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호정금지잡인(四門護淨禁止雜人)
어제 농원에 갔다.
나의 부재중에 처리되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었다.
일을 맡은 그들 인부가 다녀간 흔적들.
여전하다.
전에는 이런 일을 당하면,
화가 몹시도 났다.
이젠 그저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으니 참아낸다.
입구엔 여기 저기 쓰레기가 널려져 있다.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풀숲에 숨은 것까지 다 찾아내며 주어낸다.
조각 철사 줄은 예초기를 돌릴 때 자칫 감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악착같이 찾아내야 한다.
정문으로 들어오는 길은 융단을 밟는 듯 푹신푹신하다.
이젠 풀이 제자리를 잡고, 수년 째 땅 위를 덮어,
걸을 때에는 기분이 제법 근사하다.
그런 밭이로되,
저들이 떠난 자리엔 예외 없이 쓰레기가 버려진다.
그야말로 저들은 걸어 다니는 오물이다.
하나 더,
그렇게 신신당부 하였는데도,
정문 입구에 걸린 쇠줄이 풀린 채, 땅바닥에 버려져 있다.
떠날 때에는 반드시 쇠줄을 걸어 채우라 일렀는데도,
그냥 며칠 째 농원이 외부에 열려 있었던 셈이다.
몇 년 전 정문 건너편 군부대가 떠난 자리를 점유회복하였다.
애초 그 자리엔 동네 사람이 오가며 쉴 수 있게 쉼터를 만들 셈이었다.
그런데 이 마음을 접고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울을 쳤다.
그렇지 않고 외부에 공개하였으면,
먹다 버린 막걸리 통, 휴지, 공초 따위가 너부러져,
매번 내가 치어내지 않으면 쓰레기 밭으로 변하고 말았을 것이다.
‘거인의 정원’
오스카 와일드란 작가가 쓴 동화이다.
아이들은 거인의 정원에 와서 매일 놀았다.
어느 날 거인이 정원에 돌아왔다.
아이들을 혼내 쫓아내었다.
"내 정원은 나만의 정원이야.
나외에는 아무도 놀 수 없어.“
그는 정원 주위에 높은 담을 쌓았고, 게시문을 붙였다.
“무단침입자는 고소함”
그 이후,
봄이 왔지만 거인의 정원만은 겨울이었다.
과일도 열리지 않고, 새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벽의 작은 구멍을 통해 기어들어왔다.
그러자 비로소 봄이 다시 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더 이어지나 생략한다.
이 이야기를 듣거나 본 이들은 가슴이 벅차오르며 감동한다.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에 입성한 이들은 하나같이 하얀 날개를 펴며,
천사가 되고 만다.
만약 여기 어깃장을 부리고,
탓을 하면 천하에 몹쓸 사람이 될 것이다.
예전에 봄이 되면 나물을 캐러 농원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처음엔 이들을 제지 하지 않았다.
헌데 저들이 한동안 머물다 떠나간 자리,
휴지, 먹다 버린 음료 통이 너질러 있기 일쑤였다.
게다가 두둑 위를 질겅질겅 밟고 다니고,
오줌을 한데다 싸기도 한다.
외부인이 들어와 두둑 위를 마구 밟고 다니면 나는 질겁한다.
블루베리는 천근성 뿌리를 가지고 있어,
두둑 위가 다져지면 아파한다.
한번은 두 내외가 들어와 나물을 캐었다.
오줌을 싸고 있기에 주의를 주고는 적당히 뜯고는 가시라 하며 물러났다.
그런데 그이들이 떠난 자리엔, 빈 페트병이 버려져 있고,
계집사람 밑 닦던 휴지가 너부러져 있다.
여기 밭은 비닐 한 조각, 휴지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다.
담배도 피우지 못한다.
담배 냄새도 고약하지만,
저들은 공초를 어김없이 아무데나 휙하고 던져 버린다.
농장은 종국엔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물이 만들어 지는 현장이기도 하지만,
비록 식물일지라도 살아 있는 생명이 터를 잡고,
인연 지은 제 한 철을 영위한다.
그러함이니 그 텃자리를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음인가?
밭이 정갈하고,
가꾸는 정성이 갸륵할 때,
바로 이 때라야 가히 제대로 된 봄이 밭에 다가온다.
天氣下,地不應曰雺,地氣發,天不應曰霧,霧謂之晦
“하늘의 기운이 내려오는데,
땅이 응하지 못하면 이를 일러 몽(雺)이라 한다.
지기가 펴지는데, 하늘이 응하지 못하면 이를 무(霧)라 한다.
무(霧)는 이를 회(晦)라 이른다.”
(※
雺 : 안개 몽, 蒙闇한 상태를 뜻한다.
霧 : 안개 무, 隂陽亂爲霧. 음양이 어지로울 때를 이른다.
晦 : 그믐 회, 이것 풀이 하자면 긴 말이 필요하다.
여기선 그냥 晦冥, 昏暗 정도로 이해해두자.)
오늘날 우리네 농토는 어떠한지 아시는가?
봄이 되면 여기저기 연기가 지피어져 오른다.
