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神처럼, 눈꽃처럼

소요유 : 2018. 5. 2. 22:08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적이 없는 이는,

행복한 이다.

복스런 그,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나는,

그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그가 모르는 것을 나는 알기에.


雪後始知松柏操,事難方見丈夫心


‘눈 내린 다음이라야 송백의 지조를 알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사람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처절한 말씀인가?


이 글을 읊조릴 때마다,

팔뚝에 전기가 지나듯,

좌르르 소름이 돋는다.


팔뚝엔,

주홍글씨처럼,

점화식(點火式),

그 슬픈 의례가 집전(執典)된다.

神의.


내가 늘 다니던 북한산,

드나들 때마다 낙락장송이 서 있는 곳을 지나게 된다.

아, 

거기 발걸음을 멈추고,

한 동안 묵연히 저들을 치어다 본다.


천년 고독,

묵언 행자.

저들을 닮고 싶다.


산 아래로 내려가면,

헤푼 계집 치마고름 풀 듯, 

언제나 분리되고 마는 내 의식.

이 부끄러움 앞에,

나는 죄인이 되어,

슬피 운다.


혹간 멈춰 선,

내 곁으로 사람이 지나기라도 한다면,

나는 크게 숨을 몰아 움켜 가두고, 

손가락 감아 줘, 한 웅큼 주먹을 쥐듯,

저들이 지나는 동안 그리 꾹 참아 낸다.

온 몸을 떨면서.


숨을 쉬면,

무엇인가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의식이 인다.

이것을 못난 이의 강박관념이라 놀려도 좋다.

하지만, 나는,

이리 내 온 존재를 내던져,

오롯하니 나만의 순결한 의식으로,

저들 소나무를 만나고 싶다.

아무도 모르게,

홀로.


술 쳐먹고,

계집질 같이 하였다 하여,

그가 내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외롭고, 힘들 때,

손을 꽉 잡아 주며,

그는 눈을 꼭 감으며,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미욱한 나는,

외려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런 그를 생경스럽게 쳐다 보았다.


하지만,

그가 떠나고 난 다음.

밀물처럼 외로움이 몰아닥칠 때,

나는 그 때라서야,

비로소 그가 떠난 것을 알아 차린다.


그의 부재가,

슬픔을 부른 것이 아니라,

정작은 나의 무딘 감성이,

너무도 부끄러웠던 것이다. 

내게,

그에게,

모두에게.


그의 부재 안에서,

그의 실존을 알아 차리고 마는,

못난 나,

그제서야,

슬픔을 느끼는 나란 물건이란,

도대체가.


그의 부재란,

차라리,

깨우침을 일으키는,

구원의 동앗줄. 


그런 우정이 그립다.

오늘처럼 비가 나리는 날은 더욱 더.

그가 그립다.


허나,

언제나 그렇듯이,


‘비상한 사태가 벌어져야, 

그가 나타난다.


神처럼,

어둠 속이라야,

그가 나타난다.’


그 때가 아닐 때,

제 간을 내주어도,

그는 확인 되지 않는다.

결코.


눈이 내리지 않는 한,

송백의 지조는 알려지지 않는다.

결코.


슬프지만,

그래서, 

나 혼자만이,

만나는, 

세상의 비밀은,

눈꽃처럼,

아름답다.


차라리.

눈꽃처럼,

쉬이 만날 수 없어,

다행이다.


차라리,

거기,

눈꽃 속이,

우정을 숨기기엔,

세상보다 더 낫다.


예수를 마지막까지 지킨 여인들,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


눈꽃 같은 이들이 있어,

예수는 외롭지 않았으리.


차라리,

신보다 더 가까이 있는,

송백의 지조.

그 눈꽃 비밀을 안다.

예수와 함께,

단 둘만이.


비내리는 오늘의,

눈꽃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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