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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물이 차다

소요유 : 2017. 9. 11. 12:39


오늘 시 한 수를 만나다.


此地别燕丹, 壯士髮冲冠.

昔時人已没, 今日水猶寒.  


이곳에서 연 태자 단과 작별하니

사나이의 곤두선 머리카락 모자를 찔렀다네.

옛 사람은 이미 죽고 없지만

지금도 역수 강물은 여전히 차갑구나.  


낙빈왕(駱賓王)의 시인데,

번역은 백운재 선생이 하신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역수(易水)는,

전국시대 때 형가(荊軻)가 진(秦)나라 영정(嬴政)을 암살하기 위해,

그의 벗 고점리(高漸離)와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전송을 받으며,

헤어지던 곳이다.

영정은 진시황의 이름이다.


형가가 당시 불렀던 노래는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나오는데,

그 비장함은 사람의 가슴을 칼로 저미듯 단숨에 저르르 지난다.


太子及賓客知其事者,皆白衣冠以送之。至易水之上,既祖,取道,高漸離擊筑,荊軻和而歌,為變徵之聲,士皆垂淚涕泣。又前而為歌曰:「風蕭蕭兮易水寒,壯士一去兮不復還!」復為羽聲慨,士皆瞋目,發盡上指冠。於是荊軻就車而去,終已不顧。

(史記 刺客列傳)


형가가 떠나면 죽을 줄 알기에,

전송객들은 모두 흰 옷을 입고 미리 조상(弔喪)하는 것이다.

친구 고점리는 축(筑)의 명수다.

그가 축을 두드리자 형가는 노래로 화답한다.

모든 이들이 눈물을 떨어뜨리는데,

형가가 부른 노래는 이러했다.


風蕭蕭兮易水寒,壯士一去兮不復還!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차구나,

장사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


난 이 노래를 잊지 않고 소싯적 이래 외우고 있다.

형가는 이 날 이후 의협의 시조가 되었다.

사기엔 형가의 위 노래에 이어,

이리 당시의 현장 분위기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復為羽聲慨,士皆瞋目,髮盡上指冠。於是荊軻就車而去,終已不顧。


다시금 우조의 강개(慷慨)스런 노랫가락에 젖어,

전송하던 이들은 모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칼이 관 위로 곤두서다.

이 때 형가가 수레에 오르며 떠나다.

끝내 뒤 한 번 돌아보지 않다. 


낙빈왕은 壯士髮冲冠,

‘사나이의 곤두선 머리카락 모자를 찔렀다네.’

하며, 곤두선 머리카락의 임자를 형가로 묘술 하였지만,

사기에선 髮盡上指冠,

‘머리칼이 관 위로 곤두서다.’

이 주체를 전송객들로 그리고 있다.


그게 뭣이 중요하겠는가?

사기는 한나라 때 지어진 것이고,

낙빈왕은 초당의 인물이다.

수천 년 지난 지금의 나 역시,

저 시를 읊으면,

머리칼이 덩달아 곤두서는 것을.


易水寒


위 둘의 시엔 모두 역수가 차다고 읊고 있다.


낙빈왕(駱賓王)의 시를 번역한 백운재 선생은,

이 寒을 두고 詩眼이라 하였다.

차가움은,

대장부의 의기, 전송객들의 쓸쓸한 마음, 예견된 실패에 대한 역사의 시선이라 하였다.


실패가 거의 예정된 것이로되,

사람들은 소망을 담아 흰옷 입고 결연히 강가 앞에 서있다.

형가 역시 이를 어찌 모르랴?


‘이 때 형가가 수레에 오르며 떠나다.

끝내 뒤 한 번 돌아보지 않다.’


그러기에 그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떠나고 마는 것이다.


終已不顧。


과연 역수는 차구나.


요즘 여기 시골은,

조석으로 바람이 차다.

가을 물도 차게 식었을 것이다.


秋水寒


이따가 농장 아래 한탄강에라도 내려가 볼까도 싶다.


***


형가 이야기를 중심으로 연극,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흔히들 영화 영웅을 많이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사기의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또 다른 협객(俠客) 섭정(聶政)을 소재로 한,

왕우(王羽) 주연의 대자객이 훨씬 더 가슴에 남는다.

소싯적에 보았던 이 영화를 그 후에도 몇 차 더 보았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더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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