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낙묵(大處落墨)
(요약 :
사법권을 행정부, 입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자.
그 방법론으로 법원장, 검사장을 선출직으로 바꿀 것을 제시한다.
나아가 감사원장, 인권위원장 ... 역시 선출직으로 바꾸자.)
근래, 선거에서 당선된 이들이 판결에 따라 벌을 받고, 당선 무효가 되는 경우가 생기자,
감히 국민이 선출된 자를 판사가 후에 해칠 수 있는냐?
이러면서 아예 선거법을 무력화 시키고,
선거로만 그 판단을 맡기자는 의론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내 의견을 정리해보았다.
죄가 있는데 그 처벌을 유보하고 선거로 가름하자는 말인가?
이를 주장하는 취의를 모르는 게 아니다.
무리한 판결로 정적을 제거하는데,
사법권이 동원되는 작태에 대한 경계와 우려임이리라.
나 역시 이에 대하여는 공의롭지 못하다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작용을 방해하고 무력화하여,
사법 시스템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
주장만 할 일이 아니라,
그리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운동이라도 벌일 일이다.
입법 수단을 통해 작위적인 사법 공격을 제어하는,
구체적 장치를 모색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정치적 도의나, 절제에 기대어,
희망을 이야기한들 기대가 만족되는 현실을 만나기 어렵다.
그런데 말이다.
상대 정치인을 사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말자고 하지만,
만약 죄를 명백히 저질렀는데, 덮고 넘어간다면,
이것은 정치인은 특권 계급이 되어,
치외법권역에 놓이게 되니,
이것은 또 이것대로 은비隱庇에 대한 비판을 초래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소이가 된다.
이러고서야 어찌 법치주의를 안정적으로 확립할 수 있으랴?
권력을 잡은 자가 정치적 상대를,
재량으로 봐주거나, 옭죄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이상,
저들의 주장은 주장에 그칠 뿐,
실질적인 현실 제약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차라리, 그 재량권을 빼앗는 방책을 고안하는 게 옳다.
나는 그 방책 중의 하나를 사법권 독립을 강화하는 데서 찾는다.
가령 검사를 행정부에서 떼어내고,
그 수장을 선출직으로 바꾸는 것이다.
아울러 법원장 역시 국민 선출로 뽑는 것이다.
이때 정당인을 철저하게 배제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지금은 법집행권이 정치 세력에 의해 왜곡되어 기소권이 변질되기도 하고,
아울러 법원의 재판권이 행정부의 인사권에 구속되어 있기에,
사법권이 공정하게 행사되지 않는 잠재적 원인이 되곤 한다.
그러함이니, 기소권, 재판권의 독립을 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심판을 정치적 지위를 가지거나, 그 영향력 하에 있는 자가 맡는 한,
어찌 게임이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으랴?
정치인 재량에 맡길 것이 아니라,
법에 비추어 기속 여부가 판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 주체를 정치인이 아닌 국민에 의해 선출된 자에게 맡겨야 한다.
가령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검사총장 등에 대한 행정부의 임명권을 박탈하고,
정략적으로 작동하기 일쑤인 국회의 동의권 역시 빼앗아 버리고,
국민이 직접 선출하도록 바꿔,
사법권력을 행정부, 입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시켜야,
이 지긋지긋한 폐단을 막을 기초를 만들 수 있다.
저들의 주장은,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겨놓고,
생선을 훔쳐 먹든 아니든 상관없이 벌을 주어서는 아니 되고,
다만 다시 새로운 고양이를 뽑자는 격이 아니랴?
이리되면 백년하청이라,
생선이 온전히 남아 있으리란 기대를 할 수 없고,
다만, 실효성 없는 불완전한 선거만 들입다 치르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미련하기 짝이 없는 노릇인가?
스포츠 경기가 벌어진다 하자.
저들의 사고방식은 심판 보고 판단하지 말고,
관중에게 경기 진행을 맡기자는 셈이다.
이러할 때 게임의 규칙은 형해화하고,
정치판은 정무적인 판단으로 굴러가게 된다.
더욱 세상은 곡학아세가 판치며 어지로워질 것이다.
지금 천하대란이 일어난 것은,
일편 선수가 심판을 함께 보고 있는데 있다.
심판을 새로 세우고, 법을 정비하여야 할 일이지,
사본축말捨本逐末이라,
본을 버리고, 말단을 쫓고 있어야 하겠는가?
저들은 모든 판단을 관중에게 맡기자 하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의 규칙, 법을 왜 만드는가?
겪어봐서 알 터이지만,
대중은 마냥 현명하지 않고,
제 잇속 따라 편을 갈려 싸움박질에나 능할 뿐인 것을.
주서엔 이런 말이 있다.
故周書曰 毋為虎傅翼,將飛入邑,擇人而食之。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마라. 마을에 뛰어들어 사람을 잡아먹을 것이다.’
기실 이 속담의 함의는 법가의 기본 준칙이기도 하다.
지금 이리로 의론을 전개할 형편이 아닌즉,
아래 본문 전체를 소개하지 못하고 토막 쳐 내보이는 게 유감이다.
여기서는 인치가 아니라 법치를 확립하여야 한다는 게 핵심 논지다.
미국 수정헌법이란 것도,
그 근저엔 인간 불신을 전제하고 있다.
사람을 믿을 일이 아니라,
법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게 잘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할 일이다.
그러지 않으니까 소두무족(小頭無足)이 판을 치는 게 아니랴?
명태균이 말한 소경 무사, 앉은뱅이 주술사란 얼마나 그럴싸한 비유인가?
