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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는 조그마한 일에도 화를내는가

소요유 : 2013. 9. 30. 20:55


<김수영>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

이 시를 앞에 두니,
우선은 내용보다 제목이 더욱 그럴 듯하다.
사뭇 피상적인 태도라 해도 변명할 재간이 없다.

이 시를 끌어들여 진중권은 간단히 이리 써 갈기고 있다.  

<진중권 - 호모 코레아니쿠스>

“...고려대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나는 영화 <혈의 누>를 떠올렸다. (중략) 그에게 진 빚을 탕감 받을 수 있을까 하여 강 객주의 부당한 죽음에 침묵하는 섬 주민들은 우리들 자신의 비루한 모습이다. 주민들은 그 죄를 씻으려고 다섯 번째 범인을 참혹하게 살해하려 한다. 그로써 강 객주의 원혼이 내린 저주를 씻을 수 있다는 듯이. "강 객주여, 이자의 피를 받으소서." 르네 지라르가 말한 '희생양 제의'. 하지만 강 객주의 원혼은 주민들의 머리 위에 핏빛 비를 내린다. 아마도 그의 혈의 누, 처참하게 죽어가면서 흘린 피눈물이리라.
~~
"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어느 작가는 이렇게 물었다. 몰라서 묻는가? 거대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에 가로막힌 물이 제 갈 길을 찾아 우회하듯이, 분노의 흐름도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거대한 것을 피해 사소한 곳으로 흐를 수밖에. 학생들을 탓해서 무엇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맞고 처연히 서 있는 그들의 비루한 모습이 또한 우리의 모습인 것을.”

난 여기에 덧붙여 다른 감상 하나를 뱉어내고자 한다.

내가 겪기론, 시골은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아니 그것을 분간할 염량도 없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난 아낌없이 저들은 촌것들이라 부른다.
촌것들은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 최소한의 염치도, 의리도 갖춘 바 없다.

저 촌것들은 분노가 아니라, 
그렇지, 난 그저 화라고 칭하곤 하는데,
불의나 부정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제 이해가 침해당하는 것에 무작정 화를 내고 본다.

저돌적으로 무작정,
제 욕망에 부역할 뿐,
사소하든, 거창한 것이든, 
부정이든, 불의이든,
그것은 저들에게 결코 문제가 아니 된다.

다만 제 사익(私益)이 침해당하면,
화를 내고 욕설을 쏟아낼 뿐이다.

마치 기어가는 게의 앞길을 가로막으면 마구 게거품을 뿜어내듯,
동전 한 닢을 투여하면 땡그랑 하고 캔음료를 토해내는 자동기계이듯,
저들은 다만 제 사적 이해에 복무할 뿐이다.

난 농민 일반에 대하여는 여전히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겪기론,
개별 촌것들 하나하나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긴장하며 한껏 경계함이 요긴하다고 생각한다.

말을 아끼지 않고 뱉어낸다면,
저들은 마냥 혐오스럽다.

저들은,
천박하고,
무지스럽고, 
파렴치하고,
역겹기 짝이 없다.

아무리 배우지 못했고, 못났다한들,
일말의 양심이나 선량한 구석이라도 있을 터인데,
암만 애를 써도,
도통 이를 찾아내기 힘들다.

게다가 계집들은 사내 녀석들보다 더 극악스럽다.
마치 푸대자루 같이 생긴 계집들이,
천상 박복하여 아름답지는 못할 망정,
마음보마저 따라 흉칙스러울 까닭은 없지 않은가?

무지스럽기도 한데,
게다가 악하기까지 하다니,
정녕 저 촌것들은 무작정 아무나 가리지 않고 가까이 할 족속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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