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義)
의(義)라 하면 정의(正義), 의리(義理) 따위를 곧 떠올리게 된다.
그러한데, 의수(義手), 의족(義足), 의부(義父)는 무엇인가?
여기서의 의(義)는 가(假) 또는 비정(非正) 즉 가짜를 의미하고 있다.
진짜가 아닌 가짜의 손, 발, 아버지인 것이다.
의(義)가 그 뜻을 이리 쉽게 가(假)로 넘겨 줄 수 있는가?
얼핏 생각해도 이는 심한 가치의 전락(轉落)이다.
그러하다면 차라리 가수(假手), 가족(假足) ... 이라 하면 좋을 텐데,
왜 굳이 의수(義手), 의족(義足)이라 하는 것일까?
물론 가수(假手), 가족(假足)이라 쓰기도 하나,
이는 가짜라는 것을 강조하여 특칭하려고 할 때나 쓰고,
보통은 의수(義手), 의족(義足)이라 부른다.
그런데 실인즉,
이 용례에서 의(義)는 가(假)를 의미하고 있다고 새기는 것은,
너무 피상적이고 한가한 처사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의(義)는 결의(結義) 즉 ‘의리를 맺다’란 뜻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혹여 아이들 시험문제에서 의족, 의수에서 義가 의미하는 것은?
이런 물음이 가해진다면, 아마도 출제자가 원하는 답은 假이기 십상이다.
이 사정은 각자 겪는 이가 형편에 맞도록 조치할 일이로되,
내게 그 이상을 묻지는 말기 바란다.
그들은 제 밑천대로 믿을 뿐인 것을. )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이를 뛰어넘어 그 이상의 의리(義理)를 나누고 맺는 행위를 말하고 있다.
가령 의형제(義兄弟)라 할 때,
남남끼리이지만 삽혈(歃血)하여 입술에 축이고,
형제가 되기를 결의한 사이를 말한다.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에서,
유비, 관우, 장비는 도원에서 형제의 의리를 맺는다.
이 때 피를 나눈 사이보다,
관계는 더욱 중하고 아름답게 피어오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뿐이 아니다.
사람과 사물과도 의리를 맺는다.
의수(義手), 의족(義足)은,
사물이 사람의 손, 발을 대신하여 그 뜻과 의지를 돕는다.
어찌 이를 두고 가수(假手), 가족(假足)이라 부르며,
거룩한 정리(情理)를 모독할 수 있으랴?
사무쳐 사물에까지 내려 앉아,
의(義)는 기(氣)를 내리고 정(情)을 기른다.
사뭇 삼연(森然)하니 깊고 엄숙하다.
이 때 나는 문득 조침문이 떠오른다.
우리네 선조들은 가까이 하던 바늘에 이르도록 정리(情理)를 나누고 의리(義理)를 지켰다.
(※ 참고 글 : ☞ 2008/12/07 - [소요유] - 봉타(棒打) 하나.)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의(義)가 사구(詞句)에 prefix로 쓰일 때,
결의(結義)란 뜻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의사(義士), 의부(義夫), 의부(義婦)의 용례에서 보듯,
그 행이 뛰어나 사회적 모범이 되는 경우,
사사로운 관계를 넘어 사회 전체의 우러름의 대상이 된다.
공용에 이바지 될 경우는,
즉 의창(義倉),의사(義社),의전(義田), 의정(義井)에서처럼,
의(義)자를 앞세워 그 뜻을 높이 산다.
사람과 사람을 넘어,
- 의부(義父), 의형제(義兄弟)
사람과 사물에까지 흠뻑 잠윤(潛潤)한다.
- 의수(義手), 의족(義足), 의정(義井), 의견(義犬) ...
이리 볼 때,
의(義)자는 잠깐이나마 가짜에 이르기까지 의심을 받았지만,
결국은 정의(正義), 의리(義理) 등 그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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