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토호(土户) 하나

소요유 : 2013. 3. 27. 12:50


나는 시골에 내려와 그저 농사일에 힘쓰고 다만 한낱 농부가 되길 원하였을 뿐이다.
이는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그럭저럭 흉내를 낼 수는 있으리언만, 
하지만 번사(煩事)가 절로 생기고, 꼴 같지 않은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촌부가 한참 도리에 벗어나 억지를 부리는 것은 무지렁이라 그리한다 치고,
한사막리(閒事莫理)라 쓸데없는 일에 이치를 따져 참견할 일이 아닐 터이다.

헌데 여기 시골은 때를 조금 벗어 이치를 조금 알 성싶은 이일지라도,
깔축없이 제 욕심을 차리려 잔꾀를 부리며 농간(弄奸)을 떠는데 벗어남이 없다.

너른 땅 가진 지주도 아니요, 큰 띠 두른 사대부도 아님이라,
토호열신(土豪劣紳)도 되지 못하는 한낱 토호(土户)임이라.
그저 시골구석에 외짝지게문 하나 내달아 놓고,
오래 살았다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자들이 위세를 떨곤 한다.

2007년 이래 주말농사를 삼년간 지었다.
게서 가끔 만난 지방 토호(土户) 하나가 있다.

2010년 본격 농사를 지으려고 우물을 파려 할 시,
이 자의 소개를 받아 관정업자를 들이고자 하였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달포가량 지연을 시켰음이나,
이미 약조를 한 것이라 파기도 하지 못하며 이끌려 다녔다.
헌데, 뒤늦게 들인 관정업자는 나중에 알고 보니 이웃마을 이장이라는 치인데,
별별 야료를 다 부리며 수작질에 여념이 없었다.
결국 다 작파하고 말았으나 그 사품에,
토호 하나에겐 적지 않은 돈냥이 공으로 건네졌다. 

나로선 이 자들이 작당하여 훼살을 놓으려 하였다고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음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이를 용서 했다.
그 이후에도 이 자의 석연치 않은 짓이 이어졌으나,
내가 저자의 삶을 대신하여 사는 것도 아닌 바,
그러한 위인이거니 하며 치부하고 대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어디에 있으랴?

그러함인데,
지난 일요일 토호 하나, 이 자가 나를 찾아왔다.
한참 이야기가 이어지자 나는 서울에서 온 짐 부리기를 마치지 못하고 일을 미뤄두고 있었다.
헌데, 모주망태 이 자가 눈치껏 돌아가지는 않고 나가서 한 잔 하자고 청을 넣는다.

내심 그리 내키지는 않지만 마다하면 민망할 터이라 잠깐 시간을 내기로 하였다.
이 자가 나보다 두어 살이 아래인데,
술이 한 순배 돌자 ‘o사장’ ‘o사장’하면서 말을 마구 내놓아버리더니만,
급기야 반말로 지껄이기 시작한다.
이 땅의 농부가 언제부터 사장이 되었는가?
농민대학을 가도 기술센터 직원은 농부들을 사장이라 불러댄다.
이런 부박(浮薄)하기 짝이 없는 세상 꼬라지하고는.
게다가 나는 사장이란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는 아니지만 이게 참으로 천박(淺薄)한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참고 글 : ☞ 2009/01/01 - [소요유/묵은 글] - 선생님과 님
                      ☞ 2009/01/01 - [소요유] - 선생(先生)과 후생(後生))
술이 과하여 꼭지가 돌 정도도 아니오,
저나 나나 주량으론 그저 목만 추길 정도였음인데,
이 자가 이내 넋을 염라에게 맡길 셈인가?
내 정색을 하며 옳은 이치를 들어, 한껏 꾸짖으며 저자를 내버려두고 돌아왔다.

내 행여 그자를 연모하길 꽃 본 듯할 까닭도 없었음이며,
숭앙하여 하늘처럼 받들 위인도 아니건만,
평소 덕으로써 대하고 예로써 맞았음이라.

헌데, 삼가야 할 경계를 넘나들며 능갈을 치려하고 있음이라,
아무리 본데없는 촌것이라 할지언정 이리 상스럽고 염치없을 수 있음인가?

이 자가 이미 서울에서 온 네 살 터울 윗내기도 잡아 삶아 먹어,
한참 아랫 동생이 가지고 노는 공깃돌 다루듯 하는 것을 알고 있음이라.
내 진작 이를 다 보고 있음이나,
그자 역시 그런 대접을 받아도 딱히 하소연 할 구처가 없었기로서니,
이는 도대체가 사람 사는 마땅한 도리가 아님이라.
내 이 참에 이도 역시 따끔히 일러 후일을 경계시켰음이라. 
 
“조정에 나아가면 벼슬의 고하로써 직분이 갈리고,
시골 향당에 내려와서는 연치(年齒)로 선후를 가리는 것임이라.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바는 덕만한 것이 없다.”

“天下有達尊三:爵一,齒一,德一。朝廷莫如爵,鄉黨莫如齒,輔世長民莫如德。”

(爵位, 高齡, 德行. 趙岐 注 :“三者天下之所通尊也。”)

내 시골로 벼슬도 없이 내려왔으나,
어찌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차례까지 허물며,
무지렁이 흙투성이들에 밟히는 노방잡초(路傍雜草)가 될 수 있으랴?

추루(醜陋)한 소인배들이란 시비(是非)를 가려 어짐과 의로움에 삶을 기탁하는 것이 아니라,
애오라지 호오(好惡)와 이해(利害)에 따라 윤상(倫常)을 짓밟고 제 욕심을 차리기 바쁘다.

선배를 모시는 것은 선배가 꼭이나 잘나서가 아니라,
이로써 덕을 밝히며 스스로를 겸양코 바른 길로 나아감이라.
허나 참람스러히 극상(剋上)하면 설혹 용히 성공하였다한들,
그리하여 모인 인사들이란 것이 모두 기가 꺾이고 세가 시들은 오합지졸밖에 더 되랴?
그러함이니 늘 주변에 자투리 어리석고 못난이들만 들끓게 됨이라.

허나 덕을 펴고 예절을 알면, 
자연 향기롭고 아름다운 준사(俊士), 영걸(英傑)을 가까이 모시는 복을 짓는 일임을 어이 모르는가?

과시 용렬하기 짝이 없는 지게작대기 같은 위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이 자가 이튿날 술 두어 병을 가지고 찾아왔다.

“잘못 되었다.”

이리 저리 변설을 부려놓지만,
저 흉하고 거문 마음을 어찌 가릴 수 있으랴?

우선은 
“잘못 되었다.”가 잘못임을 왜 아니 모르는가?

그럼,
“잘못 하였다.”완 무엇이 다른가?

후자는 ‘잘못’의 주체가 자기 자신임을 언명하고 있음이나,
전자는 주체는 사라지고 행위의 대상이 객체화되고 있다.

비겁한 화법이다.
있어야할 자리에 자신은 없고 허깨비 하나가 몽당 빗자루를 들고 빈마당을 쓸고 있다.

이로써 그 간 저자의 허물을 거푸 삼세번 용서를 한 폭인데,
이제 저자가 한 번 더 치루고도 비루(鄙陋)함을 벗어날 길이 정녕 남아 있을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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