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폭주의 변주곡(變奏曲)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었다 한다.
피프로닐과 비펜트린 성분이 달걀 속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이것은 모두 한 마디로 극독(劇毒)이다.
피프로닐(Fipronil)은 맹독성 물질로 농작물 살충제로도 쓰이고,
벼룩, 이, 진드기, 바퀴벌레 따위를 죽이는 동물용 의약품 제조에도 사용된다.
이 물질은 양계장처럼 사람이 먹는 동물 사육 시설 내로 반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워낙 독하여 꿀벌에게도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멸종 위기의 곤충을 보호하기 위하여,
옥수수 씨앗에 피프로닐을 사용하는 것도 오래 전부터 금지 되어 왔다.
이 물질이 포함된 살충제는 피부로도 흡수되고, 먹이를 통해 섭취된다.
피프로닐에 오염된 달걀을 먹게 되면, 간, 신장, 갑상선에 큰 해를 끼치게 된다.
이를 많이 섭취하게 되면 충혈된 눈, 피부, 메시꺼움, 구토증을 유발하게 된다.
독일 연방 위험 분석 당국 추산으론, 현행 피프로닐 안전 기준으로는,
16kg 체중의 어린 아이가 하루에 1.7개 이상 먹으면 위험하다고 한다.
이는 65kg 체중의 성인이라면 하루 7개에 상당한다.
이런 독약이 어떻게 달걀에서 검출되었는가?
피프로닐은 아예 살충제에는 사용 금지되었고,
비펜트린은 잔류 허용 기준이 엄격히 정해져 있다.
만약 해충이 양계 농장에 발생하게 되었을 때,
이 물질이 포함된 약제를 사용하게 되면,
닭의 피부, 깃털을 통해 체내로 흡수될 수 있다.
이게 결국 달걀에도 흘러들게 되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매 달걀에 스탬프로 일련번호가 찍히게 되어 있다.
이에 문제가 생길 경우 어느 나라, 어느 농장에서 나온 것인지 추적이 가능하다.
비펜트린(bifenthrin) 역시 위험한 물질이다.
이 물질에 인체가 노출되면,
피부나 눈의 통증, 두통, 현기증, 설사,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심각한 경우 폐부종, 근육 경련이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처음에 양계 농가 한두 곳에서만 나타난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나는 이게 이미 전국적으로 자행되었으리라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전국 여기저기 농장에서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는 친환경 인증 달걀에서도 이 성분이 기준치 이상이 검출되었다 한다.
이 성분은 농약에도 들어 있다.
이제 근본적으로 실질 진짜배기 친환경 농법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 하여 친환경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기실 친환경 인증 자체에 관심이 없다.
나는 내 양심을 믿고, 내 철학대로 농사를 짓는다.
내 농사 태도를 두고 을밀농철이라 이름 지은 바도,
이게 그저 척하니 폼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농사는 바른 철학을 세우지 않으면,
결코 바른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소신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그리고 나 역시 여기 시골에 들어오기 전까진 잘 몰랐지만,
여기 시골과 인연을 짓고 나서는,
과연 이러고도 인류가 건강한 삶을 지속할 수 있는가?
하는 큰 의심을 일으키게 되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흔히 음식점 주방에서 벌어지는 짓을 보게 되면,
외식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농사짓는 사정을 제대로 알게 되면,
오만 정이 다 떨어져 차마 그것을 취하기 주저하게 될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산란계 농가 120곳을 조사하였는데,
94.2%가 진드기에 감염이 되었다 한다.
사실 진드기는 산, 들 어디에나 살고 있다.
그러하니 밀집 축사 안에는 더욱 많이 발생한다.
진드기가 닭 몸에 많이 붙어 있으면,
먹이도 덜 먹고, 산란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축산 농가 입장에서는 진드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산란률이 떨어져 수익 감소가 일어나는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농가 입장에서는 이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저런 위험한 물질이 든 살충제를 쓸 유혹에 넘어가기 십상이다.
게다가 당국의 통제가 부실할 경우,
규제 선을 넘어 더욱 이들 사용금지 살충제를 주저 없이 쓰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현행 양계 농가의 닭 입식률은 초고도 밀도를 넘어 서고 있기에,
당연 각종 병충해가 창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 해결하기 위해선 일반적인 약제로는 해결이 어렵거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보다 싸고 강력한 약제를 원하게 된다.
그런즉,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금과 같은 욕망 폭주(暴走) 방식의 축산내지는 농사 방식을 바꿔야 한다.
아니 막아야 한다.
소비자 역시 지금보다는 더 부담을 질 각오를 하여야 한다.
아니 이것은 부담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길인즉,
의당 가야할 길이다.
즉, 경제적 부담일 뿐,
실인즉 명색, 즉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바른 길이다.
정 부담이 되면,
조금 덜 먹을 일이다.
덜 먹으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넋이 낙낙해진다.
저 짓거리들을 보지 않아서 그렇지, 보게 되면 당장 마음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세상은 개변(改變)되지 않는다.
벼락불에 맞듯 의식에 개벽(開闢)이 일어나야 한다.
초밀식 축산에 대하여는 인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이라면,
혀를 차며 마음을 아파한다.
