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예측술(豫測術) - ②/②

소요유/묵은 글 : 2008.03.01 09:35


외삽법은 기존의 역사적 자료를 정량적으로 다룹니다.
반면 정성적 방법은 판단과정, 경험관리, 직관, 유추, 예측에 이르는 지식 등등의
효과적 구사를 목표로 하는 방법론입니다.
이 방법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
브레인스토밍법( brainstorming ), 델파이법( the delphi approach ) 등등입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 총수들의 성공담을 얘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예리한 감, 직관이 외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곤 합니다.

kkk님이 말씀하신 촉(觸)이라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觸이라는 것이 感과 비교됩니다.
감이라는 것이 다분히 정신적 판단에 속한 것이라면,
촉이란 구체적 경험의 현장에서 몸으로 터득된 것이란 인상을 자아냅니다.

촉류방통(觸類旁通)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원래 사전적으로는 “한 가지를 빌어 열가지를 두루 추측하다”란 뜻입니다.
하지만 다산 정약용의 촉류방통법(觸類旁通法)은
“묶어서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라”라 흔히들 새겨지고 있습니다.

이 양자는 약간의 의미 차이가 있습니다만....
논어에서 말하는 거일반삼(擧一反三) 즉 하나를 거들어 준즉,
셋을 돌려 이해하는 心田의 경지와 맥을 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kkk님의 觸이란 감에 비해서는 사뭇 진지하고 견고한 신뢰를 기우리게 합니다.
다만, 감이든 촉이든 체계적 검증의 절차가 불가능하거나, 생략된 것인즉,
구체적 결과로 검증될 수 밖에 없는 특성을 갖습니다.

***

앞에서 정량적, 정성적예측방법들을 차포 떼고 대충 살펴 봤습니다.
(그 외 예측 방법의 평가 요소들, 
즉 예측의 시간적 장단, 자료 형태, 비용, 예측환경 등을 함께 논하여야 하지만,
얘기가 길어지고 다소 따분한 것들이므로 재껴두고자 합니다.)

비록 이런 방법을 이용하여 예측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판단작용”은 예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측자가 갖고 있는 새로운 정보, 내적인 통찰력, 실시간 환경 조건 등에 기초하여
위에서 살펴 본 형식적인 예측 방법( formal forecasts )은 적당히 변경되어 사용됩니다.
어떠한 예측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최종 판단( judgmental forecasts )은 예측의 成,否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故정주영회장의 경영감각이 탁월하다고 얘기들 합니다.
많은 경영자의 경우 정량적예측방법보다 판단적예측(judgmental forecasts)으로
훌륭한 예측을 이끌어 내는 수가 있습니다.
만약 이런 것이 일반적 사실이라면 판단적예측에 개재되는 偏倚(bias)를 줄이면
예측 정확도를 훨씬 제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의 경우, 수많은 사례의 증거로 얻은 결론에 따르건데,
판단적예측은 정량적예측방법보다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내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판단적예측방법의 부정확성은 인간의 정보처리과정과 판단적평가에
개재되어 있는 偏倚( bias )에 기인하므로 예측자는 이를 잘 인식하여
구별하여 내고 이를 옳게 수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

예측 방법에 따른 여러 검증 사례들을 추려 정리해보았습니다.
이들 자료는 학자들이 구체적으로 조사 발표한 것으로
그 결과만을 간단히 제시해보았습니다.


① 단기( 3개월이하 )를 넘는 예측은 매우 부정확하다.
    체계적偏倚( systematic bias )나 오류가 개재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② 단기 예측은 대개의 상황에서 본질적인 관성에 의해 보다 예측의 신뢰성이 높다.

③ 정량적예측방법이나 일관성 있는 판단규칙에 의거한 예측은
    판단적 예측( judgmental forecasts )과 같거나 보다 월등한 성과를 낸다.

④ 간단한 정량적예측방법이나 판단규칙은 정교한 통계학적 접근법보다
    예측 정확성이 좋다.

⑤ 비록 여러 번 시도되더라도, 다른 예측 방법( 예측자 )보다 성과가
    뛰어난 단일 예측 방법( 예측자 )을 밝혀 내기는 어렵다.

⑥ 예측자간 예측의 결과에는 상당한 편차가 있다.
 
이어서 판단적 예측이 정량적 예측보다 결코 낫지 않다는
구체적 검증 자료들을 예시하여 봅니다.
단, 특별히 주식투자부문에서의 예측의 경험적 사례를
수집, 검토하여 보았습니다.

