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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와 떡볶이

소요유 : 2015.07.12 20:50


파지와 떡볶이


동네에 파지(破紙), 폐지함(弊紙函) 따위를 줍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이 분 말씀이 이웃 동네엔,

부인이 약사임에도, 파지를 줍는 할아버지가 있다 한다. 


순간 떡볶이가 생각난다.

얼마전 재벌가에서 떡복이집에 진출하여,

누항(陋巷)을 지나는 강아지들까지 가가대소(呵呵大笑) 저들을 꾸짖었다.


박정희 정권이래,

적하이론(滴下理論, trickle down theory)을 펴지 않았던가?

일단 파이를 키워야 한다.

그런 연후라야 함께 나눌 수 있다.

그런즉 오늘의 네 행복을 잠시 유보하며 인내하라.

이리 주문(呪文)을 걸지 않았던가?


아랫목이 덮혀지면 윗목까지 따뜻해진다.

그런즉, 아랫목이 덮혀질 때까지 참아라.

이리 주문(注文)하기도 하였다.

이 논리는 기실 엉터리다.

그 동안 네들 송사리들은 동상이 걸리든 말든,

주린 배 움켜쥐고 추위를 견디어내라는 것이다.

아무런 사적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에게,

이리 양보를 구할 명분은 없다.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 간에도,

이런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자원과 기회의 배분은,

상대를 납득시키기 어렵다. 


항차 불골을 터서 윗목까지 불길을 보내줄 것이 내일에 담보되지 않는데,

앞서 윗목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오늘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 구성 윤리 원리에 비추어도 거의 횡포에 가깝다 하겠다. 


하나의 인격 주체가 타자의 인격 유지를 위해,

자신의 권리와 지위를 희생할 까닭이 없다.

이렇듯 하나의 단위 경제 주체가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 정책의,

제물이 되어도 좋은가?

설혹 정책의 실효적 성취가 담보된다고 하여도,

선제적(先制的)으로 개인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있는가?

전체주의 사회가 아닌 한,

이런 따위의 정책 집행은,

당사자들의 폭넓은 이해와 합의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


백 번 양보하여, 과연 한 곳에 몰아주어야 옳은 것인지, 아닌지,

그 시비를 논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파이가 커진 연후에 튀긴 물방울, 떨어진 콩고물이라도,

아래로 함께 나눠가졌음인가?


욕망의 폭주(暴走)

욕망의 사태(沙汰)


자고로 욕심이란 그 끝간데를 아지 못하는 것임이라,

파이가 커졌어도 진작에 몇 백배, 천배는 커졌을 터인데도,

저들은 이제 모은 재물의 위력을 빌어,

서민 경제의 바닥까지 저인망식으로 훑어내며,

제 뱃구레 가득 욕심을 채우고 있음이 아니더냐?


‘섬 틈에 오쟁이 끼겠나’란 우리네 속담이 있다.

볏섬을 쌓고, 그 사이사이에 또 오쟁이까지 끼워 둘 셈이냐는 뜻으로, 

재산 있는 사람이 더 무섭게 재물을 아끼고 탐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이제 고샅길 모퉁에 있던 구멍가게가 사라진지는 사뭇 오래 전 일이 되었다.

슈퍼란 것도 모두 재벌들이 싹쓸어가버리고 남겨진 것이 없다.

하여 일자리를 빼앗긴 저들은 저들 재벌가가 운영하는 마트에,

기껏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따위로 매달려 연명하고 있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큰 놈에게 몰아주어야 경쟁력이 생긴다며,

작은 이의 것을 큰 놈에게 몰아 내주라는 것이 정부 시책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한데 털어 가진 큰놈들이 설사 경쟁력이 생긴다한들,

작은 이들은 제 전답(田畓)을 빼앗기고는,

이젠 하릴없이 저들 농장의 품팔이꾼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언필칭 농노(農奴)가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대학까지도 시장 일선에 진출하고 있다.

듣는 소문에 의하면 모 대학에서 도시락을 개발하여,

시식 평가단을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가 대학이 요식업까지 진출한다면,

그러고서도 학문을 닦고, 진리를 탐구하는 집단이라 이를 수 있겠는가?

대학(大學)이 대리(大利)를 꿈꾸는 순간,

소학(小學)은커녕 곧장 모리배(牟利輩)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게 되면,

의로움을 생각하라.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인 게라.

이익의 현장 앞에 서면 대개는 이익을 다투며 탐하게 되는 법.

헌즉 군자란 애저녁에 소로(小路)를 기웃거리지 않고 대로(大路)를 걷는다.

이치(理致)를 궁구(窮究)하고,

의기(義氣)를 기르는 자는,

본디 이(利)를 다투는 자리에 몸을 두지 않는다.

헌즉 군자이기 때문에 대로를 걷는 것이 아니라,

대로를 걷기에 군자가 되는 바임이라.

이 도리를 바로 알아야 하리라.


대학에 몸을 맡기고 있는 멀쩡한 인사들이,

학문의 전당을 떨치고 나와,

시장을 쓸고 다니며 흉측한 한 마리 사갈(蛇蝎)이 되어,

힘없는 사람의 살을 물어뜯고, 뼈를 취하려 함이니,

그 삿됨이 심히 참람스럽기 짝이 없구뇨.


내 농부로서 때때로 농정당국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면,

퍽하면 1억 소득 운운하며 사람을 현혹시킨다.

이미 결단이 난 농민들을 부추기고 닦달하며 1억으로 꾄들,

그게 대다수 농민들에게 가능한 일인가?


작더라도 단위 농가들이 제나름 용력(用力)을 다하고, 재주를 펴면, 

삶을 영위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위정자라 이름 가진 자들이 제 편의대로,

작은 것을 쓸어내어 하나로 모아 큰 것을 만들며,

대수(大數)를 쌓아 이를 제 공적이라 자랑하려 한다면,

이는 천하를 어지럽히는 도적의 작태(作態)라 하겠다.


천하지란(天下之亂)


천하를 어지럽히는 저들의 어리석음, 오만을 탄(嘆)하노라.


설혹 나라 GDP가 수치상으로 올라가면 무엇하나,

이게 다 빛 좋은 개살구라,

설혹 조그마하더라도,

내 집, 내 논밭에서,

주인답게 살아가며,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낫다.

비록 버는 돈이 적더라도,

내 가계(家計)의 셈을 내 손과 힘에 의지하며,

가족들과 오순도순 행복을 일구고,

여기 자부심과 보람을 일궈내는 세상을 그린다.


적하이론의 효과란 것이,

서민들이 고작 재벌가의 재물 밑에 복속되는 것이란 말인가?


헌데,

약사 부인을 둔 할아버지까지 파지 주우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이의 생계까지 위협해서야 하겠음인가?

그리 나선 저이의 사정을 모두 다 알 수는 없을지라도,

세상엔 차마 그리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지 않는가?

불인(不忍)


耳不忍聞。

眼不忍見。


차마 귀로 들을 수 없음이며,

눈으로 볼 수 없음이라.


발걸음을 멈추고,

파지 줍는 이들을 본다.

거기 저들 발걸음 따라 한 땀 한 땀 땅을 적시는 서러움,

굽힌 등허리에 서리는 선홍빛 핏빛 한(恨)을.


그 적색(赤色)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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