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초침(露宿草寢)
제집 앞뒷산에는 얼마전까지 노숙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앞산엔 등산 중에 중년 여인네가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목격을 하였으되,
뒷산의 경우엔 직접 마주친 적은 없지만 그 흔적으로 그리 그만 짐작을 하는 겝니다.
뒷산은 전번 저의 글 “개망초”에서 인연 지었던 강아지들을 살피느라,
길도 아닌 그야말로 조도(鳥道)를 헤집고 다닐 때,
산중에 은밀히 쳐진 천막을 발견하고는 발꿈치를 들고 서둘러 피해다녔더랬습니다.
가급적 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불자동차가 저희 동네에 들이닥칩니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뒷산에 불이 났던 것이지요.
뜬금없이 불이 났다고 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립니다만,
저만은 불난 곳이 얼추 그곳쯤임으로 요량되니 해설피 사정이 짐작 되더군요.
다행이 무사타첩(無事妥帖) 바로 불길을 잡았습니다만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나중에 그곳을 가보았더니 짐작대로 풀사람(草人) 천막이
그슬려 무너진 채, 쑥대밭이 되어 있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자리에 왠 신발이 그리 많은지 놀랄 지경이더군요.
남자, 여자 것 가리지 않고 족제비가
제 굴에 북어대가리 물어놓듯이 수십 켤레 너브러져 있더군요.
그 노숙인은 신발 모으는 취미가 있었던 것일까요 ?
아니면 뾰족한 신발을 유감(類感)하여 제 고단한 심사를 달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발은 유감주술(類感呪術)상 성적 상징물로 많이 상정됩니다.
예컨대, 신발은 여성의 음부로 상징되기도 하니 그에겐 대단히 실례되는 바이나,
순간 황순원의 ‘독짓는 늙은이’에서처럼 독 대신
신발을 상대할 그런 그의 모습이 얼핏 생각키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그 천막 중심으로, 필경은 그 노숙인이 버렸을 것일 테지만
쓰레기들을 제가 주섬주섬 치우고 다녔습니다만,
불 타고난 자리는 그야말로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 쓰레기가 쌓였습니다.
소방수들이 불만 끄고 그냥 놔두었기에 쓰레기 치우라고
구청에라도 신고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꾹 참고 말았습니다.
왜인고 하니, 그는 이내 산 등허리를 살짝 꺽어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새로 터를 잡았더란 말입니다.
구청에 신고를 하면 필경 그의 은신처가 발견될 터이니 그로서는 여간 낭패가 아닐 것입니다.
그가 새로 자리 잡은 곳은 계단 형상으로 비탈이 진 곳으로 아랫녘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그 기슭곁 자드락길을 자주 이용하는데,
그후 그 비탈 밑으로 쓰레기가 간단없이 버려지더군요.
우유팩, 음료캔, 비닐봉지 따위를 휙 아래로 던져 버리는 것이지요.
은신처를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으려면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데,
그로서는 당장 제 편한대로 살고 보는 것이 더 급할 노릇이었을 것입니다.
이젠 앞산으로 자리를 옮겨 보지요.
앞산 역시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입니다만, 2년전부터 어디서 한 여인네가 흘러듭니다.
여인네라 그런지 외부로부터 완전히 은폐된 곳이 아닌 비껴 반쯤 노출된 곳에 자리를 틉니다.
보다 깊숙한 곳으로 온전히 감추어 들어가기에는 두렵기에
오히려 반을 남겨 두어 여차직 위급시 밖으로부터의 구원을 예비하려는 뜻이지 않나 짐작해봅니다.
저는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근처를 지날 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무심한 양 그저 지나쳐줍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보이질 않더군요.
하여 한결 편한 마음으로 지나치려는데,
문득 고개를 드니 저만치 홍수에 쓰러진 커다란 도복목(倒伏木)위에
왠 시꺼먼 물체가 보이는 것입니다. 잠깐 놀라 자세히 살펴보니,
시꺼먼 여인네가 가랑이를 갈라 나무를 타고 앉아 머리를 빗고 있는 게 아닙니까 ?
혹여 (목 매단) 자녀목(恣女木)을 보게 된 것이 아닌가 하여 일순 놀랐던 마음이 진정되자,
이젠 속으로 헛웃음이 나옵니다.
하지만 애써 참고 태연한 척 스쳐 지나갑니다.
이 여인네는 늘 앉은 자리에서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빗거나,
거울을 보며 얼굴을 다듬곤 합니다.
빨래도 자주하여 근처 나뭇가지마다 옷가지를 죽 널어놓고는 합니다.
