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 토론과 된장국
최근 야당 국회의원들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Filibuster)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광진, 은수미 의원은 종전의 시간 기록을 갱신하며 장시간 토론을 이어갔다.
은수미 의원은 10시간을 넘겨 발언한 뒤 내려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1992년 국정원에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수술까지 받은 전력이 있다고 한다.
비록 20여 년 전의 일이나, 그의 건강 상태 조건을 언론들은 지적하며,
오늘의 토론 노역(勞役)의 강도를 더욱 크게 집중 조명하고 있다.
국회법 제106조의2(무제한 토론의 실시 등)
① 의원이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하여 이 법의 다른 규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는 토론(이하 이 조에서 "무제한 토론"이라 한다)을 하려는 경우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이 경우 의장은 해당 안건에 대하여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여야 한다.
② 제1항에 따른 요구서는 요구 대상 안건별로 제출하되 그 안건이 의사일정에 기재된 본회의 개의 전까지 제출하여야 한다. 다만, 본회의 개의 중 당일 의사일정에 안건이 추가된 경우에는 해당 안건의 토론 종결 선포 전까지 요구서를 제출할 수 있다.
③ 의원은 제1항에 따른 요구서가 제출된 때에는 해당 안건에 대하여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1인당 1회에 한정하여 토론할 수 있다.
④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본회의는 제7항에 따른 무제한 토론 종결 선포 전까지 산회하지 아니하고 회의를 계속한다. 이 경우 회의 중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이 출석하지 아니한 때에도 제73조제3항 본문에도 불구하고 회의를 계속한다.
⑤ 의원은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안건에 대하여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으로 무제한 토론의 종결동의를 의장에게 제출할 수 있다.
⑥ 제5항에 따른 무제한 토론의 종결동의는 동의가 제출된 때부터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무기명투표로 표결하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 경우 무제한 토론의 종결동의에 대하여는 토론을 하지 아니하고 표결한다.
⑦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안건에 대하여 무제한 토론을 할 의원이 더 이상 없거나 제6항에 따라 무제한 토론의 종결동의가 가결되는 경우 의장은 무제한 토론의 종결 선포 후 해당 안건을 지체 없이 표결하여야 한다.
⑧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중에 해당 회기가 종료되는 때에는 무제한 토론은 종결 선포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바로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하여야 한다.
⑨ 제7항 또는 제8항에 따라 무제한 토론의 종결이 선포되었거나 선포된 것으로 보는 안건에 대하여는 무제한 토론을 요구할 수 없다.
⑩ 예산안등 및 제85조의3제4항에 따라 지정된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에 대하여는 제1항부터 제9항까지의 규정을 매년 12월 1일까지 적용하고, 같은 항에 따라 실시 중인 무제한 토론, 계속 중인 본회의, 제출된 무제한 토론의 종결동의에 대한 심의절차 등은 12월 1일 자정에 종료한다.
그의 눈물 그리고 동료의원의 포옹을 보자 나는 별스런 생각이 떠올랐다.
고작 10시간을 두고 저리 언론의 집중 시선을 받는구나.
저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반드시 정치적인 사안의 중대성만을 두고 저리 요란을 떨지는 않을 것이다.
거긴 정치적 자극 요소 외에 추가로 과잉 반응을 일으키는 동인이 내재하여 있을 것이다.
이 땅의 노동자 중에 하루 10시간 노동을 하는 이가 어디 한 둘인가?
주위를 둘러보라.
택배기사 아저씨는 종일 차량으로 달리고, 종종 걸음으로 골목길을 내달린다.
동네 마트의 카운터, 그리고 매장 정리원들 역시 거의 종일 선 채로 일을 한다.
일 년 내내 이리 일을 하고 있지만,
퇴근 할 때 저이들은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또한 마중 나온 이들이 포옹을 하지도 않으며,
언론들이 달려들어 촬영을 하지도 않는다.
이는 저들이 눈물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흘린 눈물조차 다 마르고 더 이상 나올 것이 없기 때문이다.
포옹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포옹할 기력이 없을 정도로 지쳐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귀에 설기 짝이 없는 무제한 토론을 위해,
딱 하루 일을 벌이는데도 저리도 요란스럽다.
난 지금 야당의 정치적 주장을 두고 옳다 그르다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기에 내 입장을 먼저 밝혀둔다.
이번 무제한 토론을 일으킨 원인이 되었던 테러방지법을 나는 지지하지 않는다.
테러방지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 법으로 인해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될 우려가 많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과 시민들의 유사 행위를 두고,
사회적 반응 양식의 저 비대칭성, 불균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극 양으로 따진다면, 시민 노동자들의 연중 지속되는 노동 강도는,
국회의원들의 일회성 노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크다.
예전에, 고 정주영 회장이 된장국(찌개?)을 잘 먹는다는 사실을 두고,
서민적이라며 놀라듯 전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이 된장국 먹는 것이 왜 놀라운 일이 되어야 하는가?
그는 그냥 여느 한국 사람처럼 된장국을 좋아 하는 것으로 보아줄 수는 없는가?