하지만 이도 그 뿐 돌아서면,
여전히 굽고, 물어뜯어,
제 뱃구레에 꾸역꾸역 처넣으며 입맛을 만족시킨다.
초밀식을 넘어, 학대, 패륜 축산을 자행하여도,
이는 장막 넘어 벌어질 뿐,
모두는 자신과 무관한 일로 치부할 뿐이다.
마치 구공탄 가스가 넘실대며 흘러도,
얇은 구들장을 믿고 코를 골고 단잠을 자듯,
저들 가여운 축생들은 마트의 진열장 위에 얇고 고은 랩에 싸여 있기에,
현생지옥에 놓인 저들 축생의 삶을 태연히 외면하며 살아들 간다.
농사도 현행 축산업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초밀식 재배가 자행되고, 성장촉진제, 착색제가 거침없이 투입된다.
게다가 양액재배 따위가 첨단 농법으로 칭송되고 있다.
흙에서 살아가는 식물을 물속에서 키우니,
이것이 동물들을 뜬장에 넣고 사육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 참고 글 : ☞ 월광(月光))
동물이든 식물을 이리 좁은데 몰아넣고 키우니,
어찌 병이 나지 않겠는가?
병해충은 이런 생체에 얼씨구나 하며 달겨들게 되어 있는 법이다.
각종 비육제, 비료로 허우대만 풍선처럼 커지고,
온갖 약제에 피폐해지고,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약해질대로 약해진 몸뚱이를,
병해충은 공략하기 좋은 표적으로 여긴다.
여기 이 현장에 인간이 가시 박힌 채찍을 들고 서있는 것이다.
동식물을 생명이 아니라 그저 돈 벌어주는 물질로 대할 뿐이다.
하니 살충제가 달걀 안에서 나오는 것이 어찌 이상한 일이겠는가?
현행 농법을 따르는 한,
인류가 이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급기야 이즘엔 유전자조작질을 한 괴물도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친환경 인증 농가에서 나온 달걀에서도 저들 성분이 검출되었다.
장사꾼보다 더 잇속에 오염된 농부의 욕심은 그 누구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제대로 된 농축산물을 대하려면,
친환경 인증 따위를 무작정 믿을 일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제 양심을 밝히고, 바른 농철학을 가진 농부가 나와야 한다.
농부가 그저 비료 이름 외고, 농약 잘 다룬다고 상농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농사는 큰공부를 하는 이가 맡아야 한다.
농부는 생명을 사랑하고, 그 존재의 참된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천도(天道)를 따르는 사람으로 거듭 나야 한다.
이런 농부가 기른 소채, 과일은 설혹 거죽으로 벌레 먹은 흠이 있을지라도,
생명의 기운이 충만하여 천하 모든 중생을 건강하게 보듬어 키운다.
작금에, 체험농장이니 유행한다.
도시에서 하루 시골로 와서,
놀고 즐기다 휑하니 돌아간다.
이것은 체험이 아니라 한낱 놀이며, 소비에 불과하다.
그저 여행객에 불과하니,
주인은 거죽만 번지르하니 꾸며 맞을 뿐,
떠나고 나면 무슨 짓을 벌일 줄 사람들은 미처 아지 못한다.
자신의 입에 들어갈 것을 철저하니 관찰하고, 점검해보라.
유기농 한다고 하지만, 창고 한 구석엔 비료가 쟁여져 있고,
농장 안에는 비닐 조각이 미친 사람 산발처럼 바람에 나부낀다.
이리 되면 의심하여야 한다.
자연재배한다고 선전하는 한 블루베리 농장이 있다.
온 밭은 방조망 그물로 덮여 있는데,
이랑 위엔 풀 하나도 자라지 않고 있다.
단박에 나는 저게 가짜임을 알아차린다.
설혹 그가 비료,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여도,
저것은 자연재배가 아니라 그저 유기농 정도로나 봐 줄 수 있을 뿐이다.
이름을 시장에서 구매하여, 제 분수 넘겨, 얼굴에 가면처럼 뒤집어쓰지 말아야 한다.
꾸민 이름을 장바닥에서 사게 되면 종내는 욕심을 부리게 되어 있다.
명색(名色)이 서로 어긋나면 반드시 난(亂)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작금의 달걀 살충제 사건처럼.
見色而生愛心
색을 보면 애착심이 생기는 법이다.
자연재배를 하려면,
無住라,
어디 머무르면 아니 된다.
참농부는 기실 자연재배가 아니라 재배를 떼버린 자연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
이게 알고 보면 지극히 쉬운 일인데,
貪愛 탐애에 繫縛堅固 단단히 결박되어 있은즉,
사람들은 모두 어렵다 하며,
스스로의 無明 속으로 자맥질을 하고 만다.
하기에,
하얀 달걀 속에,
시꺼먼 죽음의 살충제가 나오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참으로 개탄스럽다.
닭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저들은 우리 인간 때문에 견딜 수 없는 질곡(桎梏) 속에 들어 있다.
저것을 어겨 벌려 깨뜨리고,
저들을 구해내야 한다.
참인간이 되려면.
이글을 다 써서 올리고,
기사 하나를 방금 보게 되었다.
("약 치고 며칠동안 계란 못먹었다", "정부의 전수조사 맹점 많다")
우리가 이러고도 제대로 사람 노릇 하며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