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알파고 관련 단상(斷想)

소요유 : 2016. 3. 17. 17:43


알파고 관련 단상(斷想)



(Event Google DeepMind Challenge Match

Round 4

Black AlphaGo

White Lee SeDol, 9p

Komi 7.5

Date 2016-03-13

Place Seoul, Korea

Result W+R

Program sgf2misc:3.1.9)


나는 앞의 글에서 “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기지 못한다.” 이리 말했다.

차후 그 이유를 말하겠다 하였다.

헌데, 이세돌은 게임의 룰에 따라 이미 지고 말았다.

잔바람에 봄꽃이 떨어지듯,

그리 지고 말았다.


敗軍之將,不可言勇;亡國之臣,不可言智。


“패장은 용맹을 말할 수 없고,

망한 나라의 신하는 지혜를 논할 수 없다.”


내 저 게임의 패장은 아닐지언정,

곁에 지켜서며 내놓은 말에 어찌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겠음인가?


君子之言,信而有征。


“군자의 말이란 미더어야 하며,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내 말이 어긋났으니 미더움을 잃었고,

증거가 없으니 새삼 이를 것도 없이 군자의 덕을 상케하였음이다.

천만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言有信而不為信,言有善而不為善者,不可不察也。


“말엔 믿음이 있으되, 믿음을 위할(살) 수는 없으며,

말에 선함이 있으리되, 선함을 빙자할 수 없음이니,

불가불 잘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내 결코 믿음을 꾸미고,

선한 척 하려는 바는 아니로되,

도대체가 인간 지능, 지성을 넘보는 기계를 앞에 두고,

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음인가?


허나, 기계가 사람을 능가한다면 이 또한 인간세 명운이라,

이 또한 그리 될 수밖에 없는 도리가 있음이라,

무작정 인간 우위를 고집하고 싶지는 않다.


자리를 쓸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이제, 변명이 아니라,

알파고와 인간의 대국에 따라,

내 가슴과 머릿속에서 일어났던 정감과 생각을 그저 적어두려 할 따름이다.


헌데, 그 말씀에 앞서 먼저 점검해 둘 일이 있다.

컴퓨터(computer)란 무엇인가?

이것 글자 그대로 하면 ‘컴퓨트(compute)하는 것’이란 뜻이다.

그럼 compute란 무엇인가?

“계산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computer는 곧 계산기에 다름 아니다. 

탁상용 계산기(calculator) 역시 calculate(계산하다)”란 것이니,

본질인 계산한다라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다만, 전자는 OS(operating system) 주도하에 諸전자장치가 통할되어,

보다 조직적으로(systematic) 운영된다.

또한 후자와 같은 기본적 산술 연산(演算)내지는 수학적 연산을 넘어,

다양한 목적 기능 영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후자는 대개 dedicated device(專用器機)로 만들어지며,

microprocessor만으로도 충분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전자는 물론 프로그래밍을 통해 얼마든지 후자의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이렇듯 둘 사이는 구별이 되지만,

양자는 모두 ‘계산’이란 본질적이고도 본원적인 능력 특성을 함께 한다.


컴퓨터의 컴퓨팅 능력(computing power)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해나가자,

인간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 이들을 활용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mimic), 대체하는 인공지능 분야이다.


지능(知能, intelligence)이란 단순한 계산 능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능이란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나,

이 자리에서는, 과제상황을 분석하고, 이해하며, 선행지식을 활용하여,

문제내지는 상황에 대한 적응적(adaptive) 또는 창의적(creative) 해결 능력이라 해두자.

또한 지능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능력(learning ability)을 통해 가변적으로 진화한다.


지능은 과거 인간만이 갖는 고유의 특성이라 여겨지기도 하였다.

때문에 대체로 인간에 대하여만 연구되어 왔다.

하지만, 인간외의 생물에서도 관찰이 되며,

(전자)기계를 통해 구현된 소위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도 연구되고 있다.


앞에서 컴퓨터는 본질적으로 계산기와 다름없다 하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인간의 두뇌에 해당되는 CPU(central processing unit),

그리고 그 안의 핵심 단위인 ALU(arithmetic logic unit) 때문이다.