그가 여느 사람과 다른 경제적 지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일개인의 식 습성을 두고 특별한 듯한 정보를 생산해내고 있는 언론,
그리고 이를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소비하고 있는 독자는 왜 그러한가?
저들의 계급내지는 계층이 일반인들과는 다르다고 규정할 때,
사람들은 저런 객관적 사실을 사회학적으로 해석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10시간 토론이든 노동이든 별반 다르지 않은 사실을 두고도,
사회학적으로는 다른 가치를 부여하고, 달리 해석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국회의원이니까 남과는 다른 정치적 지위 또는 권세를 갖고 있다.
그러한 이가 10시간 넘게 노동자의 노동과 엇비슷한 강도 높은 고통을 감수했다.‘
‘정주영과 같은 경제적 상위 지위를 가진 이가,
된장국과 같은 싼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너무도 검소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리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저들에겐 저런 행위 신호는 강력한 정보를 생산한다.
나는 이런 정보가 나약하고 불안한 이에게 기생하여 만들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막스 베버는 사회는 계층 분화가 중층적으로 이뤄졌다고 본다.
경제, 사회, 정치적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눠져 있다고 한다.
이런 계층화엔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가치가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현실에선 정치적 지위를 가졌다한들, 경제적 지위가 높지 않을 수 있다.
가령 국회의원이라한들 재벌처럼 돈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럴 경우 지위 불일치(地位不一致, status inconsistency)가 일어난다.
국회의원 하나가 여기 있다.
자신의 정치적 권세에 비해 가진 돈이 없음을 한탄할 수 있다.
이런 지위 불일치가 일어날 때 불만이 생긴다.
막스 베버의 계층이론에선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가치가 반영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게 진정 합의에 의한 결과인지,
아니면 사회의 견고한 구조적 조건 하에,
수동적으로 결박, 구속된 것인지는 좀 따져 봐야 한다.
가령 지역 사회에 따라서, 지위에 따른 보상 가치가 다른 경우,
이게 민주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치 권력자의 임의적 통제 또는 유도, 방임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의사와 거리 청소 노동자의 경제적 보상이 별반 차이가 없는 사회와,
큰 차이가 나는 사회가 지구상엔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 지위 불일치에 따른 갈등이 후자에 비해 평균적으론 적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저런 사회에 속한 의사는 외려 상대적 불일치 불만을 더 가질 수도 있다.
계층 간 가치 보상 프로세스가 과연 자연스런 사회 구성원의 의사에 따라 진행되는가?
그런데, 내가 이 모든 것을 따질 여유는 없고,
다만 여기서 다루고 싶은 나의 한 의구심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얼핏 외견상으로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왜곡된 심리가 투사된 결과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가령 정주영이 된장국을 먹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면,
사람의 재부(財富)와 식성은 상당 수준의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여도,
개인 선호까지 이런 관계 속에 함몰시키는 것은 너무 고식적이고, 속물스럽다.
나는 지금 모든 현상을 기히 형성된 계층 질서 속에서,
파악하는 현실 인식의 천박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가 된장국을 즐겨먹든, 김치찌개를 좋아하든,
이것이 왜 그의 검소함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어야 하는가?
한국인이 이런 것을 좋아하는 것은 그저 일반적인 속성이 아닌가?
그는 한국인이다.
그런데, 그에게 만은 이런 일반 조건이 특수하게 취급되고 마는가?
이런 의식 하에선,
계층 또는 계급에 상당하는 지위나 그 가치에 대한 재평가(revaluation)가 이뤄지기 어렵다.
기존 질서에 긴장과 갈등을 갖고 있을 때 건전한 비판과 반성적 성찰이 따르고,
그 계층 지위에 따른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fair valuation)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역동적(dynamic)으로 행해질 수 있다.
혁명(革命)이란 무엇인가?
천명(天命),
하늘의 명령을 유동화 시키는 작업이다.
명이 하늘로부터 곧장 수직적으로 하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부터 곧추서서 하늘로 치오르며 명을 뒤집으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天地革而四時成,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革之時大矣哉!
(彖傳)
“하늘과 땅이 변하여 사시사철을 이룬다.
탕왕과 무왕의 혁명은 하늘에 순하고, 사람에 응하는 것이라,
혁명의 때가 크도다.“
革、改也。
“혁이란 고치는 것임이라.”
그러니까, 하늘의 이치는
사시사철이 변하듯,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함으로써 때를 이루는 것이다.
탕왕과 무왕도 걸주(桀紂)를 치고 새 질서를 세웠으니,
이는 하늘의 뜻을 따른 것이요,
사람의 인심에 응한 것이란 뜻이다.
고작 된장국 먹는 것을 두고는 검소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이란,
이 얼마나 누추한가?
그가 다른 것 먹다 질려 된장국을 먹을 수도 있고,
본디 좋아하여 상시로 먹을 수 있을 뿐인 것임이라.
이 따위 자료가 무슨 정보 가치가 있단 말인가?
계층내지는 계급 가치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아니 순시적으로 변용(變用) 재평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계급 평등 찬부(贊否) 여부를 불문하고,
가치란 변화하는 것을 본령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天地革而四時成이란 바로 이런 사정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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