 두둑을 지나면서 늘 휴지만 버리는 노파,
은근슬쩍 쓰레기를 투척하는 이웃 늙다리 흉물,
출퇴근하면서 오물을 버리는 군청 직원 ...
등등 나는 다 알고 있음이다.
과오를 스스로 고치지 않으면,
언제고 이들은 석삼년치를 몰아 말들이로 큰 봉욕을 당하고 말리라.
그러한데,
내가 오늘은 비도 오시는데,
저 자장면 쓰레기를 치우자니 짜증이 몰칵 올라온다.
부대 초병(哨兵)에게 이른다.
“저 쓰레기 버린 인간,
알아서 치우고,
내게 은밀히 와서 잘못을 사과하라고 일러라.
아니면 용서하지 않으리라.”
그러자 너댓 시간 후에,
대위 하나가 이등병을 데리고 농원을 방문했다.
이등병이 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제대로 교육이 되지 않아 면회객들이 쓰레기를 버렸다고 이른다.
부대 내부적으로 쓰레기 투기자를 찾아내었는가 보다.
사병 얼굴이 거의 흙빛이다.
내가 저 이등병 심정을 어이 모르리.
자신을 이등병 소속 대장이라 이르는 대위는 연신 변명하기 바쁘다.
나는 순간.
이게 손자가 말하는
‘兵者, 詭道也.’가 아니라고 의심하고 만다.
저것은 詭가 아니고 차구(借口) 즉,
입을 빌려 돌려 말하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꾹 참고 들어준다.
나는 장(將)에게 주문한다.
“행여라도 저 이등병에게 기합을 주지마시길 부탁한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여러 사병들에게 여론을 환기함에 족하다.”
아울러 바짝 긴장한 졸(卒)에게 타이른다.
“쓰레기 버리는 것은 삼류 인생이나 한다.
사회에 나가더라도 담배 공초 하나 함부로 버리지 마라.
아니 왜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가?
자신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이다.
군대에 있으면서 이것 하나라도 제대로 배우고 나가라.”
장(將)이나 졸(卒)이나 거의 대차가 없음이다.
장(將)이 졸(卒)하고 다름이 무엇인가?
월급이 다름에 있음인가?
나는 감히 말한다.
졸(卒)은 아(我)에 핑계를 대는데 익숙하지만,
장(將)은 피(彼)에 궤(詭)를 구사하여 나라를 구하는데 능하다.
만약 모두 다 차구(借口)에 급급하다면,
뭣 때문에 저들 장(將)에게 월급을 더하고,
면세를 급(給)하며,
금빛, 은빛 훈장을 가슴에 달아주는가?
비오는 오늘.
생각해본다.
“핑계와 계략,
책임과 승패”
계략은 우리를 위해 승리를 꾀하는 병책(兵策)이지만,
핑계는 다만 나 하나를 위해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할 것일 뿐임이라.
핑계에 매몰되면 장(將)도 졸(卒)과 하등 다름이 없음이며,
승리를 위해 꾀를, 계략을 낸다면 졸(卒)인들 장(將)과 달리 나눌 이유가 궂이 어디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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