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육붕우(酒肉朋友)
내가 여기 시골에 들어와,
공무원인 한 젊은 녀석과 우연히 사귄 적이 있다.
내가 사귀려 하였던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농원에 들어와 말거래를 텄기에 알게 된 사이다.
녀석은 입에 단 꿀을 머금은 듯,
뱉는 말이 달콤하고,
자석을 몸에 지닌 듯,
바싹 붙어 친근함을 과시하였다.
그러한들, 내 어찌 성인의 말씀을 잊고 있으랴?
君子喻於義,小人喻於利。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밝힌다).
君子懷德,小人懷土;君子懷刑,小人懷惠。
군자는 가슴 속에 인덕(仁德)을 품지만,
소인은 가향(家鄉)을 품는다.
군자는 가슴 속에 법제를 품지만,
소인은 실리를 품는다.
일에 지장을 줄 정도로 하루건너 방문하던 이가,
그리 탐하던 나무를 내게로부터 거저 얻어가고 나서부터는 발걸음이 뜸해지더니만,
요즘엔 소식 하나 들리지 않는다.
君子之交淡如水 小人之交甘若醴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이 담담하다.
소인의 사귐은 마치 잘 익은 단술과 같다.
언제나 그러하듯,
곁에 다가와 솜사탕처럼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 이를 조심할 일이다.
세상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물과 같이 언제나 담담하니 중정을 지키는 이는 드물다.
酒肉朋友
술과 고기를 함께 마시고, 뜯으면 친구가 된다.
하지만 술이 마르고, 고기가 없어지면,
그런 친구는 언제 보았느냐 하며 다 떠나가고 만다.
이런 친구를 일러, 狐朋狗友라고도 한다.
즉 여우와 개 같은 친구라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안다.
그이는 사업을 크게 일군 이인데,
한참 경기가 좋을 때, 돈을 많이 벌었다.
하여 친구에게 당시로서는 귀한 차까지 사주었다.
그런데 사업이 여의치 않아, 다 털리고,
달동네 월세방에 몸을 의탁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친구는 외면하고 만나주지도 않더란다.
바로 이러할 경우 酒肉朋友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허나, 맹자의 말씀대로,
往者不追 來者不拒
가는 자는 쫓지 않고, 오는 자는 막지 않는다.
나는 이리 살아왔지 않은가 말이다.
그가 찾아오면 오는대로 만나주었고,
가면 가는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이제 내 말이 아니라,
경전의 말씀을 음미해보고자 한다.
晉中行文子出亡,過於縣邑,從者曰:「此嗇夫,公之故人,公奚不休舍?且待後車。」文子曰:「吾嘗好音,此人遺我鳴琴;吾好珮,此人遺我玉環;是振我過者也。以求容於我者,吾恐其以我求容於人也。」乃去之。果收文子後車二乘而獻之其君矣。
(韓非子)
“진나라에 중행문자란 이가 망명 중에 한 현을 지나게 되었다.
종자가 말한다.
‘여기 색부(벼슬아치 이름)는 공이 아는 이입니다.
공은 어째서 쉬고 가지 않습니까?
그리고 다음에 따라올 수레를 기다리시지요.‘
문자가 말한다.
‘내가 일찍이 음악을 좋아하였더니, 이 사람이 내게 거문고를 보내왔다.
내가 패옥을 좋아하니, 이 사람은 고리 옥을 보내주었다.
이는 내 잘못을 구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마음을 사려는 것이다.
나는 그가 나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려고 할까 두렵다.’
그리고는 이내 거기를 떠나버렸다.
과연 그가 문자의 뒤따르는 수레를 빼앗아 군주에게 바쳤다.”
중행문자가 실각하여 도망을 가는 장면이다.
그는 그에게 평소 자신에게 잘하였던 이의 본색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궁색하다고 그자의 본색도 모르고,
덥석 그에게 의탁하였더라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비유의 바다 불경에 왜 아니 경계의 말씀이 없겠는가?
今當說譬,夫智者以譬得解。如長者子,長者子大富多財,廣求僕從,善守護財物。時,有怨家惡人,詐來親附,為作僕從,常伺其便,晚眠早起,侍息左右,謹敬其事,遜其言辭,令主意悅,作親友想、子想,極信不疑,不自防護,然後手執利刀,以斷其命。焰摩迦比丘!於意云何?彼惡怨家,為長者親友,非為初始方便,害心常伺其便,至其終耶?而彼長者,不能覺知,至今受害。
(雜阿含經 第5卷)
“이제 비유로서 설명하리라.
대저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써 이해를 얻게 된다.
마치 장자의 아들과 같다.
장자의 아들은 큰 부자로 재물이 많았다.
널리 종복을 구하여 재물을 지키려 하였다.
때에, 그의 원수인 악인이 거짓으로 와서, 친하게 붙어,
종이 되어서는, 기회를 엿보았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그 곁에서 시중들며 하는 일에 조심하고,
말은 공손하여,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하여 친구라 생각하고, 자식인 양 여기며,
지극히 믿고 의심하지 않았기에 자기 몸을 지키지 않았다.
그런즉 후에 종은 손에 예리한 칼을 들고는 그의 목숨을 끊었다.
야마카 비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저 악한 원수는 장자의 친구가 되어,
애시당초 방편으로, 항시 틈을 노려 해치려 노리려 하였다가 이런 종말을 맞은 게 아닌가?
그럼에도 장자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이제 해를 입고 만 것이다.”
아, 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 인 바라,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야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는 법이다.
허나, 길이 아무리 멀더라도, 세월이 아무리 흐른다 하여도,
결코 말의 힘이나, 사람의 품성은 다 알 수 없는 것이다.
위 경전의 내용은 샤아리풋트라(舍利弗)께서 야마카(焰摩迦)를 깨우치며 가르치는 장면이다.
기실 이 설법은 오온(五蘊)을 자아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는,
즉 무아(無我)를 가르치는 것이로되 여기서는 이에 미치지는 않고자 한다.
다만, 이 경에 나오는 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으며 ...
이 비유는 잘 알려진 것인즉, 해당 부분을 남겨 두고자 한다.
多聞聖弟子於此五受陰,觀察如病、如癰、如刺、如殺,無常、苦、空、非我、非我所,於此五受陰不著、不受、不受故不著,不著故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오온에 대하여,
그것은 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으며, 죽음과 같으며,
덧없고, 괴로우며, 공이며, 내가 아니며, 내 것도 아니라 관찰한다.
이 오온에 집착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에 스스로 열반을 깨닫는다.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서고, 할 일은 이미 다 마쳐,
다시는 후생의 몸을 받지 않을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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