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한국의 한자 문화 환경의 변화상

소요유 : 2014. 4. 22. 22:35


며칠 전 서울 집에 갔다.
심심하여 묵은 바둑 책을 꺼내 읽었다.
실로 수십 년만에 들춰보는 셈이다. 
그런데 이게 모두 한자로 되어 있으니,
요즘 세태엔 생경스럽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을 당시는 수십 년 전이긴 하지만,
한자로 쓰여진 책이 드물지 않았다.
일개 바둑 책임에도 한자어가 통으로 도배가 되고 있었음이니,
그간 한국의 언어생활이 한글 위주로 완전 재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성무가 근래 지은 ‘조선시대 당쟁사’를 보면,
이 책이야말로 한자어가 등장도 할 만한데,
외려 본문 중에 등장하는 한자어는 괄호 안에 넣어지고,
차례를 보면 순전히 한글로만 되어 있다.


한글은 뛰어난 글이지만,
우리네 언어엔 한자어가 하많이 습합되어 있다.
뜻을 온전히 파지하려면 한자를 알지 못하고서는 어렵다.

한글로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들 말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뜻을 물으면 대개는 우물쭈물 얼버무리고 만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저들 말대로 일상생활에서 그럭저럭 지낼 수 있겠지만,
정밀한 언어를 구사하기는 어렵다.
이는 다시 말하면 엄정하고 논리적인 사고(思考)도 곤란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당연한 것이, 말하고 있는 글자의 뜻을 정확히 확정할 수 없는데,
어찌 깊고 정확한 사고가 가능하겠는가?

내가 한자어 예찬론을 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 바둑책을 나는 고등학교 때에 읽었는데,
출판사 역시 대중을 상대로 책을 내었을진대,
어찌 독자의 수준을 의식하지 않았을 터인가?
우리말에 한자어를 토대로 된 것이 태반인즉,
이를 바로 구사하기 위해서라도 한자를 어느 정도는 알아두어야 하리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한국어 생활 환경 하에서 사고력을 키우는데도 보탬이 될 것이다.

한자가 악이 아닌 이상,
한자 자체가 가진 장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자어가 갖는 고유의 웅숭깊은 뜻새김과 추상성, 상징성과 함께,
우리를 보다 넓은 한자 문화 세계로 이끈다.

만약 한글 전용론자가 있다면,
말로만 그러할 것이 아니라,
한자어를 순전한 한글로 환치하는 노력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
한자어가 적절한 한글로 바뀌어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우리는 한자어의 빛과 그림자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식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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