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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城隍堂)

소요유 : 2008. 6. 22. 17:38


성황당(城隍堂)

북한산을 오르다보면 성황당을 가끔씩 마주 치게 된다.
원추형으로 뾰족하니 솟은 돌무덤은 성황당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돌탑에 가깝다.
저게 필경은 성황당을 본뜬 것일 테지만, 무엇인가 어색스럽다.
좌우로 완전히 균형 잡힌 모습도 그렇거니와 무엇 보다도 돌 쌓은 표면이 매끄럽기 그지 없다.
이런 인공 조형물은 내 미감을 혼란스럽게 하거니와,
성황당을 대할 때 절로 이는 무엇인가 애틋한 정서까지 일그러뜨리고 있다.

오가는 이들이 하나 둘, 돌을 얹어 자연스럽게 쌓여진 것이 아니라,
공원공단측에서 조성 의도를 가지고,
어느 날 작정하고는 급히 공사해내지 않았는가 이리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저것은 성황당이 아니라 그저 석조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말이다.
안에다 심을 박고는 겉으로 돌들을 가지런히 붙였을 공산이 크다.
거죽이 너무 매끄럽고 틈 하나 없어, 추가로 돌을 보탤 여지가 없다.
민초들의, 더 이상의 소망은 거부하겠다는 몸짓으로 서 있는 저것을 어찌 성황당이라 부를 수 있는가 ?
저것은 거죽만 본뜬 한낱 조형물, 아니 그저 죽어 있는 구축물에 불과하다.
제법 높이 솟은 양으로 보아서는, 추측이지만 필시 안으로는 시멘트 뼈대가 세워져 있을 듯 싶다.
끔찍하다.
거대한 위선을 대하고 있는 듯,
나는 저으기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내 분노하고 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연 그대로 미래로”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 있는 표어다.

성황당 흉내낸 저 구축물을 기획한 이상,
최소한, 저들에게도 성황당이란 문화 지표를 빌어 국립공원을 관리(?)할 의도가 있었으리라.
관리란 말도 내겐 언짢은 말이지만, 명색이 “국립공원관리공단”이란 저들의 뜻을 따라 표현해본다.

(제발 주제 넘게 관리할 생각 말고, 그냥 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저들 관리공단측의 표어를 미루어 보더라도 저들 역시 자연 그대로를 지향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 이율배반의 사치스런 화법에 나는 분노한다.
사람들이 계곡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설치한 나무 목책은 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툭하면 싹 갈아 새로 설치한다.
멀쩡한 것을 일부 기둥 하나가 조금 썩은 것을 기화로 하나만 바꿔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일대 전체를 갈아 버린다. 아주 못된 사람들이다.
기둥은 콘크리트 타설로 고정되기 때문에 매번 그 흔적은 땅속에 묻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저들은 자연보호를 하고 있는게 아니라 망치고 있음이다.
하기에 감히 관리한다고 우쭐거리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나는 이르고 있는 게다.
통상 일년 예산 60억에 30억 가량 적자인 저들이다.
그나마 이제는 입장료 수입이 없어져 전부 외부 예산에 의지하는 형편이다.
적자 가계경제라면 저리 멀쩡한 것을 갈아 엎을 수 있을까 ?
아니 제 아무리 부자라한들 통째로 바꿀 사치를 부릴런가 ?)

진짜배기 성황당은 내가 다니는 길에선 원래 찾아 볼 수 없었다.
모두 만들어진, 그들 말법대로 관리된 가짜배기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저런 인위적인 성황당 복원이 성황당 본연의 문화 내용을 바로 드러낼 수 있을까 ?

성황당이란 무엇인가 ?

민초들에게 삶이란 신산고초(辛酸苦楚)의 연속이다.
그러기에 저마다 간절한 소망과 절절한 하소연이 가슴마다 늘 자욱하니 번져 있다.
저녁 밥짓는 연기처럼 뭉근하니 마을 골골히 한숨과 걱정이 서려있다.

그 소망과 호소를 돌 하나에 실어 지피어 올리던 곳.
이게 성황당이 아니겠는가 ?
그러기에 골 따라, 고개 마다, 맞춤 쉴만 한 곳엔 어김없이 성황당이 절로 만들어졌다.

