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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묘(真猫)

생명 : 2021. 4. 20. 19:20


진묘(真猫)

그리 오래 안면을 텄지만,
그들은 곁을 주지 않는다.

어쩌다 저쪽은 오고, 나는 가다,
길 가운데서 딱 마주친다.
녀석은 슬그머니 길을 내주고,
등을 돌려 갓 변 풀숲으로 사라진다.

언제 보아도 녀석 등 위에선,
잿빛 서러움의 비늘이 후드득 떨어진다.
터벅터벅 발걸음 따라, 바람결 민들레 홑씨처럼 외로움이 흝어진다.
파인 발자국마다 슬픔이 한 줌씩 고인다.

(서러움이 갈대숲으로 숨어들었다.)

도대체 저 어린 영혼은 왜 저리 홀로 짐을 지고,
저 먼 길을 기약도 없이 마냥 걸어가야만 하는가?

차라리, 그들은 기약이 없기에,
외려, 무심히 견디어내는 것이 아닐는지?
소망, 약속을 짓기로 하는 순간,
저들은 아마 미쳐버리고 말지나 않을까?

가진 꿈이 없기에,
저들은 오늘을 천년처럼,
서러움의 비늘을 떨구고,
수행 성자처럼 걷는다.

古之真人,其寢不夢,其覺無憂,其食不甘,其息深深。

‘옛 진인은 잠을 자도 꿈을 꾸지 않고, 깨어도 걱정이 없으며,
먹어도 단 것을 탐하지 않고, 호흡을 하여도 깊고 깊다.’

아무리 맛있는 것일지라도,
딱 먹을 만치만 먹고 남긴다.
아무리 겨울 날씨가 추워도,
해만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천진난만 뛰논다.

장자가 말한 진인(真人)은 기실 진묘(真猫)를 두고 그 이름을 빌린 것이 아닐는지?

真人之息以踵,眾人之息以喉。屈服者,其嗌言若哇。其耆欲深者,其天機淺。

‘진인은 발뒤꿈치로 숨을 쉬지만,
뭇사람은 목구멍으로 쉰다.
굴복자(屈服者, 외물에 심신을 앗긴 자)는 목소리는 신음하는 것만 같고,
욕심이 깊은 사람은 천기(天機)가 얕다.’

사람 새끼는 아무리 진중하다 평이 난 이라도,
곁에서 가만히 관찰하면, 
늘 헐레벌떡 숨이 가쁘다.
사내는 계집 생각, 계집은 사내 생각으로,
자나 깨나 분주하다.
부동산, 주식, 코인 생각하느라,
눈을 감고 있어도 심장이 벌렁벌렁,
피부 털 한 올 한 올 모두 바르르 떨고 있다.

인간은 모두,
천식환자다.

허갈진 욕망에 기속(羈束)된,
365*百日咳
백년 동안의 환자.

녀석이 등 돌리고 떠날 때,
발뒤꿈치를 보면,
천년 고독이,
버섯 포자처럼 피어오른다.
이것은 분명 발뒤꿈치로 숨을 쉬고 있는 증좌(證佐)다.

古之真人,不知說生,不知惡死;其出不訢,其入不距;翛然而往,翛然而來而已矣。不忘其所始,不求其所終;受而喜之,忘而復之。是之謂不以心捐道,不以人助天。是之謂真人。

‘옛 진인은 삶을 기뻐할 줄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몰랐다.
세상에 나오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고,
죽음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심히 가고, 
그저 무심히 올 뿐인 것을.

삶의 뿌리가 자연에 있음을 잊지 않고,
죽은 다음의 세계에 대하여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는다.
주어진 생을 누리다가, 
죽을 때는 일체를 잊고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다.
이는 도를 해치지 않고, 
억지로 인위(人爲)로 하늘을 돕지 않음이니,
이것이 바로 진인이다.’

살면서 진인(真人)은 보지 못하였으나,
여기 농장에서,
진묘(真猫)는 매일 보고 있음이다.

그러함이니,
실로,
장자는 真猫를 두고,
真人을 그리고 있을 뿐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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