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여신
내가 연전에 야간 등행을 즐겼을 때다.
(※ 참고 글 : ☞ 2008/02/27 - [소요유] - 야반삼경(夜半三更) 문빗장 - 자정수(子正水))
성황당 곁을 지나다 슬쩍 놀란 적이 있다.
거기 짚신과 저고리 등속이 버려져 있었다.
어두컴컴한 산 속에서 만나는 이들 물체들이 지시하는 신호는,
우리들 뇌리에 천년 내리 새겨져 있다시피 망자(亡者), 귀신(鬼神)을 상기 시킨다.
야반삼경에 길을 꺾어 들어가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이곳 고적하니 홀로 계신 성황당을 나는 비껴 갈 수가 없었다.
거기를 지나쳐야 내가 몸을 풀고 넋을 만나곤 하는 너럭바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샤~ 하니 귓가를 스치고 지나는 바람결을 저르르르 느낄 참이면,
때 맞춰 저고리 옷자락이 살짝 흔들리기도 하는 것 같다.
뒷골부터 치올라 정수리에 머무르던 짜릿짜릿한 한기가,
이내 달음질을 치며 앞이마께로 흘러내린다.
순간, 정신이 여물지 못한 이라면,
이 때 아마도 혼(魂)이 냅다 떠서 백(魄)이 나자빠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혹시 그리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삐죽하니 솟는다.
나는 그 후에도 자정을 빌려 등행을 계속했다.
하지만, 당시 귀신은 만나지 못했다.
아마,
나타났다한들,
저보다 곱은 흉칙한 놈을 보고는 줄행랑을 치지나 않았을까 싶다.
여기도 역시 쓰레기가 버려지고 있다.
모처럼 성황당 주변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어내고,
내친 김에 바로 곁에 있는 계곡으로 내려섰다.
이 한적한 곳에도 가끔 사람들이 화투(花鬪)판을 벌이느라 자리를 편다.
놀러 온 이의 십중팔구는 거개 다 화투판을 벌인다.
남녀노소 그리 꽃싸움을 벌인다.
거기서 30여 분간에 걸쳐 주은 쓰레기다.
깨진 병만 10여개가 넘는다.
계곡 물은 여전히 차고 깨끗하다.
저 쓰레기를 거치면서도 어찌 저리 정갈하게 몸가축을 챙길 수 있음인가?
아, 아름다운 물의 여신이여.
가을물(秋水)!
(※ 참고 글 : ☞ 2008/08/17 - [소요유/묵은 글] - 추수(秋水))
올 가을엔 접신(接神)하듯,
그녀를 흠씬 사랑하며 내 혼을 정화하리.
이 앞에 서면 나는 내가 인간인 것이 도대체가 부끄럽다.
고맙게도 하루 신세를 지고 가며,
아무 말도 없는 그녀를,
어찌 저리 끔찍하게 유린 할 수 있음인가?
당췌 이해가 아니 되는 불한당들이다.
그 누가 이름도 아름답게 ‘꽃싸움(花鬪)’라고 하였음인가?
저들 진흙탕 미치광이들, 이전투광(泥田鬪狂)에겐,
그저 이투(泥鬪)라 불러야 마땅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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