ALU는 산술, 논리 계산의 중추로서,

여기서, 산술이란 다 아시듯이 +-*/ 등의 사칙연산을,

논리란 and,or,not,xor, 크다, 작다... 등등을 뜻한다.


사람은 ALU의 연산 기능 능력 외에도,

인식, 추론, 판단, 추상화, 학습 등등의 능력을 가졌다.

이런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어 창조적인 업적(業績)을 일궈낸다.


인공지능이란 본질적으로는,

컴퓨터의 핵심 기능 단위인 ALU의 산술&논리 능력에 단단히 정초(定礎)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감히 지능이라 이르고 있는 까닭은,

그것이 인간유사성(人間類似性, Human likenesses) 지능 기능을 상사(simulate)하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인간 외에도 지능을 가진 생물 존재가 과연 있는가?

또 하나는 기계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발휘하는 특정 효력 내용을 과연 지능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컴퓨팅 능력(computing power)을 특정 과제 해결을 위해 고안된,

수학적 체계(mathematical systems) 속에서, 

조직(organization), 조작(manipulnation)하여,

창출되는 여하한 결과를 두고 지능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런 효력 내용만으로 규정되는 이름 곧 지능이란,

그 밖의 내재적 가치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든가,

그 내용의 부재를 의미하는가 하는 물음인 것이다.


가령 알파고가 이세돌을 비롯한 뭇 프로바둑기사도 미처 생각하지 않은 수를 두고,

이로써 좋은 결과를 내었다 할 때,

그 알파고의 과제 수행 능력을 지능과 동가동치(同價同値)로 규정해도 좋은가?

이리 결과를 곧 가치나 존재로 환원시켜버릴 때,

정신은 기계나 물질의 단순 현상에 불과하게 된다.

이러한 기계론적 사상이나 환원주의적 태도는,

그 시비(是非)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과연 검증 자체가 가능이나 한가도 의심스럽다.

게다가 이런 태도 하에 예기치 않은 위험과 맞닥뜨릴 때,

우리는 큰 혼란에 빠질 우려가 크다.


과연 기술을 지능이나 지성과 견줄 수 있는가?

우리는 기술과 지능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알파고는 오직 바둑만 둘 줄 안다.

딥마인드는 향후 범용 인공지능을 지향한다고 하였다. 

이는 아직 인공지능은 특정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기술일 뿐,

지능이라 부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저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 범용 인공지능 기술을 만들어낸다한들,

그것이 단순한 부분의 집합 기술일 뿐 지성으로 보아도 괜찮은가?

하는 의문을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부분은 향후 더 자료가 많아진 다음에 보다 명확해질 터이지만,

현재로서는 인공지능은 지능이 아니라 기술(technology)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정책망(policy network)과 가치망(value network)이란 것은,

기술에 불과하다. 

그들 교합(交合)에 따라 얻어지는 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외양상 지능을 상사(相似, simulation)하였을 뿐,

그 자체가 지능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기술을 거부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딥마인드가 만들어낸 알파고의 경이적인 능력에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나아가 저 기술적 내용들이 인간 지능을 모사하는 것을 넘어,

자족적 실재(實在)로 진화한다한들 저들을 무조건적 악으로 부정하고 싶지 않다.

여기 인간 또는 인간외 생명 지능과 물질적 지능 간의,

가치, 존재론적인 위계(位階) 문제가 제기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의 가치, 존재를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고, 또는 기계라 하여 하시(下視)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제 존재를 경이로운 눈으로 대한다.


다만 생명공학처럼 생명을 대상으로 한 기술적 조작엔 무조건적으로 저항한다.

생명을 상대로 한 그 어떠한 조작질도 나는 악으로 규정한다.

내가 블루베리를 키우면서 무농약, 무비료의 자연재배를 하는 것도,

이러한 나의 확고한 철학적 현실 실천의 한 모습이다.

그러하지만 송구스럽게도, 나는 나무에 전지(剪枝)를 조금 가하고 있다.

이는 내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향후, 좋은 도리가 찾아지길 기대하며, 열심히 궁리 중이다.


