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亂)
소요유 : 2013. 5. 13. 09:55
늦은 시각 약수터를 향하는데 차량 하나가 뒤를 따른다.
이 시각엔 그곳을 찾는 이들이 거의 없다.
약수터를 가려함인가?
물을 받는 중에 뒤를 따르는 후래객(後來客)이 있으면, 공연히 신경이 쓰인다.
때문에 느지막하게 나선 것인데 일이 공교롭게 되려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약수터 입구에 막 차를 대려하는데,
뒤쫓아 온 차도 바로 꽁무니에 이어 차를 댄다.
물통을 약수 꼭지에 대고 물을 받자하니,
커다란 물통을 들고 그이가 나타났다.
물통이 작은 것이면 먼저 받으라고 양보할 참인데,
상당히 큰 통이니 그럴 명분은 갖추지 못하였다 할 터.
촌티 없이 말끔하게 생긴 것이,
얼핏 막돼먹지는 않아 보인다.
“내가 오늘은 물을 많이 떠가려 하였는데,
뒤에 쫓아와서 염려가 되었다.
작은 물통이면 양보하겠다 작정하였는데,
큰 물통이니 그냥 내가 먼저 받겠다.
미안하다.”
“괜찮다.
그러지 않아도 먼저 올라가기에 막 달려가 앞서려다,
마음을 바꿔 부러 천천히 왔다.”
“누구든지 먼저 받으면 임자이긴 하지만,
그리 되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이를 난(亂)이라 한다.
누가 먼저 받아야한다는 규칙이나 법은 없지만,
선래객이 먼저 받고 후래객이 나중을 따르게 되면,
이는 자연스럽고도 이치에 맞는다.
그러할 때 세상은 가지런히 질서가 잡히고,
음양 사시가 고르게 되며 천하가 화평해진다.
만약 남을 앞질러 달려가며 일을 치루는 것이 일상이라면,
나 역시 앞에 가까이 다다랐으면서도 뒤를 걱정하여,
용을 쓰며 내달려 뛰어가지 않으란 법이 없지 않은가?
후래객이 선래객을 재껴 뒤로 하고자 하며,
선래객이 후래객을 경계하여 더욱 치달려 나아가고자 하면,
양인은 부단히 땀에 절어, 진세상을 부절히 걱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한 어지러움이 도시 어디에 있단 말인가?
총, 칼로 싸우는 전쟁만 난(亂)인줄 알지만,
실인즉 여기 조그마한 약수터에서도 난(亂)이 벌어질 수 있음이다.
작난(作亂)하면 밝은 덕이 손상을 입고,
필경은 천하가 어지러워진다.
간발의 차이로 앞 선이는 후래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뒤미친 이는 겸사를 하며 서로 염치를 차릴 때,
순간 이곳에 웃음꽃, 만다라화 꽃비가 밤하늘의 별빛마냥 쏟아져 내린다.
화우만천(花雨滿天)
어찌 화우(花雨)가 부처의 설법에만 따를손가?”
이자가 그래도 염치는 있었음인가?
내 큰 물통을 보더니만 자기가 대신 싣는 데까지 들어다 주겠다 한다.
요즘은 70 노객도 허리가 곧고 힘이 넘친다.
내 설혹 만부지망(萬夫之望) 용력(勇力)은 없다한들,
어찌 제 물통 하나 들지 못할손가?
겸사코 고맙다 이르며 그와 헤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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