농민들이 전장에 나뒹구는 것들,
폐비닐, 쓰레기 등속을 모아 태우는 것이다.
하늘에서 봄기운이 내려오건만,
우매한 농민들은 쓰레기를 태워 능욕한다.
땅에서 스믈스믈 청신한 물 기운이 올라오지만,
천박한 농민들은 쓰레기를 태워 흩어버린다.
이러함이니,
몽(雺)이니, 무(霧)니 할 것도 없이,
밭은 그저 몽(蒙)할 뿐인 것이다.
무지몽매
어리석고, 어둡다.
내 여기 시골을 오가며 햇수로 10년 간 농민들의 행태를 유심히 관찰하지만,
이 못된 패악질은 하나도 달라진 바 없다.
요로에 진정도 하고, 공무 담임자들에게 계도를 부탁도 하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수도회는 담장을 높이 쌓고 외부인과 철저하니 단절되어 있다.
스님이 머무르는 요사채(寮舍寨)는 잡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선방에도 한인물입(閑人勿入)이란 팻말이 걸려 있곤 한다.
한인이란 일없는 한가한 이란 뜻이니,
우리 말법대로라면 잡인(雜人)과 같다.
도대체가 수도(修道)하는 이가 든 도량에 잡인들이 끼면 공부가 익어갈 틈이 있겠음인가?
잡인을 접하면 수시로 눈알이 뱅글뱅글 돌고, 매양 가슴이 콩닥콩닥 거릴 터인데, 도를 닦기는 텄다.
수도인은 말 그대로 도를 닦는 도상에 있는 자이다.
아직은 어리보기인 바라, 잡인을 물리고 셈을 치룰 수밖에.
뭐 저들이 대단해서 울바자 치고, 팻말 박아 세우고 위세를 떠는 줄 아시는가?
한인(閑人)이란 한편으론 관련 없는 사람이란 뜻도 있다.
무용자(無用者) 즉 용무가 없는 사람이라.
울을 치고 들어앉은 이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하니 무용자 그 자신은 이미 도를 이룬 사람이 되기도 하고,
도를 이루는데 관심이 없거나, 이르지 못한 이가 되기도 한다.
도를 이룬 이가 거기 풋중들이 모인 곳,
어리보기 수도사들이 있는 곳을 기웃거릴 이유가 없다.
그런 이들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어울린다.
大隱隱朝市
“대은은 도시 저잣거리에 숨는 법.”
그런데,
기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대은(大隱)이 없어서,
혹은 도인(道人)이 적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정작은 수도인(修道人), 수행자(修行者)의 청정심(淸淨心)의 부재(不在)가 더 큰 원인이다.
술 먹고, 음행 일삼는 납자(衲子)들.
신을 팔아, 제 욕심을 채우는 목회자들.
대중 속에 들어가,
소금이 되고,
연꽃으로 피어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법복을 벗고,
향리에 들어,
곰보각시라도 하나 얻어,
새끼 낳고 천년만년 살지니.
봄은 울 안에서 핀다.
四門護淨禁止雜人。
사방의 문은 청정함을 보호하기 위해,
잡인의 접근을 금한다.
도둑을 방비하기 위해선,
담장을 친다.
전쟁에 나아가 적을 막으려면,
참호를 파고 청음조(聽音組)를 전위에 배치한다.
거인의 정원
이거 아름다운가?
저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아이의 양 손바닥에는 두 개의 못 자국이 그리고 작은 발에도 그랬다.”
(거인의 정원)
누군가의 몸에 상처가 나야한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마지막 장면에,
아이는 그를 데리고 간다.
“그러자 아이는 미소지으며 말하였다.
‘그대의 정원에서 나를 놀게 해 주셨으니 오늘은 나와 함께 가지 않겠어요?
나의 정원으로. 낙원으로.’
그날 오후 아이들이 왔을 때,
거인은 온몸이 하얀 꽃에 뒤덮힌 채 나무 아래에 죽어 누워 있었다.”
(거인의 정원)
그가 떠난 정원이 전처럼 새가 울고 꽃이 피는 봄을 맞이할까?
아마도 다시 겨울로 돌아갔을 것이다.
정원의 봄은 아이들이 마음껏 떠들 수 있었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그의 회심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우리 밭에 봄이 오게 하기 위해,
울을 치고, 잡인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 시골 동네 울 밖은 아직 겨울이니까.
난 우리 밭을 파수(把守)한다.
봄을 지키기 위해.
예수가 와서 손을 잡고 천국으로 가자고 해도,
나는 이 땅을 놔두고는 아니 따라 나설 것이다.
나와 거인과 다른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예수는 종내 손발에 못이 박히고, 천국으로 가지만,
나는 작대기 들고 잡인을 물리침으로써 봄을 지켜낸다.
예수가 재림했다는 증거를 찾자면,
있기도 하고, 없는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예수교도가 아니지만,
그의 뜻과 의지만은 알고 있다.
손발에 못이 박히지 않고,
나는 다만 작대기로써 그의 부재가 참이 아님을 거증하련다.
四門護淨禁止雜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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