하지만, 이것이 반윤리적 또는 자본의 독수에 걸려 악용될 것을 경계한다.

기실 나는 인공지능 수법들에 강한 지적 호기심을 느낀다.

내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탐구하고도 싶다.

과연 지금 형편으로 미뤄, 시간이 남아 있을런가 의심스럽지만.


지난 1997년 체스 프로그램인 딥 블루(Deep Blue)는,

세계 체스 챔피언인 카스파로프를 이긴다.

이 프로그램은 가능한 모든 수를 무지막지하게 노가다질(brute force)을 하여,

다 검토를 한 후 착수한다.

이것은 지능이랄 것도 없다.

다만 고속, 다중 병렬 컴퓨팅 능력의 결과일 뿐이다.


바둑은 체스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상태 공간(state space) 수가 있다.

19*19의 착점 가능한 곳이 있고,

그 각각은 흑, 백, 그리고 빈 공간 세 가지 상태가 가능하다.

따라서 총 상태(state) 수는 3361이 된다.


게다가 착수가 번갈아 이뤄지며 게임 당 200 ~ 300 수 가량 진행된다.

그 게임의 복잡도는 아마 지구상의 어떠한 게임도 당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바둑 프로그램은 체스 프로그램처럼 brute force로는 해결이 난망하다.

그래서 적용되는 기법이 MCTS(몬테카를로 트리탐색, Monte-Carlo Tree Search)이다.

이것으로 성과를 내고 있으나, 이는 본질적으로 근사 접근법이지,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이 수법이 미치지 못하는 순간,

결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게 기계, 전자식 지능의 본질적인 한계다.

이 부분에 관심 있는 분은 다음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529/n7587/full/nature16961.html#tables

http://googleresearch.blogspot.kr/2016/01/alphago-mastering-ancient-game-of-go.html


이번에 나는 우리사회의 건강성에 대해 걱정을 좀 했다.

프로 바둑기사가 공론의 장에 많이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로되,

IT전문가라든가, 인공지능 전문가가 별반 전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철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인지과학자 등속은 무엇을 하기에 입을 다물고 있는가?

이런 사태 상황이 벌어졌으면, 

평소 공부한 바로, 세상을 해석하고, 세계를 전망하며,

활발한 공론의 장을 열어젖혔어야 하지 않겠음인가 말이다.

인문학 열풍 운운하며 난리를 치고 있지만,

얄팍하게 달콤한 소비만 하고, 그래 이것 사치(奢侈)가 아닌가?

정작은 생산적 주체가 될 실력은 없는 것이다.

우리네 사회가 이리도 층이 얇고, 깊이가 얕지 않은가?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다.


다시 말을 바로 잡아 잇자.

인류는 이 물음(기계 지능)에 답하기도 전에,

먼저 지능을 가진 기계를 구현하였다고 기염을 토하곤 하였다.

인간이란 이리도 사납도록 조급하기도 하고, 천박하기도 한 것이다.


1770년 헝가리에서 ‘The Turk’라 불리우는 체스 플레이어가 제작되었다.

이 기계는 유럽 전역을 휩쓸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1830년대에 미국을 순회하였는데,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이 기계를 보고는,

정교한 사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추측하였다.

추리소설의 대가인 포의 짐작은 사실로 밝혀졌다.

기계 장치 안에는 독일의 체스 명인인 빌헬름 슐룸베르거(William Schlumberger)가,

숨어서 장치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에는 여러 판본이 있다.

가령 앨런 포가 여러 엉터리 추측을 하였다는 문헌도 있다.

터크는 이리저리 소유자가 바뀌기도 하였고,

거기 숨어 사기 플레이를 하는 사람도 여럿이 된다.


여담이지만, 아마존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일자리 Amazon Mechanical Turk는,

바로 이 터크에서 이름을 빌린 것이다.

( → https://www.mturk.com/mturk/welcome)


하여간 지능을 가졌다 이르는 기계 장치는 전자 컴퓨터가 등장하자,

더욱 그럴듯한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 바둑을 겨냥하여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도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중 하나.

