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 한 장 공간
여기 시골에서 귀농한 분을 우연히 만나 몇 차 교류를 한 적이 있다.
그 분은 양계장을 운영하신다.
무창계사(無窓鷄舍)를 짓고는 다량으로 입식하여 키우는 양 싶다.
말씀하시길 한국엔 마땅한 자료가 없어 덴마크인가 서구쪽 자료를 챙겼는데,
거긴 단위 면적당 여기보다는 배는 더 많이 넣고 키운다고 한다.
내 관심이 없어 자세히 듣지 않았지만,
저들에겐 가능 한 많이 구겨 넣는 것을 자랑으로 아는가 보다.
당연 단위 생산비가 절약될 터이고 이문은 많이 남을 터이다.
다 기른 닭을 처음 내갈 때 부부가 눈물을 흘리셨다 한다.
그러한데 지금 그 분은 이리 말씀하신다.
"저 닭은 인간의 식량일 뿐이야."
사람 좋아 보이는 그 분.
저 눈물과 식량이라 이름 짓는 공간, 그 양 끝단의 거리는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인간엔겐 한 치에 불과할런지 몰라도,
닭들에겐 삼천장(三千丈)이라 할지라도 헤아리기엔 부족하리라.
실상을 알려면 한번 방문하여 살펴보아야 할 터인데,
썩 기분이 내키지 않아 미루고 있다.
그런데, 어제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다.
"☞ 공장식 축사 재앙은 인간에 돌아온다
닭 한 마리에 A4 한 장 공간, 이게 동물 복지?"
닭 한 마리에 A4 한 장 공간
아, 이 말씀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혀든다.
정녕 우리가 이리 살아도 괜찮은가?
이번 폭염에 닭이 죽어나갔다고 하는데,
저 지경이면 아니 죽어나가는 것이 외려 비정상이 아닐까 싶다.
惻隱之心 人皆有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측은지심은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맹자의 말씀이다.
조금 더 그 언저리를 살펴본다.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皆有怵惕惻隱之心;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非所以要譽於鄉黨朋友也,非惡其聲而然也。由是觀之,無惻隱之心非人也,無羞惡之心非人也,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누구나 두려워 측은한 마음을 일으킨다.
이는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요,
무리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그 어린아이가 지르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측은지심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수오지심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다. .....”
사람의 마음은 우물 같은 것.
거기 누가 돌보지 않아도, 누가 물줄기를 설치한 것도 아님에도,
연신 샘이 솟는다.
그 샘을 가만히 치어다보면,
거기 하늘 구름이 떠가고,
세상 만사가 비추어 흐른다.
애초, 누구나 그 샘물은 맑고 깨끗하였을 만,
어찌 지금은 이리 이악스럽게 그저 앞으로만 달려 가고 있는가?
이를 일러
狂妄馳騁(광망치빙)이라 한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미쳐 망령되어 그저 냅다 달려 나가기 바쁘구나.
無惻隱之心非人也
이 삼엄한 말씀 앞에,
어찌 두려운 마음을 내지 않을손가?
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