그러하니 홀애비 집에는 이가 서말, 홀어미 집에는 은이 서말이라는
말이 과히 헛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네가 거처하는 곳 아랫 계곡은 역시나 쓰레기가 너저분한 게
흡사 가을걷이 끝난 들판처럼 뒤숭숭합니다.
***
한가한 제 입장으로서는 먼저 쓰레기가 걱정입니다만,
저들이야 그까짓 게 대수가 아닐 것입니다.
배 곯은 부엉이 서럽게 울어대는 밤이면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
나뭇가지를 지나는 저녁 바람이 두런두런 웅성거리고,
풀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문득 아랫녘에 두고온 인연들이
헤진 옷에 달라붙은 깨진 구슬장식처럼 스르랑 소리를 내며 좌르르 흩어집니다.
낮이라 한들 옮겨 다니는 처처가 다 쓸쓸하니 외로울 터이고,
그런 곳이니 또한 슬픔은 얼마나 절절히 배어나겠는지요.
제가 주말마다 들르는 밭, 저편 아래가 한탄강입니다.
저는 부러 그리 내려가 하늘가 나는 기러기를 치어다봅니다.
가지런한 v字 행렬을 보면 마음이 공연히 처연(凄然)해집니다.
달빛을 가르고 삿대 저어 나아가는 저 끝은 어떠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런가?
수천리를 지쳐 나아갈 올배기들의 덜 여문 날갯죽지들은 찢어질 듯 얼마나 아플까?
게다가 짝 잃은 외기러기들은 오죽이나 서러울 텐가?
한즉 항차, 풀에 깃든 사람들의 마음이 어찌 범상하겠는지요 ?
노숙초침(露宿草寢)
이슬 맞아가며 풀숲에 잠자니 그 시고 떫은 고초가 오죽하겠는지요.
버려진 강아지는 그리 살피면서, 사람을 외면하고 다니는 제 맘도 편치 않았습니다.
하여 라면이나 몇 상자 전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일대를 한껏 유린하는 모습이 괘씸하여 망설였습니다만,
이젠 산에 불까지 낼 형편이니 이 또한 염려가 큽니다.
***
일구월심(日久月深)
풀잎 인생일지언정 세월 따라 흘러가다보면 언젠가 좋은 시절이 돌아올런가요 ?
이 아랫녘 저잣거리엔 지금 정의도, 도덕도 내팽겨치고,
그저 돈이면 최고라는 듯이 너도나도 장달음질 치고 있습니다.
언필칭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주축이 된 현정권 역시
권력을 시장에 다 내어주고 뭣을 챙겼는지 모르겠으나,
우박 맞은 호박닢처럼 민초들의 가슴은 휑하니 뚫려 찬바람만 씽씽 붑니다.
조정래의 ‘한강’을 보면 419 이후 민주당 정권내 양대 파벌 수장이
모두 친일 경력의 인사들이었다고 하더군요.
설혹 새로 일군 밭이라한들 씨앗은 여전히 묵은 것뿐이었던 것입니다.
개혁하라고 맡겼더니, 부동산은 득달같이 오르고, 비정규직이 외려 정규화된 나라 꼴이니,
서민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고 모두 흩어져 꺼억꺼억 죽지 꺽인 외갈매기처럼 울고들 있습니다.
莊子가 이르기를 ‘쓰르라미는 봄인지 가을인지를 모른다’ 하였습니다.
당장은 빼먹는 곶감이 달 것 같지만 언젠가 나무곶이만 덩그라니 남을 것입니다.
국토를 배 갈라 창새기까지 내먹고, 멀쩡한 갯벌 막아 골프장 짓겠다는 저 불한당들 !
저들은 정녕 배가 고픈 게 아닙니다.
부른 배를 더 불려 터질 때까지 쳐먹겠다는 수작인 것입니다.
그런 그들 앞세우고 대궁밥 개평이라도 던져 흘리면 주어 먹겠다고
노란 주둥아리 벌려 좇아가는 저 가련하고 미욱한 행진들.
(* 대궁밥: 남이 먹다 남긴 찌거기 밥)
정치하는 치들은, 계집이든 사내든 그게 제 눈에는 전부,
밑품 파는 들병이들,
비역질로 날새는 남색(男色)들로만 보입니다.
특히나 요리조리 셈판 굴리다가,
애써 의뭉스레 웃음 지어내며 옷 뒤집어 입는 것들.
그럴싸하니 유세지원합네 하며
춤추고, 나발 부는 것들을 보면 욕지기가 다 입니다.
선거 끝나면 어느 때 그러했느냐는 듯,
싹 되돌아설 작자들입니다.