① 주요한 재무정보서비스사의 추천 종목들의 수익율은 시장전체의
    평균수익율보다 오히려 년율 1.4% 정도 낮은 결과를 보였다.
         ( 1928 ~ 1932 )
    Wall Street Journal의 추천 종목의 경우도 역시 시장수익율보다
    열등한 결과를 보였다. ( 1904 ~ 1929 )
               --- Cowles, A. ( 1933 )
② Wall Street Journal에서 시험 예측된 결과의 절대평균퍼센트
    오차는 20.1%였다.
               --- Copeland, R. M. and Marioni, R. J. ( 1972 )
③ 재무정보서비스사의 예측 자료는 시장수익율보다 좋은 결과를
    시현하지 못했다. 더구나 예측의 80%는 낙관적 경향의 것이었다.
               --- Cowles, A. ( 1944 )
④ 5개의 예측기관에서 예측한 185개회사에 대한 이익 예측은 실제의
    결과와 매우 낮은 상관관계를 가질 뿐이었다.
    조심스럽고 아주 고심한 예측의 경우도 단지 수익곡선 추세를 연장
    하여 얻은 예측보다 아주 근소한 차로 다소 나을 뿐이었다.
               --- Cragg, J. G. and Malkiel, B. G. ( 1968 )
⑤ 장래 이익에 대한 예측을 행한 발행 문서의 검증에 있어서
    예측 오차는 넓은 범위에 걸쳐서 확인되었다.
    평균오차는 마이너스 값이었다. 즉 과대 예측이 과소 예측보다
    빈번히 자행된다.
               --- McDonald, C. L. ( 1973 )
⑥ 전문 투자분석가( analysts )의 예측은 일반적인 단순한
    예상보다 정확하지 못하였다.
               --- Richard, R. M. ( 1976 )
⑦ 전문 투자분석가( analysts )의 이익 예측은 회사자체 내의
    예측보다 예측력이 뒤떨어졌다.
               --- Basi, B. A., Carey, R. J. and Twark, R. D.( 1976 )
⑧ 전문 투자분석가( analysts )의 예측은 회귀분석 모델에 의한
    예측보다 훨씬 뒤떨어졌다.
               --- Ebert, R. J. and Kruse, T. E. ( 1978 )
 
이상은 주식투자에 관련된 것에 한정되어 있으나 경영예측, 판매예측, 상품가격예측 등
여러 다른 부문에 관한 조사에서도 위와 다를 바 없는 결과가 검증되었습니다.

***

실제적인 예측의 관점에서 보면 판단적예측방법과 정량적예측방법을
결합하면 단일 방법에 의한 예측보다 훨씬 개선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판단적예측방법에 흔히 개재되는 偏倚( bias )나 일관성의 부족( inconsistency )과 
정량적예측방법에서의 어려움으로 지적되는 예측환경의 심한 변동가능성 등에
대한 결합적방법에 의한 적절한 대책은 보다 나은 결과를 제공할 것입니다.

兩방법의 한계와 특징에서 내려지는 논리적인 결론은 주변환경에 주요한 변동이
없는 한에 있어서 정량적예측방법에 보다 높은 비중이 두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환경에 변화가 발생하면 판단적예측방법의 비중이 높아져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논점은 그러한 변화가 일어날 때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측시스템( forecasting system )뿐이 아니고
또 하나의 다른 시스템 즉 감시시스템( monitoring system )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감시시스템은 외부 환경의 변화나 내적 조직의 변화를 감지하여 해당신호를 발하여야 합니다.
즉 조기경보시스템( early warning system )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예측과 감시 이 양자의 구별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상에서 보여지는 도표와 자료의 일부는 
Makridakis, Spyros G. - Forecasting, methods and applications에서 인용했습니다.

***

(※ 이하 전통 주역 풀이와 다르게, 豫와 隨의 자의를 빌어, 상호 대비시키며, 뜻을 이끌어내었음.)
시간을 미리 잡는다 !
역(易)의 예괘(豫卦)에는 예지시의 대의재(豫之時義 大矣哉)라는 말이 있습니다.
『때를 미리 아는 뜻이 크도다.  trend anticipation』
때를 미리 잡음이 크고 아름답다는 것을 누가 모를까마는 세속에 몸을 기탁하고 있는 한
탐욕에 눈이 멀고, 두려움에 공(功)을 놓치는 것은 예사일 아니겠습니까 ?