알파고는 하사비스(Demis Hassabis, 1976)가 대표로 있는 딥마인드(DeepMind)에서,

만든 인공지능 바둑 게임 프로그램이다.

(http://demishassabis.com

https://twitter.com/demishassabis)


이 괴물과 이세돌이 붙었다.

2016.03

4:1로 알파고가 이겼다.

과연 이세돌의 전략과 전술은 무엇이던가?


여담이지만, 흔히 전략과 전술을 구별하여 쓰지 않고 섞어 쓴다.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하면,

전략/전술의 기대 목표는 달성될 수 없다.

나중 기회가 있을 때, 이 둘에 대하여 말씀을 나눴으면 싶다.

이 자리에선 세인들의 이해대로 그냥 구별 없이 사용하련다.


바둑 두는 것을 보니,

처음에 이세돌은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알파고한테 이끌려 다녔다.

이는 전술이 아직 확고히 서지 못한 소이가 아닌가 싶다.


반전무인(盤前無人)이라,

본디 바둑판을 앞에 두고, 상대를 의식하게 되면, 사(邪)가 낀다.

바둑 고수 마융은 그래서 이런 말을 남겼다.


怯者無功 貪者見亡 (馬融) 


“겁을 내면 공을 이루지 못하고,

탐을 내면 망한다.“


강수에겐 겁을 내고,

약수에겐 교만한 마음을 내게 된다.


한즉 진정한 고수는 바둑 판 앞에 앉으면,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다만 기리(棋理)를 찾아 돌을 두어나간다.


나 같은 하수가 어찌 프로의 마음을 알겠는가?

하지만 이번 대국을 보면 상대를 너무 의식하여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럴 양이면,

초반을 알파고에 다 내주는 한이 있어도,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는 전술을 써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齊威王暇時,常與宗族諸公子馳射賭勝為樂。田忌馬力不及,屢次失金。一日,田忌引孫臏同至射圃觀射。臏見馬力不甚相遠,而田忌三棚皆負,乃私謂忌曰:「君明日復射,臣能令君必勝。」田忌曰:「先生果能使某必勝,某當請於王,以千金決賭。」臏曰:「君但請之。」田忌請於威王曰:「臣之馳射屢負矣。來日願傾家財,一決輸贏,每棚以千金為采。」威王笑而從之。是日,諸公子皆盛飾車馬,齊至場圃,百姓聚觀者數千人。田忌問孫子曰:「先生必勝之術安在?千金一棚,不可戲也!」孫臏曰:「齊之良馬,聚於王廄,而君欲與次第角勝,難矣。然臣能以術得之。夫三棚有上中下之別。誠以君之下駟,當彼上駟,而取君之上駟,與彼中駟角,取君之中駟,與彼下駟角;君雖一敗,必有二勝。」田忌曰:「妙哉!」乃以金鞍錦韉,飾其下等之馬,偽為上駟,先與威王賭第一棚。馬足相去甚遠,田忌復失千金。威王大笑,田忌曰:「尚有二棚,臣若全輸,笑臣未晚。」及二棚三棚,田忌之馬果皆勝,多得采物千金。田忌奏曰:「今日之勝,非臣馬之力,乃孫子所教也。」因述其故。威王嘆曰:「即此小事,已見孫先生之智矣!」由是益加敬重,賞賜無算。不在話下。(東周列國志)


“제나라 위왕은 한가할 때, 왕족들과 달리는 말 위에서 활쏘기 내기를 즐겼다.

전기(田忌)는 말이 약하여 누차 돈을 잃었다.

하루는 전기가 손빈(孫臏)을 이끌어 함께 경기장에서 이를 관전하였다.

손빈이 보니 말들의 능력 차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기는 3번이나 졌다.

손빈은 은밀히 전기에게 말하였다.


‘군께서는 내일 다시 시합을 하소서.

신은 능히 군께서 필승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말하다.


‘선생이 나를 이기게 하신다면,

나는 마땅히 왕께 천금을 걸고 시합을 하시자고 청을 넣겠소.’


손빈이 말하다.


‘군께선 거리낌 없이 청하소서.’


