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두 덩이
풀방구리 녀석은 아마도 마음의 큰 상처를 갖고 있을 것이다.
집안에서는 절대 오줌을 싸지 않는다.
종일 놔두면 오줌보가 터질지언정 결코 오줌을 싸지 않을 태세다.
해서 서울 집에서는 하루에 두세 차례는 꼭 산책을 시켰다.
(※ 참조 글 : ☞ 2010/01/26 - [소요유] - 풀방구리(강아지))
여기 농원에 와서는 좀 환경이 좋아진 셈이지만,
요즘 비가 계속오니 밖으로 나가기가 여의치 않아,
이 또한 여전히 오줌 가리기가 쉽지 않다.
비가 잠깐이라도 그치면 녀석을 데리고 부리나케 산책을 시켜야하니,
녀석보다 내가 더 안달을 부려야 한다.
오늘 비가 그친 틈에 서둘러 강아지를 끌고 길을 나섰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있는데,
세 갈래길 저쪽 편에 휠체어 하나가 보인다.
우물 사건의 할머니인 게다.
(※ 참고 글 : ☞ 2011/05/12 - [농사] - 급수공덕(汲水功德) - (2))
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자락 길을 같이 걷게 되었다.
그 집 앞께를 지나 내 길을 가자자니 소리 하나가 설핏 들려온다.
“개를 끌고 가는 아저씨~”
내가 길을 돌아가자니
“개를 끌고 가는 아저씨~”
한 번 더 들린다.
고개를 돌아보니,
그 할머니가 나를 부르고 있음이다.
개를 끌고 가고 있으니,
맞는 소리이긴 하나,
이것이야말로 완전히 무기질(無機質)한 호칭이요,
무례한 외침이다.
나는 나인 것.
어찌 사물에 의지하여 그 한사람의 인격이 대변될 수 있겠음인가?
“호박 두 덩이 가져 가실려우?”
“됐습니다.”
농사에 있어 물은 생명수와 같은 것.
남의 멱줄을 거머쥐고 농단을 부린 것이 엊그제인데,
호박 두덩이로 허물이 덮어질쏜가?
항차, 그간 밭을 거저 빌려주면서도,
내가 그 집 소출 중 배추 하나라도 탐을 내본 적이 없었음인데.
의로예문(義路禮門)
의(義)의 길,
예(禮)의 문.
의(義)는 사람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어야 한다.
길 아닌 길을 걸으면 사람이 사람 노릇 제대로 할 수 없다.
예(禮)는 문으로 들고 나는 것,
문 놔두고 담장을 타넘는다면 밤손님일 터,
무뢰배(無賴輩)에게 남의 문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기사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말도 있으렷다.
온(全)길에 어찌 문이 있겠음인가?
(※ 참고 글 : ☞ 2008/03/07 - [소요유] - 공진(共振), 곡신(谷神), 투기(投機) ①)
내가 농원을 조성하면서,
혹 기르는 과수에 병충해라도 더할까봐,
일체 다른 작물을 심지 않았다.
허나 이제부터는 조금이라도 밭작물을 심어보려한다.
우선은 심심풀이도 될 터이고,
놀리는 땅도 활용할 겸.
명년 봄엔 호박도 심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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