기실 이는 격암유록에 나오는 말이다만.
소인小人, 치자癡者라,
소인배, 어리석은 자가 등장하면,
이리 주술에 의지하게 되는 법이다.
각설,
한비자의 難勢편 일부다.
... 夫棄隱栝之法,去度量之數,使奚仲為車,不能成一輪。無慶賞之勸,刑罰之威,釋勢委法,堯、舜戶說而人辯之,不能治三家。夫勢之足用亦明矣,而曰必待賢則亦不然矣。且夫百日不食以待粱肉,餓者不活;今待堯、舜之賢乃治當世之民,是猶待粱肉而救餓之說也。夫曰良馬固車,臧獲御之則為人笑,王良御之則日取乎千里,吾不以為然。夫待越人之善海遊者以救中國之溺人,越人善游矣,而溺者不濟矣。夫待古之王良以馭今之馬,亦猶越人救溺之說也,不可亦明矣。夫良馬固車,五十里而一置,使中手御之,追速致遠,可以及也,而千里可日致也,何必待古之王良乎!且御,非使王良也,則必使臧獲敗之;治,非使堯、舜也,則必使桀、紂亂之。此味非飴蜜也,必苦萊亭歷也。此則積辯累辭,離理失術,兩末之議也,奚可以難,失道理之言乎哉!客議未及此論也。
‘...
무릇 굽은 나무를 바로 잡는 기구와 같은 법을 버리고,
길이를 재는 자의 칫수를 버린다면,
혜중奚仲으로 하여금 수례를 만들게 하여도 단 하나의 바퀴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상을 주어 권장하는 바 없고, 형벌의 위엄도 없이,
세위勢威를 놔버리고 법을 포기하면,
요, 순이 집집이 설득하고 사람을 변설로 꾀어도,
세 집三家조차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무릇 세위의 쓰임이 유용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함인데도 필히 현자를 기다려야 한다고 함은,
역시나 그렇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백일 동안 먹지 않고 좋은 양식과 고기를 기다린다면,
굶은 자가 살지를 못한다.
이제 요, 순과 같은 현인을 기다려 지금의 백성을 다스리려 한다면,
이는 마치 좋은 양식과 고기를 기다리느라 굶주림을 구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무릇 좋은 말과 튼튼한 수레라도 노예가 몰면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만,
왕량이 그것을 몰면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라고 하였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릇 월나라 사람 중에서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을 기다려서,
중국의 물에 빠진 자를 구한다면,
월나라 사람이 헤엄을 잘 친다하여도,
물에 빠진 자를 건져내지 못할 것이다.
무릇 옛날의 왕량을 기다려,
지금의 말을 부린다면,
이 역시 월나라 사람을 기다려 물에 빠진 이를 구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이는 불가함이 분명하다.
무릇 좋은 말과 튼튼한 수레를 오십 리 마다 하나씩 두고,
중질의 마부로 하여금 부리도록 하면,
빠른 것을 쫓고 멀리 이르고자 함을 가히 이룰 수 있어 하루에 천리에 이를 수 있다.
어찌 옛날의 왕량을 기다리겠는가?
또한 말을 모는데 왕량을 시키지 않으면 반드시 노예를 시켜 실패할 것이며,
나라를 다스리는데 요, 순을 시키지 않으면,
반드시 걸, 주를 시켜 어지럽힐 것이라 한다.
이는 맛이란 엿과 꿀이 아니면,
필히 고들빼기나 미나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는 변설을 거듭 늘어놔 이치를 여의고 법술을 잃어,
양극단의 논의에 빠졌다 하겠다.’
ps)
저들 주장의 핵심은,
선출되지 않은 검사와 판사가
선출된 정치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 일응 그러싸하게 들린다.
더우기 판, 검사들의 패악질을 목도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선 더욱 더.
하지만, 선거로만 심판하게 되면,
죄를 지은 선출된 정치인은 누가 심판하는가?
선거에서 떨어져지는 게 죄값을 치루지 않고 세탁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은 괜찮은가?
대처낙묵大處落墨이라,
낙묵하는 자리는 바로 그 요처여야 하지 않겠음인가?
(高奇峰)
선출되지 않은 검사와 판사를
선출된 검사와 판사로 만들면 되지 않으랴?
그야말로 강거목장綱舉目張이라,
벼리줄 하나를 당기면, 그물코 만萬이 절로 당겨오는 법.
판, 검사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토대를 구축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판, 검사는 정치권력의 임명권, 인사권 행사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이리 삼권분립이 불완전한즉,
늘 검사의 기소와 판사의 판결에 시비가 따르는 게 아니랴?
저들을 자유롭게 하라.
그러함으로써 그대 당신들을 자유롭게 하라.
침쟁이가 혈자리를 놔두고,
소맷자락 걷고 화려하게 우삼삼좌삼삼 손가락을 놀리며,
밤낮 헛구멍만 쑤셔 된다면,
어찌 이러고서야 병을 고칠 수 있으랴?
광장에 쏟아져 나가 촛불 들고 쑈질 할 것이 아니라,
당장 판검사를 선출직으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할 일이다.
사본축말(捨本逐末)이라,
사람들이 근원을 돌보지 않고, 말단을 쫓기 바쁘구나.
법이 있는데,
이를 가리고, 선거로 죄벌을 가름하자는 수작질이란,
법치국가에서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노릇인가?
차라리 주술 걸어 점사라도 뽑아보는 소두무족이 곱절은 훌륭하다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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