전기는 위왕께 청하다.


‘신은 마상 활쏘기 내기에서 누차 지기만 하였습니다.

내일은 재산을 모두 기우려 한번 승부를 내길 원합니다.

매번 천금을 걸기로 합소서.’


위왕은 웃으며 이를 승낙하였다.


이날 제(諸)공자들은 모두 마차를 성대히 장식하고는 경기장에 당도하였다.

백성들도 수천인이 모여들었다.

전기가 손자에게 묻는다.


‘선생의 필승지책은 어떠한 것이오?

매번 천금이란 결코 가지고 놀 놀이가 아니외다.’


손빈이 말하였다.


‘제나라의 모든 좋은 말은 왕의 마구간에 모여 있습니다.

군께선 그보다 못한 말을 가지시고 승리를 다투시니 어려운 노릇이지요.

그러나 신은 술수로써 승리를 해보이겠습니다.

무릇 세 번 중에 상중하의 구별이 있습니다.

만약 군의 아랫길 말로서 상대의 윗길 말을 맞게 하시고,

군의 윗길 말로서 상대의 중간 치 말을 맞게 하시고,

군의 중간 치 말로서 상대의 아랫길 말을 맞게 하시면,

군께선 한 번 지시지만, 두 번을 반드시 이기시게 됩니다.’


전기가 말하다.


‘교묘하구나!’


이내 금안장과 비단 언치(saddlecloth)로 아랫길 말을 꾸며, 

상등 말인 양 속였다.


먼저 위왕과 첫 번 째 경기를 벌였다.

두말의 차이는 심히 벌어졌다.

전기는 천금을 잃었다.


위왕은 크게 웃었다.

전기는 말하였다.


‘아직 두 번이 남았습니다.

신이 만약 전부 지면,

그 때 신을 비웃으셔도 아직 늦지 않았사옵니다.’


두 번, 세 번 째에 전기의 말은 모두 이겼다.

천금을 많이 따들였다.

전기가 아뢴다.


‘금일의 승리는 신의 말의 힘이 아니고,

손자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 연고를 아뢰다.

위왕은 탄식하며 말하다.


‘이런 사소한 일이지만, 손선생의 지혜를 알게 되었도다!’


그런고로 존경심이 더욱 더해졌고,

상을 셀 것도 없이 많이 내렸음이니,

이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孫臏獻計:田忌賽馬
回數田忌所用馬等級齐威王所用馬等級結果
1名義:上等
實際:下等
名義:上等
實際:上等
齊王勝
2名義:中等
實際:上等
名義:中等
實際:中等
田忌勝
3名義:下等
實際:中等
名義:下等
實際:下等
田忌勝
(src : zh.wikipedia.org)

이게 바로 전기새마(田忌賽馬)의 고사다.

육참골단(肉斬骨斷)이란 왜색(倭色) 짙은 말을 나는 쓰지 않는다.


이 정도 대국이라면,

사전에 준비가 되어 있었어야 한다.

가령 한국기원에서 IT, AI, 바둑 전문가와 전략학자(戰略學者) 들을 초치(招致)하여,

대책을 강구하고, 결과를 모아, 이세돌에게 적절한 조언을 했어야 한다.

그랬더라면 초반 대국에서 그리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전무인(盤前無人)이나, 반상무석(盤上無石)이란 말은,

실로 너무 높디높이 고상하고, 깊디깊어 심원하다.

아, 까무룩히 멀리 떨어진 도(道)의 세계이어라.


헌즉 땅 위에 거하는 사람들의 세계라면,

차라리 자료를 모아, 전략을 세우고,

알맞은 전술을 찾는 편이 한결 현실적이었으리라.


知彼知己,百戰不殆;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不知彼,不知己,每戰必敗。

(孫子兵法 謀攻)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위태롭지 않다.

상대를 모르고 나만 알면,

일승일패다.

상대를 모르고,

나조차 모르면,

매 싸움마다 진다.”


그러함이니,

차라리 하나를 내주고 다음을 도모함이 득책이다.

