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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소요유 : 2014. 4. 1. 19:56


몸값

우리는 가끔 직장인은 자신의 몸값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
난 이런 따위의 천박한 말을 도대체가 평생 한번이라도 입밖에 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시중엔 이에 관련된 책도 있는 양 싶다.
처세술이라는 것이 이해(利害) 추수적(追隨的)인 게라,
귀천(貴賤) 따위를 가릴 형편이 아닌 게다.

몸값을 올리기 위해선,
자주 직장을 옮기면서 이력을 쌓고, 경력을 늘려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그러니까 실력보다 그럴듯한 구실 조건을 많이 만들어두는 것이,
자신의 몸값 흥정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잘 아는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고사를 두고 생각해본다.
이 고사를 두고는 세상 사람들은 현인(賢人)을 모시기 위해서는,
주인이 허리를 굽혀 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한다.
그리되면 상대가 감격하여 그에 응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정에 호소하는 바이니,
기실은 조건보다는 인간의 정서를 중시 여기는 소이다.

위작 논란이 있지만,
제갈량(諸葛亮)이 북벌에 앞서 유선(劉禪)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三顧臣於草廬之中,諮臣以當世之事,由是感激,遂許先帝以驅馳。
 
삼고초려하여 신에게 세상일을 물으시니,
이에 감격하여 달려나감으로써(수행) 선제(先帝)의 뜻을 따랐습니다.

이게 제갈량 입장에선 이리 한껏 겸양의 말씀을 내놓은 것일 터이지만,
그의 본 내심은 이와는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초려에 유력자가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것은 아연 드라마틱하다.
그러하니 그 누구인들 감격하지 않을쏜가?
이런 해석은 너무 뻔하고 일차원적이다.

제갈량이 초려에 들어 책을 읽은 까닭은,
세상을 등지려 함이 아니라 실인즉 치세(治世)를 준비한 것이다.
수양과 치세 또는 치민 이 두 가지는 선비들이 닦는 바이다.
뜻과 기회를 얻으면 출사(出仕) 또는 출사(出師)하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물러 앉아 후일을 기약하며 공부를 한다.

누군가는 ‘준비된 대통령’이란 말로 세상 사람들에게 표를 구하였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나로선 모르겠지만,
선비란 죽을 때까지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유비가 세 번이나 찾아오도록,
그 맞음을 소홀히 한 것은 과연 몸값을 올리려 하였음인가?
한 번에 몸을 허락하면 너무 헤퍼 보인다.
그러하니 짐짓 삼세번 헛걸음을 치게 하여야,
체신이 서고 대우가 달라지는가?

만약 제갈량이 이런 마음가짐이었다면,
천고에 이름을 날리며 영웅호걸 대접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한데 요상한 것은 세인(世人)들은 모두들 삼고초려를 이런 따위로 이해를 하고 있다.
어림없는 소리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제갈량을 욕보이는 짓이다.

유비나 제갈량은 그 위치가 다르다.
유비는 쟁패의 주인공이라 천하를 거머쥘 가능성이 있지만,
제갈량은 책 읽는 서생인 바, 그럴 가능성은 없다.
아니 애저녁에 존재 위치, 각기 지향하는 바가 다른 것이다.

단, 유비는 제갈량과 같은 현인을 얻어야 그 뜻을 이룰 수 있고,
제갈량은 유비와 같은 왕재(王才)를 모셔야 제 포부를 펼 수 있다.

여기 외면상의 주종(主從) 관계가 아니라,
사나이 對 사나이의 만남의 거래가 있음이다.

여어득수(如魚得水)
삼국지에선 이 장면을 이리 꾸미고 있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은 바를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바에 비기고 있다.
아니 물고기 살지 않는 물도 물 노릇을 할 수 있음인가?
그러함이니, 난 제갈량 역시 유비란 물고기를 얻어 제 역을 다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그에게도 조명불을 비추어 주어야야 온전한 해석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의기상투(意氣相投)임이라,
양인은 의기가 서로 통하였다.
상대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그들은 서로를 의탁할 수 있게 되었다.

헌즉 제갈량은 그 기회를 시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공자가 철환주유(轍環周遊)하며 기회를 구함과 같다.
공자는 끝내 기회를 얻지 못하였지만, 
제갈량은 유비를 통해 제 역량과 포부를 시험할 수 있게 된다.

창부(娼婦)처럼 제 몸값을 높여 팔아넘긴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제갈량은 유비란 사람의 됨됨이를 세 번 시험하였던 것이다.
세인들의 삼고초려 해석을 따르면 제갈량은,
두 영웅의 만남의 장소에서 객체로 전락된다.
이 때 하나의 영웅은 그 위(位)를 잃고 사라진다. 
하지만 나의 해석 공간에선,
유비, 제갈량은 모두들 역동적인 주체로서 상대를 거량(擧揚)한다.

이러할 때라야,
문득 두 거인은 꽃다운 관계를 맺는다.
여기 무슨 주종(主從)이 있겠음인가?
다만 맡는 역할이 다를 뿐인 것임을. 

몸값을 의식하는 순간,
그 무대 공간은 주인과 종이 갈려 등장하게 되며,
자신은 자청하여 종이 되고,
상대는 주인이 된다.
이런 무대라면, 등장하는 두 인물 모두는 한껏 불행해진다.

얼결에 한 편이 주인이 되었다할손,
기껏 상대하고 있는 이가 종이라면,
이게 도시 만족할만한 사태인가?
그가 구하고 있는 것은,
자신과 같은 영웅호걸이 아니어든가?

만약, 내가 높은 값에 팔려간다고 좋아라 하고 있다면,
그는 언제가 되어도 결코 초려를 찾아가는 역을 맡지는 못할 것이다.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면 지 아무리 몸값이 높다한들,
한 인격 주체로서 이 어찌 만족스러운 노릇이라 할 것인가?
삼고초려에서 유비가 삼고한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제갈량 역시 유비를 삼고하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관객인 그대 역시 불행하다. 

그러함인데도 세상엔 몸값을 높여야 된다는 가르침이 횡행하며,
기꺼이 이런 역을 다투며 자임한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자신을 팔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유비를 주체적으로 택하였다.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나,
이런 자세를 잃지 않는,
그런 자존심을 가진 이를 일러,
우리는 영웅 또는 호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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