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정하석(落井下石)
내가 어제 시골 농원에 다녀왔다.
시골 동네에서 사귄 아저씨 한 분이 계시다.
체구가 작고, 고령임에도 저녁 식사 후 자전거 타고 힘차게 동네를 일주하신다.
게다가 가근방에서 제일 부지런하여 여기저기 버려진 밭을 접수하여,
들깨, 고추 등속을 재배하신다.
여기 시골 땅에 들어와,
포악(暴惡)스럽기가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을 방불하고,
간사(奸邪)하기가 사갈(蛇蝎, 뱀과 전갈)같은 이들을 많이도 만났다.
그런 와중에 우정 나서서 내게 도움을 주신 분이다.
인근에 년전부터 도시가스 배관 매설 공사가 있었다.
그래, 집에 도시가스 인입 공사가 잘 되었는가 여쭈었다.
두 집만 못했다고 한다.
자신과 바로 이웃, 이 두 집만 공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이웃이 애초의 합의 조건 사항을 어겼기에,
옥신각신하다 결국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웃과는 50년 지기로,
새마을 운동 당시 지도자로 함께 일을 한 사이란다.
수몰 지역에서 쫓겨나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앞뒤로 집을 지어 함께 정착한 처지이다.
이젠 이 일로 아주 사이가 틀어져버렸다는 것이다.
真若可信。一旦臨小利害,僅如毛髮比,反眼若不相識。落陷阱不一引手救,反擠之,又下石焉者,皆是也。此宜禽獸夷狄所不忍為,而其人自視以為得計。聞子厚之風,亦可以少愧矣!
(柳子厚墓誌銘 韓愈)
“오호라,
선비란 궁할 때라야, 절의(節義)가 나타난다.
무릇 평소엔 서로 사모하고, 즐거이 지내며,
술을 먹고, 놀이를 하며 서로 자주 오간다.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겸양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간담을 서로 내보이며, 하늘의 해를 가리키며 울기도 하며,
생사를 두고, 서로 배반하지 말자고 맹세를 한다.
그 진실된 말이 그럴 듯 미더운 듯하지만,
일단 터락 하나같은 작은 이해관계라도 생기면,
서로들 모르는 양, 눈을 부릅뜬다.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밀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자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금수나 오랑캐나 할 짓이나,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길 계략이 성공했다 여긴다.”
인간 50년 우정의 무게란 과연 칭량(稱量)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介子推至忠也,自割其股以食文公,文公後背之,子推怒而去,抱木而燔死。尾生與女子期於梁下,女子不來,水至不去,抱梁柱而死。
(莊子 盜跖)
“개자추는 충신이다.
진문공이 곤궁에 빠졌을 제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였다.
문공이 후에 그를 배반하자, 노하여 산으로 숨어 들었다.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고 나무를 껴안고 불에 타 죽었다.
미생은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으나,
여자가 오지 않았다.
물이 불어 올랐으나, 끝내 떠나지 않았으니,
급기야 다리 기둥을 껴안고는 죽었다.”
친분도, 충성도, 믿음도,
끝내는 배반당하고 만다.
개자추 같은 충신도 산속으로 도망갔으나,
미생은 믿음을 지키려 제 자리에서 목숨을 걸었다.
하온즉, 촌부 하나 있어,
50년 우정을 헌 짚신짝처럼 버렸기로서니 놀랄 일도 아니다.
각자의 사정과 셈법이 다르니 그리 찢어져 갈려 갈 뿐인 것을.
낙정하석(落井下石)
우물에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구하기는커녕 외려 돌을 던진다.
이 정도면 차라리 약과다.
넘어진 이에게 손을 내밀어 구해주는 자일수록 더욱 위험한 자이다.
오늘 믿음을 사고, 내일 네 등에다 칼을 꽂을 자가 있다면,
바로 이자가 제일 먼저 앞장서고 말리.
상옥추제(上屋抽梯)
삼십육계 중 제 28계에 해당된다.
꾀어내 집 위에 올려두고는 사다리를 치워버린다.
달콤한 미끼를 던져 절지(絶地)로 꾀어내고는,
지원군이 오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니,
올라선 자리가 바로 사지가 된다.
이것 역시 낙정하석(落井下石)과 엇비슷하다.
好梯
그러니까 사다리는 그대에게 꿀떡이요, 단엿으로 보인다.
이것을 상대의 호의로 알고 덥석 받아먹다가는 나중에 큰 탈이 난다.
抽梯
여기 추(抽)란 빼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제(梯), 사다리를 치워버린다는 뜻이다.
이 추(抽)란 글자에 대하여는 내가 별도로 다룬 적이 있다.
(※ 참고 글 : ☞ 2008/07/19 - [소요유] - 상(象)과 형(形) - 補)
그런데 상옥추제(上屋抽梯)는 병법에선 역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將軍之事,靜以幽,正以治,能愚士卒之耳目,使之無知。易其事,革其謀,使人無識,易其居,迂其途,使人不得慮。帥與之期,如登高而去其梯,帥與之深,入諸侯之地而發其機。若驅群羊,驅而往,驅而來,莫知所之。聚三軍之眾,投之于險,此將軍之事也。九地之變,屈伸之利,人情之理,不可不察也。
(孫子兵法 九地)
“장군의 일이란, 고요함으로써 평온하게 하고, 바름으로써 다스리는 것이다.”
병사들의 눈과 귀를 어리석게 함으로써, 그들을 무지하게 만든다.