가령, 1차 대국에서 승부를 의식하지 않고,

시험 삼아 여러 유형의 탐석(探石)을 양껏 던져두며,

반응 양태 자료를 수집하여,

차후의 전략/전술적 기초로 삼았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러한 것을 대국(對局) 차수(次數)를 메꾸어 대(對)하려 하였음이니,

곤란한 일을 겪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조훈현은 정치 장바닥을 기웃거리고 있다.

무릇 장수는 말 위에서 죽고,

장사꾼은 장터 목판 위에서 죽는 법.

송충이가 솔잎을 먹지 않고,

뽕잎을 엿보다가는 자칫 예기치 않게 봉욕(逢辱)을 당하게 된다.


평생 그를 응원하였는데,

실연을 당하듯 마음이 어지럽구나.


***


알파고는 패(覇)를 꺼린다?


패(覇)는 원래 달이 막 자라 빛이 어스름이 빛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뜻한다.

이 단계를 백(魄)이라 하기도 한다.

춘추시대 흔히 오패(五霸)라 하는 패자는 본디 오백(五伯)을 가리킨다.

근데, 후인들이 나중에 侯伯을 혼동할까봐,

백(伯) 대신 패(覇)자를 차용하여, 이를 구별하였다 한다.

(五伯之伯讀曰霸。伯者,取牧伯長諸侯之義,後人恐與侯伯字相溷,故借用霸字以別之。)

그러니까 원래의 뜻과는 달리 쓰이게 된 폭이다.

이제는 패(覇)자는 그 뜻이 권세, 권력을 전횡하는 자(者)로 굳어져 쓰인다.

영어로 풀면 그 뜻이 더욱 확연하니 다가온다.

rule by might rather than right


이게 바둑 용어로 전용이 되어 쓰이고도 있는 바,

쌍방의 돌이 상호 단수로 맞물려 있는 모양을 가리킨다.

일방이 상대 돌 하나를 따내면, 반대로 자신이 단수가 된다.

이 때 상대가 돌 하나를 따내게 되면, 이쪽이 다시 단수가 되고 만다.

따라서 번갈아가며 단수를 따내게 되는데,

이리 되면 그 끝을 아지 못하게 된다.

그런즉, 돌 하나를 따내면 그 상대방은 다른 곳에서 한 수 이상 착수를 한 후,

되돌아 와, 돌을 딸 수 있도록 규정이 되어 있다.


그런즉 패싸움이 벌어지면,

배짱과 힘을 겨루게 되어 무궁변화가 일어난다.


알파고는 3국까지는 패를 기피하는 모습이었는데,

4국에서 벌어진 패싸움에 일응 잘 대응하는 듯도 싶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패싸움을 원하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이는 패싸움이 벌어져 무궁변화가 일어나면,

읽어야 할 수가 한없이 늘어나므로 감당키 어려워 피했을 것이다.

이런 사태에 봉착하면, 프로그램 상 프로세스 과정 중, 

자원을 마냥 동원하여야 하는데 자칫 폭주(avalanche)가 일어나,

스택오버플로우(stack overflow)와 같은 처리 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사전에 이를 우회하는 처리를 하겠지만,

패를 피해, 이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알파고가 패도(覇道)를 지양(止揚)하는 것은

정법(正法)만 지키려는 정인군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변통술을 부릴 정도의 역량을 아직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둑엔 져도 패는 지지 말라’라는 바둑 속담이 있듯이,

이세돌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패를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로써 상대의 자원 배분 정책을 교란하고,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내어,

알파고의 대응 능력을 분산시켜 컴퓨팅 파워에 부담을 주었어야 했다.


***


알파고는 전술(戰術)에 약하다.


알파고는 특화된 양대(兩大) 기술을 채비하고 있다.


그 하나는 정책망(policy network)이라는 것인데, 

이를 통해 엄청난 양의 전거(典據) 자료를 갖추게 된다.

이는 마치 공자가 성왕(聖王)의 도(道)와 덕(德)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듯,

프로기사들이 둔 기왕의 전범(典範)을 거지반 다 꿰고 있는 폭이다.