말 죽 떠먹은 자리 흔적이라도 남을줄 압니까 ?
제 인생 전체를 돌아보아도 알짜없이 늘 저들은 그러했습니다.
숙주나물 쉬어 터지듯 잔치도 끝나기 전에 제 알속셈 챙기기 바쁜 치들이 그들입니다.
하지만, 감나무 밑에 홍시 떨어질 날 기다리며 입 벌리고 선 민초들.
실로 딱한 것은 이들이 아닌가 합니다.
노숙인들이 노숙초침(露宿草寢)한다면,
서민들 역시 숙초행로(宿草行露) 이슬 젖은 풀숲을 정처없이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라는 것이 이 피폐해진 민초들을 보듬고 껴안는 것이 되지 않는다면,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박정권 때도 닭장 같은 움막집에 사는 여공들을 몰아붙여 쥐어 짜내면서,
저들은 이르기를 기업이 잘되고, 국가가 부강해야 네들한테 돌아갈 떡이 많아지니,
그 때까지 꾹 참아야 한다고 어르고 달래며 속였지요.
하지만, 지금이란들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네들 몫은 여축없이 book-keeping 하고 있다고 닦아세우지만,
늘 그러하듯이 closing(결산)은 유보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부 수립이후 지금까지 여전한 것입니다.
삼성이 흔들리면 나라가 망하니, 덮고 가자고 하는 축들이 슬슬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표 따내어야 하기에 은밀하지만, 때 되면 드러내놓고 이들을 비호할 것입니다.
x-file 사건 때, 노무현의 ‘도청이 본질’이라는 문법의 구조는 박정권 때와 한치도 다름이 없습니다.
게다가 삼성 이건희에 대하여도 사법적 처벌이 본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후보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심은 이러한데도 거죽으로 서민을 위한다며 쏟아내놓는 정책들은 달기가
다락에 감추어둔 조청단지 몰래 찍어먹는 것보다 더 진합니다.
사타구니에 물 마를 새 없는 창부(娼婦) 10년에 남은 것은
속곳 등속만 삼층장을 가득 채웠다 하는데,
정치하는 치들이 부끄러움도 없이 하늘 높이 걸어 내놓는 언약의 깃발들이야말로
이를 무색케 하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정치라는 것이 실제 헐벗고 굶주린 이들의 눈물을 먼저 닦아주지 않는 것인 한,
그 어떠한 것이라도 그저 지들 모리(牟利)를 탐하기 위한 분단장에 불과합니다.
이 깨달음에 다다를 때쯤이면, 거개는 한껏 조리질을 당한 끝에 이미 기가 쇠하고
털 빠진 반백노인(斑白老人)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명박, 동영, 국현, 영길, 회창 ... 그 누구든
저는 아무에게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남한테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누가 누구보다 더 정치를 못하거나,
또는 더 잘하리란 보장이 있으리란 가정조차 하지를 않습니다.
일부에서 떠받들듯 그리 잘났다는 노무현에게 학을 떼고는
이명박 지지하겠다는 사람들이 물 불어난 방죽처럼 넘실되고 있지를 않습니까 ?
(* 하지만 글 말미에 붙여둔 동영상을 보노라면,
재미도 있지만, 초등학교시절 운동회 때 파란 하늘을 향해 날아가던
고무풍선처럼 마냥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짜증나는 선거판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선사한 허후보를
지난 대보름에 달 따던 장대 꺼내어 그 끝에 높이 올려두고 한껏 치하하는 바입니다.)
자강자애(自强自愛)
저는 비바람 불어재껴도 올곧은 제 길을 묵묵히 걷기를 소망합니다.
기대가 없다면,
투정도 없을 터.
뒤돌아본 지금, 총총 드러난 더러운 배반이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습니다만,
이 또한 맥없이 희망을 저당잡힌 슬픈 자화상일 뿐.
애석우모(愛惜羽毛)
새가 자신의 깃털을 아껴 소중히 하듯,
자신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
이 다짐을 스스로에게 되먹이며 담담히 제 발끝을 지켜보고자 합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예전에 현대그룹 회사를 가보면
故정주영의 다음과 같은 말이 액자에 담겨 사무실에 걸려 있던 것을 보곤 하였습니다.
“淡淡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바르고 굳세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千萬, 萬萬 모두 제 흥에 겨워 목울대 높여 외장(獨場)치는
오늘의 역사현장, 그럴수록 담담하여야 한다고 가만히 되새깁니다.
이러할 때, 故정주영 당자의 人物 시비여하간에 불현듯
그의 말이 떠올랐기에 상기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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