감히 행여나,
때를 미리 잡아낼 수는 없을지언정 최소한 지금 여기 벌어지고 있는 때의
현장을 놓치지 말고 함께 따를 수만 있어도 대과는 없을 것입니다.

역(易)의 수괘(隨卦)에는 수지시의 대의재(隨之時義 大矣哉)란 말로 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때를 따르는 뜻이 크도다.  trend following』

앞에서 말씀드린 외삽법이라는 게,
실인즉 trend(추세)라는 호랑이를 길들여 올라타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나운 호랑이 등에 제대로 올란 탄 사람을 아직껏 본 적이 없습니다.

기껏 자신이 호랑이 등에 올라 탄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이들중 대표적인 사람을 꼽자면 정치인과 점술가를 들 수 있습니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이 세상에 예측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에게 거는 기대는 늘 파릇하니 새롭고,
점집을 기웃거리는 사람도 끊이지 않습니다.

희망을, 기대를 저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의존, 현실 회피는 우리를 저으기 슬프게 합니다.
가상의 세계에 안주하며 인내하는 것은 이렇듯 슬픔을 동반합니다.
때문에 솔직해지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마도, 점집을 찾는 이유는
결국은 누구도 미래를 예측 할 수 없다라는 집단적, 묵시적 합의 밑에
기도되는 은밀한 자기 위안내지는 기만 행위가 제법 달콤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
그런 의미에서,
점술사와 문복자는 가상으로 미래를 훔치고자 짐짓 연극하는 공범관계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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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모음

bongta :

세상의 판구조가 그림처럼 구부러진 고무판처럼 생겼다고 한다면,
기독교의 신념체계는 지금 b->c로 떨어진 실낙원에 처하여 있고,
차후 d->a로 휴거될 것을 예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그 프로세스의 전개를 강고한 신념으로 붙잡고 있다면
참으로 얄궃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인즉 외삽론자(?)야 말로 신념의 화신이기 때문입니다.
원리주의적 외삽론자라 하면, 세상은 구부러진 고무판이 아니라
方正한 것인즉 외삽의 결과를 믿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파국론자라면 구부러진 고무판 위에 居하고 있음을 알기에
막무가내 강한 신념을 保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화두 잡는 간화선에 보면
대신근(大信根), 대의단(大疑團), 대분지(大憤志)의 세가지 필수 요소를 듭니다.
믿음의 뿌리를 강한 의심 덩어리로 파관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憤이 아니고 大憤인즉 곧 큰 용기를 뜻한다고 풀이되고 있지만,
저는 疑가 아닌 大疑라고 함은 곧 겸손을 뜻한다고 새깁니다.

구부러진 고무판의 세계라면 처처가 다 함정이요,
미지의 세계일 터니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장판교에 버티고 선 장비처럼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자신이 믿는 신념체계가 최선이라고 우겨될 수 있겠는지요 ?

하니 무릇 대신근을 내는 이는 愼,
즉 삼감, 겸양지덕을 으뜸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자리에서라야,
大慈大悲가 가능합니다.

기독교에서도 믿음보다 사랑이 중하다고 말씀들 하십니다만,
그 근저에는 낮춤의 아름다움이 역사하고 있음을 엿보게 됩니다.


bongta :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존경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신념인지, 고집인지 판별이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판별의 기준을 동기에서 찾아야 옳은지, 아니면 결과를 가지고 평가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기 힘듭니다.
예컨대,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이 사후에라야 밝혀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가 가진 有神신념이라는 것이 막상 사후에 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것을 그 때 망집이라고 고쳐 불러야 할 것인가 ?
반대로 참으로 귀결된다면 앞선 그것을
그 때에 이르러 의심할 바 없는 신념이라고 확인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노릇이냐 하는 것이지요.

나이 들어가면서 그 신념이라는 것의 비참한, 혹은 비열한 굽은 행로를 많이 보아왔기에,
저는 신념이 그저 강하다는 것에 마냥 찬사를 보낸다는 것이 조심스럽더군요.
더욱이 고집의 패악 역시 적지 아니 접해보았기에 더 그렇습니다.
하니 대신근(大信根), 대의단(大疑團), 대분지(大憤志)를 놓고 본다면,
大信, 大憤이 大疑로서 즉 (저의 풀이대로라면) 겸양으로 보증되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일 확률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jjjd님이 말씀하신 그 사이비들을 그래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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