알파고는 시간 기준 57%의 인간 착수를 예측할 수 있을 때까지,

인간 전문가(human experts)가 둔 대국에서 3천만 수를 기초로 훈련을 하였다 한다.


다른 하나는 가치망(value network)이라는 것으로,

가능 착점별 확률 점수를 계산해낸다.

그런데 이로써 저들이 고백하듯이,

모든 것을 완벽히 계산해내는 것은 아마도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MCTS(몬테카를로 트리탐색, Monte-Carlo Tree Search) 수법을 이용하여,

탐색 깊이를 효율적으로 절약한다.


이 양자의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전략적(전술적) 사고와 행동, 

그리고 창조성내지는 창의성은 부족하거나, 아니 아직은 거의 없는 양 싶다.

전술이란 임기응변(臨機應變)을 요체로 한다.

인간(프로기사)은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면,

그에 즉하여 대응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은 고정된 데이터 자료에 구속되어 있다.

데이터 양이 많아 한계를 많이 극복하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상황별 자료는 당연히 다 갖추지 못하고 있다.


자가대국(self-play)을 통해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주어진 고정 자료에 한하고 있다.


만약 이를 벗어난 낯선 상황에 처하면,

알파고는 창의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이상한 짓을 하고 말 것이다.

실제 알파고는 이러한 모습을 여러 번 노출하였다.


따라서 이세돌은 변화를 적극 모색하여,

전거에 벗어난 상황을 연출하는 전술을 폈으면 한결 유리하였을 것이다.


내 얼추 삼십육계(三十六計)를 떠올려 보거니와,

瞞天過海, 聲東擊西, 空城計, 苦肉計 따위의 기만술로,

변환자재 바둑판을 휘저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deformation.


정형화된 폼을 벗어났어야 한다.

일파고는 존재론적으로 정형화된 틀에 갇힌 채 출발할 수밖에 없다.

강화학습, MCTS 따위는 첨단 기법이라기보다,

내가 보기엔 외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책일 뿐이다.


인간은 공부를 제대로 하기에 따라서는,

비정형화 된 세상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至人之用心若鏡,不將不迎,應而不藏,故能勝物而不傷。

(莊子 應帝王)


“지극한 경지에 이른 이는 마음을 씀에 거울과 같다.

사물(사태, 상황)의 오고 감을 맞고 보냄에 있어,

그 실상에 실답게 응할 뿐, 별도로 감출 일이 없다.

고로 사물을 이기며, 상하는 일이 없다.”


지인무몽(至人無夢)이라 하였음이라,

기계를 대하고 놀라,

마음을 게에 묶이고서야,

야밤에 어찌 잠자리 꿈이 사납지 않았으랴?


***


알파고는 왜 이세돌을 상대로 지목하였는가?


어느 기자가 나와서 말하길,

10 여 년간 그가 세계 정상을 누렸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런 이가 어찌 이세돌 하나뿐이랴?


딥마인드는 특정 목적 재단이나 사단이 아니다.

자선 단체나 장학 재단이 아니라, 상업 법인체에 불과하다.

어떤 행동을 하든 영업이익(營業利益)을 구하고,

수지타산(收支打算)을 따진다.

이로 볼 때,

이세돌이 그들에겐 가장 취리(取利)에 합목적적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한결 이치에 닿을 것이다.


물론 이러하다한들,

이세돌 본인의 실력이나, 명예가 상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그가 인터뷰한 것을 보니,

바둑 실력도 대단하거니와, 인품도 훌륭하더라.

그의 건승을 빈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이번 경기 전후간 58조원(5.19%↑)이나 주가가 올랐다 한다.

투입 비용에 비하면 얻은 것이 너무 많다.

과시 구글은 취리(取利) 셈의 달인이라 하겠다.

 

***


나는 알파고 다음 상대로 박정환 九段을 추천한다.

그의 정연한 논리성, 엄정한 계산력, 부동심을 높이 산다.


***


이번 알파고 대국을 보면서,

모처럼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폭동을 일으키듯 떠올랐다.

매너리즘에 빠진 영혼을 다시 뒤흔드는 양,

충동과, 투지가 살아났다.

아주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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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6. 3. 17. 17: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