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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月光)

소요유 : 2017. 8. 7. 08:51


월광(月光)


어제 야밤삼경 넘어 우리 밭 언덕 위에 오르니,

삼계(三界)가 모두 은빛 안에 잠겨 있다.


요즘 왜 이리 밤에도 훤한가 하였더니,

마침 보름이라, 달님이 원만하게 가득 차오르시니,

아무도 없는 여기 시골 밤이 이리도 은택(恩澤)으로 넘실댄다.

저 홀로.


달력을 들추니 오늘은 입추다.


立秋之日,涼風至,又五日,白露降,又五日,寒蟬鳴。

(逸周書)


“입추 날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또 닷새가 지나면 흰 서리가 내리며,

또 닷새가 지나면 한선(쓰르라미)이 운다.”


(※ 절기상의 白露는 한 달 후에 온다.)


놀랍다.

이 더위 한 가운데,

가을이 예비되고 있다니.

(※ 참고 글 : ☞ 천풍구(天風姤)와 슈퍼퍼지션(superposition))


옛 서책을 읽다보면,

은택(恩澤)을 내리는 것은 대개 군주이며,

이를 백성이 입는다고 되어 있다.

졸개인 관리 풀어 가렴주구(苛斂誅求)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겠지.

무슨 은택씩이나 베풀었을려구?

게다가 그것 모두 백성들로부터 빼앗은 것을 토대로 한 것이니,

실로 가당치 않은 짓이라 하겠다.


세상의 모든 개념이란 것은 실로 그 실체성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백성 없는 군주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군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난 존재가 아니다.

王侯將相寧有種乎!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

진나라 말기 진승(陳勝)이 언명한 이 말을 다시금 상기한다.

(※ 참고 글 : ☞ 진승과 오광)


게다가 은택을 군주가 백성에게 내린다 할 때,

이런 판단 자체 역시 사실과 상위(相違)한 희론(戱論)이 아닌가 의심하여야 한다.


군주/백성이란 개념 자체도 의심스러운 것인데,

이것을 기초로 은택을 누가 누구에게 준다는 판단이 성립할 수 있겠음인가?

이 이단(二段)의 오류(誤謬), 엉터리, 가짜배기를 한 생각 일으켜 단박에 깨뜨려야 한다.


오늘날도 민주주의 합네 하고 설쳐대고,

촛불혁명으로 헌법 가치 지켜내었다고,

주둥이 가진 이마다 부리 헐어내어 한 마디씩 하고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지만,

이미 개혁 가치를 훼손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지 않은가?


판단, 개념.


이거 과연 타당한가?

공부하는 이들은 이를 간단(間斷)없이 의심하여야 한다.


사람들은 식물이 햇빛만 제대로 비추고, 비만 잘 오면 잘 자라는지 안다.

어림없는 소리다.

당장 야반삼경에 일어나 들녘을 거닐어 보라.

그대는 달빛이 야밤에 식물들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달님이 아니 계시다면,

식물들은 모두 뻣뻣하게 자라 억세기만 할 뿐,

본데없이 나대기만 할 것이다.


비 역시 마찬가지다.

올 봄 그리 가뭄이 심하여도,

산과 들에 자라는 초목들이 한 철을 무사히 넘긴 것은 무엇인가?

이게 다 이슬의 공덕임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하여는 내가 이미 자세히 말해두었던 적이 있으니,

재론할 일이 아니리라.

(※ 참고 글 : ☞ 월루(月淚) - 달의 눈물)


요즘 여기 시골 동네 모습을 보니 과시 참람스럽기 짝이 없다.

내가 논가를 거닐다 보면 참으로 놀랍기 짝이 없는 것을 목도하게 되고 만다.

송곳 하나 꼽을 틈도 없이 그리도 빽빽하니 모를 심었는데도,

벼들은 빼곡히 꽉 차게 자라고 있다.

바람 하나 통할 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논두렁에 심은 콩들 역시 키가 허리춤까지 자라 있다.

땅을 보니 잡초 하나 보이지 않고 메마르기가 사막을 방불한다.

그러함인데도 저리 허우대가 멀쩡하게 자라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료를 얼마나 처넣었으면 저리 자랄 수 있겠는가?

내가 예상하기엔 참외, 딸기처럼 논농사에도 조만간,

성장촉진제를 투입하지나 않을까 싶구나.

농약은 또 얼마나 처넣었기에,

자칫하면 혓바닥을 바늘로 찌르듯 쏘기까지 한다.

나는 시장에서 나온 딸기를 먹지 않은지 이미 오래 전이다.


저 지경이니, 논 역시 도리없이 농약을 뿌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만약 농약을 치지 않으면 진작에 병충해에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사육 당하고 있는 식물들도 가엽고,
이리 살아가는 사람도 가엽기는 마찬가지다.


식물들도 사람 손아귀에 놓이면,

동물들처럼 지옥, 아귀 경에 갇히게 된다.


남세스럽게 생색만 내는 동물복지법이 우리나라에 만들어져 있지만,

동물들이 좁은 울에 갇히고 갖은 항생제, 성장 호르몬 따위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여전하다.


식물들도 가만히 관찰해보면, 오늘날 울에 갇혀 울부짖는 동물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저들 역시 각종 농약, 제초제, 성장 촉진제로 쥐어 짜내지고 있다.

인간들에 의해.

(※ 참고 글 : ☞ 유기농 유감(遺憾) 2)


야반삼경 언덕 위에 서면,

실로 달님이야말로 은택을 내리시는 주재자(主宰者)임을 알 수 있다.

은택은 감히 사람인 누가 누구에게 베푸는 것이 아님을 이내 알 수 있게 된다.


야반삼경 언덕 위에 서면,

블루베리, 온갖 풀들이 은빛 품속에서 안겨 평화롭게 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야반삼경 언덕 위에 서면,

나 역시 은빛 삼매(三昧)에 들고 만다.

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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