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되려 하지 말라.
天道無親,常與善人。
(道德經)
이 글귀는 가끔씩 그럴싸 하니 어느 집, 건물 벽에 걸리곤 한다.
대개 이를 해석하는 이는, 이리 새기곤 한다.
'하늘의 도는 편애함이 없나니, 그저 착한 사람 편에 설 뿐이다.'
그런데 하늘의 도가 특별히 누군가를 편애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착한 사람 편을 들 수 있겠는가?
그런즉 저런 식으로 해석을 하게 되면,
이 글귀는 앞뒤 구절이 서로를 부정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或曰:「天道無親,常與善人。」若伯夷、叔齊,可謂善人者非邪?積仁絜行如此而餓死!且七十子之徒,仲尼獨薦顏淵為好學。然回也屢空,糟糠不厭,而卒蚤夭。天之報施善人,其何如哉?盜蹠日殺不辜,肝人之肉,暴戾恣睢,聚黨數千人橫行天下,竟以壽終。是遵何德哉?此其尤大彰明較著者也。若至近世,操行不軌,專犯忌諱,而終身逸樂,富厚累世不絕。或擇地而蹈之,時然後出言,行不由徑,非公正不發憤,而遇禍災者,不可勝數也。余甚惑焉,儻所謂天道,是邪非邪?
(史記)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馬遷)은 모두 알다시피 불을 발리우는 형벌을 받았다.
그 역시 ‘天道無親 常與善人’ 이에 강한 의문을 던진다.
위 글은 모두 번역하지 않고 이제 그 취의만 새기도록 한다.
백이, 숙제는 과연 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가? 아닌가?
그가 어진이라면 어찌하여 굶어죽고 말았는가?
안연은 학문을 좋아한다고 공자가 추천까지 한 인물이나,
가난에 찌들고, 지게미와 쌀겨로 살다가, 요절하고 말았다.
도척은 매일 죄 없는 이들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꺼내 먹으며 무리를 지으며 천하를 횡행하였다.
하지만, 천수를 다 누리고 죽었다.
이런 일은 누구나 다 훤히 아는 옛일이다.
하지만 근세에도 불법을 일삼고, 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도맡아 범하고도,
종신토록 안락을 즐기고, 부를 일궈 자손대대로 물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가려 땅을 밟고, 때가 되어야 말을 하고,
지름길을 질러가지 않고, 불공정한 일은 하지 않으려 하였는데도,
화를 당하고 재앙을 만나는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는 심히 당혹스럽다.
도대체 하늘의 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하지만,
사마천은 세상일은 그리 돌아가지 않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天道無親,常與善人。
'하늘의 도는 편애함이 없나니, 그저 착한 사람 편에 설 뿐이다.'
그런즉 이와 같이 새기고 만다면,
아무리 하여도 현실 정합성이 없다.
천도는 공평무사하여 마치 태양처럼 만물을 고루 비추며,
비처럼 만물을 고루 적신다.
그런즉 天道無親은 옳은 말씀이다.
그렇다면 어찌 하여 하필 천도는 善人만 골라 편애한단 말인가?
이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착한 사람 편에 선다’
이런 속된 해석은 영 찜찜하기 짝이 없다 하겠다.
善人을 그저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든가,
착한 일을 행하는 이로 새길 일이 아니다.
여기서 善은 잘한다, 밝다, 여실히 안다로 풀어야 한다.
굳이 영어로 풀자면 skillful, familiar에 가깝다 하겠다.
다시 한자로 하자면 숙실(熟悉)이 아주 딱 알맞다.
이 말은 분명하게 익히 다 아는 상태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선인이란,
결코 마음이 착한 이가 아니라,
하늘의 도를 익히 아는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 이 부분은 일부 信堅의 해석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음. 감사를 표한다.)
天道無親,常與善人。
이제야 비로소 이 글귀가 무엇을 말하는지 확연해진다.
'하늘의 도는 편애함이 없나니, 도를 잘 아는 사람과 함께 하노니.'
자귀로 보자면 이제 이런 뜻으로 새로 새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자면,
천도가 선인과 함께 한다 이를 수도 있지만,
실인즉 선인이 천도와 함께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구체적 실천 현실 세계에선 선인이 하늘의 도를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이리 절규하였다.
余甚惑焉,儻所謂天道,是邪非邪?
“나는 심히 당혹스럽다.
도대체 하늘의 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불을 발리우는 궁형(宮刑)에 처하는 모욕 속에,
그는 천도를 의심하였다.
하지만 굴욕을 극복하고 사기를 완성하였으니,
그이야말로 善人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안연이 가난에 찌들었지만 好學을 멈추지 않듯 말이다.
여기 好學에서도 그저 학문을 좋아한다고 새길 일이 아니다.
善人에서 善을 그저 선량하다 새기듯, 好를 그저 좋아한다고 새기면,
범속한 시속을 따를 수는 있지만, 결코 바른 이해를 얻을 수 없다.
天道無親,常與善人。
이것을 액자에 넣어두고,
착한 사람씩이나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천도가 無親하다는 것을 안다면,
천도는 善人과도 함께 하고, 惡人과도 함께 함을 알아야 할 일이다.
不思善, 不思惡。
착한 사람이되려 하지도 말고,
악한 사람이 되고자 할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