돌 하나에 나의 소망이 이루워질까마는,
이를 빌어 나의 간절한 정성이 하늘로 통하고, - 일념통천(一念通天)
지신(地神)이 감응하셔 가여운 영혼을 어루만져 주시리란 믿음,
이 얼마나 슬프지만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런가 ?

성황당이란 바램의 현장이자, '정성'을 모으는 곳이다.
조상의 마음이 명주실처럼 면면히 이어지던 곳.
그들의 애절한 소망이 두레박처럼 길어 올려지던 곳.
그곳을 지나면 청무(靑霧)처럼 그들의 마음이 아련히 살아올라 되짚인다.
절로 마음이 정갈해지며, 공순(恭順)해진다.

성황당엔 가을 하늘가 한 점 구름같은 맑은 뭇생명 사랑이 흐른다.
구약의 처참한 미움과, 살륙이 행여 어느 갈피엔들 숨어 있더냐 ?
성황당엔 차라리 예수의 간절한 기도가 절절히 피어오르고 있지 않더냐 ?
만약, 이 땅에서 처음 기독교가 생겼다면,
바벨탑처럼 하늘로 쳐올라간 교회당이란 거대한 구축물이 아니라,
성소는 저 돌무더기같은 소박한 소망의 형식으로 출발하지 않았을까 ?
때문에 나는 성황당 길을 가다가 산신, 부처는 물론 얼핏 예수 얼굴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예수님도 필경은 거기 임재(臨在)하실 게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산길에 년전부터 성황당이 새로 만들어 지고 있다.
처음엔 돌 하나 둘만 놓여져 있어 그저 그러려니 무심히 지났다.
이러던 것이 어느새 제법 커다란 돌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아연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고마움 마음이 절로 인다.

저 소망과 정성을 빚어낸 그 마음들을 위해
나 역시 조용히 마음을 보태드리고 싶다.

보아라,
저 모습엔 그저 수수하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있다.
울퉁불퉁, 큰 돌, 작은 돌 제 멋대로의 돌들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래 둥그렇게 쌓은 석축 위는 그저 빈 터였는데, 일년도 되지 않아 어느 새 자연스럽게 살아 숨을 쉬고 계신 돌무더기가 일구워졌다. 이제서라야 비로서 성황당이라 부를 수 있다. 잊혀졌던 정겨운 그 이름. 왠지 콧등이 시큰 고마운 마음이 인다.)

얼마전에는 그 옆에서 성황당을 향해 어떤 노인네가 다리를 치켜 올리며 운동을 하고 있더라,
불행한 노릇이다.
저 정도 나이를 잡수신 이라면, 비록 생긴지 일천한 성황당이지만,
어찌 저리 방자하게 다리를 쩍쩍 벌리며 산신을 능욕할 념을 낼 수 있으랴.
사뭇 천박한 이다.

그래도 이제는 면목이 제대로 갖추워져 영험을 보이셨는가 ?
길 가던 아낙이 멈춰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아 !
이 얼마나 처연히 아름다운 정경이란 말인가 !
저 아낙의 가슴에 절절히 흐를 간구의 기도란,
그게 무엇이 되었던간에 필경은 통천달지(通天達地) 뜻이 이뤄져야한다.
그것은 아낙만의 것이 아니라,
이내 나의 것이 되며,
우리의 것이기에.

개발독재에 무단히 도륙 당하고,
천박한 치들에 의해 그저 전근대의 지시어로 전락해버렸던 성황당.
이젠, 복원이란 미명하에,
관리란 완장 찬 이들은 무엇에 쫓기듯 거죽만 베껴, 흉내내고 우쭐우쭐 뽐내기 바쁘다.
아득 묘연,
꿈과 소망, 그리고 정성이 사라진 부박한 세태일새라.

하지만, 거기 눈밭에 숨어 견디다 끝내 노란 새순 돋듯 되살아난 순일한 소망과 정성의 실재,
아스라이 사라진들 알았던 우리들의 마음 밭을 다시 만난다.
하여, 오늘 가만히 가슴 여미며 성황당을 생각해본다.


※ 이어지는 참고 글 ☞
    2009/04/13 - [소요유] - 성황당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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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08. 6. 22. 17: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