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오징어와 땅콩

소요유 : 2017. 8. 23. 10:06


내가 블루베리 농사를 지으니,

의당 블루베리 관련 카페에 몇몇 가입하며 활동한 적이 있다.

지금은 거지반 다 정리하고 남아 있는 곳에서도 거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초기에 블루베리는커녕 농사 일반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였기에,

이들 카페를 들락거리며 무엇인가 단서를 찾으며, 

배우고 익히려 하였다.


헌데, 거기에 투자하는 시간이며 정력에 비하여,

얻는 소득은 실로 미미하였다.


진중권은 말한다.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SNS에 올라오는 말들 있잖아요.

99.9%는 쓰레기입니다. 똥인데,

그중 0.1%의 진주가 있어요.’


회원 수 수만 명에 달하는 카페 하나가 있다.

여기 글들을 읽다가 그만 두고 나와 버렸다.
그 평균 수준의 대표작 하나만을 소개한다.


‘나, 오늘 옥상에 올라가 물을 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 수준보다 더 못하다.

식물을 키우면 당연 물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저 글엔 단순한 행위 사실만 적혀 있지,

그 행위에 대한 관찰 내지는 관조,

또는 무게 가치에 대한 판단, 평가가 부재한다.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技術)에 대한 기술(記述)을 제외하고 본다면,)

때론, 정서상의 특별한 감동이 기술되어도 좋겠지만,

아니, 특별하지 않더라도 섬세한 접근 과정의 묘사, 

일상적 애정의 진심어린 표현이 있었더라도 괜찮았을 것이다. 


글인 이상 어떤 것이더라도 문학(文學)이 되어야 한다.


소설, 시처럼 기성의 완성도 높은 글만이 문학이 아니다.

모자면 모자라는 대로,

글 쓴 이의 독특한 인격적 훈향(薰香)을 느낄 수 있으면 좋으리라. 

실존적 삶의 고통, 절실한 애증, 갈등, 감동이 있다면,

아무리 서툴더라도 그 글은 이내 문학이 된다.


하지만, 저 글은, 


‘오늘도 어제에 이어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 하고 밥을 먹었다.’


글을 채워넣기 급급한 초등학생의 일기장 숙제를 보는 듯싶다.


도대체 저 따위 하나마나한 글을 단체 회원을 상대로 왜 올리는가?

그런 것이라면 제 블로그에나 적어 넣고 자위(自慰)할 노릇이지,

왜 나타나, 수많은 카페 회원들의 시선과 시간을 빼앗아가는가 말이다.


천 개의 글을 읽다보면,

우연히 하나의 진주를 주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기대를 하느니,

차라리 로또를 사는 편이 더 낫지 않으랴?


로또를 살 때 거는 기대는 기실 기대랄 것도 없는,

하나의 오락내지는 소비에 가깝다.

일주일간의 분홍빛 달달한 설레임에 로또를 사겠지만,

지갑 속에 넣고 나면, 발표 날이 될 때까지는 곧잘 잊고들 하진 않는가?

정상인이라면, 

1등에 당첨되리란 기대를 한다한들,

거기 과도한 믿음을 붓지는 않는다.


차라리 로또를 사며,

이렇듯 가벼운 상상 소비 만족을 구할 노릇이지,

쓰레기 글 천 개를 뒤적거리며,

진주를 구하기엔,

시간과 정력이 아깝다.


하지만,

너무도 무료하여,

저 천개의 글을,

마치 만화책을 읽듯,

부담 없는 소비 객체로 여긴다면,

천개 아냐 만개의 글을 뒤적거린들,

그게 무슨 책(責)거리가 되랴?


그렇지만,

내 가까이 있는 이라면,

오징어와 땅콩을 사서 보내겠다.
이로써,
그의 무료함을 빙자한 방탕함에, 

한 때의 푸르렀던 의기를 조상(弔喪)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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