일을 바꾸고, 모략을 바꿀 때는 병사들이 이를 알지 못하게 한다.
둔 친 곳을 옮기고, 길을 우회할 때는 사람들이 이를 생각지 못하도록 한다.
장수와 더불어 기약할 때는 높은 곳에 오르게 한 후, 사다리를 치우듯 하고,
장수와 더불어 적지 깊숙이 쳐들어갈 때는, 제후의 땅에 들어가 기략을 펴듯 한다.
마치 양떼를 쫓아 이리저리 몰되, 병사들이 이를 아지 못하게 한다.
삼군의 무리를 모아 위험한 곳으로 몰아넣으니,
이것이 장군이 해야 할 일이다.
아홉 가지 지형의 변화,
진을 펴 나아가고, 움츠림의 이로움,
인간 감정의 이치를 잘 살피지 않을 수 없다.
按天官曰 背水陣爲絕地,向阪陣爲廢軍。」武王伐紂,背濟水向山阪而陣,以二萬二千五百人,擊紂之億萬而滅商,豈紂不得天官之陣哉!
(尉繚子 天官)
“천관을 살펴보니, 배수진은 절지요, 언덕을 향한 진은 폐군이라 하였습니다.
무왕이 주왕(紂王)을 칠 때, 제수를 등지고, 언덕을 향하여 진을 쳤습니다.
이만 이천 오백 인으로써, 억만을 쳐서 상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어찌 주왕이 천관의 진법을 얻지 못하였겠습니까?”
자신의 병졸들을 절지에 몰아넣었음이니,
뒤로 물러설 수도 없은즉,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살길이 없다.
이리 제 병졸을 부리는 데는 때론 위험을 스스로 취하기도 하는 법이다.
한신(韓信)의 배수진(背水陣)이란 것이 바로 이의 역수(逆手)를 친 것인데,
이는 당시 그가 거느린 부대가 자기가 훈련한 군사들이 아닌 민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저들을 오히려 절지(絶地)로 떨어뜨려 뒤를 끊어버리고는,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몰아세운 것이다.
이게 주효하여 조군(趙軍)을 크게 무찌른다.
梁惠王問尉繚子曰:『黄帝刑德,可以百勝,有之乎?』尉繚子對曰:『刑以伐之,德以守之,非所謂天官時日陰陽向背也。黄帝者,人事而已矣。(尉繚子 天官)
“양혜왕이 위료자에게 물었다.
‘황제의 형덕(刑德, 병법서)에 가이 백승이라 하였는데,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위료자가 답하여 아뢴다.
‘형으로써 적을 벌하고, 덕으로써 나라를 지키는 것입니다.
소위 천관, 시일, 음양 따위의 향배가 아닌 것입니다.
황제는 오로지 사람의 일(人事)을 말했을 따름입니다.’”
위료자는 병법서 치고는 아주 짤막하여,
총 글자 수가 일 만자도 아니 된다.
1972년 은작산(銀雀山) 한묘(漢墓)에서 잔간(殘簡)이 출토되었다.
전국시대에 책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일이란 천관, 시일, 음양 따위가 아니라,
오로지 사람이 할 탓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人事而已矣。
남이 모계(謀計)를 써서 상옥추제(上屋抽梯)로 나를 꾀일 때,
여기에 걸려 당하느냐,
아니면 한신처럼 나의 병사를 배수진에 몰아넣어,
적군을 무찌르느냐는 모두 사람에게 달려 있다 하겠다.
말은 쉬우나,
이게 과연 현실의 세계에 그리 쉽게 되는 일인가?
陷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
“죽을 땅에 떨어져야 후에 살아남을 수 있으며,
망할 땅에 놓여져야 존립할 수 있다.”
한신은 배수진으로 조나라를 쳐 이긴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에게 이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이게 병법에 어긋남을 의심하는 것이로되,
한신은 이게 병법에 있는 수단이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함이니 위료자가 말하듯,
하늘의 뜻이 아니라, 다만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다.
시골 땅의 이웃 촌부가 50년 지기를 버리게 되었다 함이라,
내 한유가 지은 유종원의 묘비명(墓碑銘)을 상기하게 되었다.
낙정하석(落井下石)이라,
인심의 사나움을 이리도 잘 표현한 것이 또 있을까?
헌데 병가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전법으로 이용한다.
상옥추제(上屋抽梯)
집 위로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우다니,
이처럼 모략에 찬 짓이 또 있을까나?
하온데, 다시 이를 역으로 이용하니,
곧 한신의 배수진(背水陣)이라,
외려 아군을 사지로 몰아넣고 후생을 도모한다.
위료자는 이를 두고,
세상의 일이란 곧 인간이 하기에 달렸다 말하고 있다.
결코 하늘이니 음양술 따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함인데,
달도 밝고, 해도 빛나는 이 날의 이 땅에선,
대통령 존영(尊影)을 반납하라라든가,
그냥 벽에 걸어두겠다 이르며 옥신각신하고들 있음이다.
이 땅의 정치하는 이들은 천관(天官)을 모셔두고 있음이고뇨.
조만간 용한 무당 초치하여 4대강에 단을 쌓고,
재를 지낼 셈이런가?
아,
헬조선이라 부르는 이 땅에,
진정 천관이 내려오셔서,
길상 만복을 고르게 펴시려 하옴인가?
天官賜福百災破,富貴吉祥萬福齊。
천관은 복을 내리고, 백가지 재앙을 깨뜨리며,
부귀길상만복을 고르게 하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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