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人法自然

농사 : 2017. 10. 22. 17:22


내가 농사에 인연을 짓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주말농사를 하기 시작하면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라 농장 주변 농민들의 조언대로 첫해엔 비료를 한 줌 준 적은 있지만,

결코 농약이나 제초제를 쓴 적이 없다.

그 이후론 비료조차 주지 않고 3년 간 주말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블루베리와 인연을 짓게 되었다.

처음부터 농약은 물론 방초망(防草網)조차 씌우지 않고 풀을 키우며 임하였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제는 풀이야말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첫 길잡이자 마지막 증명법사(證明法師)임을 깨우치게 되었다.


초기 외부에서 들여온 묘목엔 혹파리가 붙어왔다.

이들을 밭에 내어 정식으로 식재를 할 때 혹파리가 전 밭으로 퍼질 것을 염려하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듬해 혹파리가 보이질 않았다.

나는 전적으로 이를 풀의 공덕이라 여긴다.

게다가 다른 농장에 있다는 그 흔한 쐐기벌레조차 없다.

아마 이를 약으로 구하는 이가 있다 할 때,

재수가 좋으면 전 밭을 뒤지면 혹 하나 정도는 만날 수 있을까?

이 역시 풀의 공덕이라 생각한다.


풀을 키우면 그들이 내놓는 H+ 이온 때문에 흙은 산성을 유지하게 된다.

블루베리는 산성토라야 잘 자랄 수 있다.

게다가 각종 미생물이 자유롭게 자라며 땅을 부드럽게 만든다.

땅이 부드러워지면 거기 깃든 모든 식물들이 뿌리를 깊게 뻣으며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땅 속 깊이까지 내려가도 온도가 일정하며, 비료, 농약을 준 그 어떤 여느 밭흙보다 따뜻하다.

마치 숲의 흙처럼.


나는 지금 다시 밝히거니와,

앞으로도 지금처럼 일체의 농약, 제초제, 비료를 밭에 투입하지 않을뿐더러,

그 외 다른 자재도 들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풀을 키우며 숲과 같은 자연 생태계를 닮고자 한다.


내가 앞 글에서 여러 비료 요소에 대해 순차로 연구를 하겠다 하였으나, 

(※ 참고 글 : ☞ 유익원소와 귀인)

이제까지 다룬 붕소, 칼슘 외에는 더 이상 이곳에서 다루지 않으려 한다.

혹여 이로써 다른 이들을 비료 투입 농법으로 이끌어들일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농약과 비료는 식물을 자연계와 격리시킨다.

인간은 이를 빌어 식물을 자기통제 하에 둔다.


달고, 크게, 많이.


이 목표를 위해 저들 식물을 객체화하고 수단화한다.

마치 차꼬에 채인 수인(囚人)처럼 식물은 제 본성을 잃고,

인간의 욕심에 부역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밭에 병충해가 창궐하는 것은,

농약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식물이 자생력을 잃고 약해져 저들의 공격에 쉬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병충해는 결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만약 식물이 제 품성대로 자랄 환경이라면, 병충해가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밭에 병충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식물이 이를 너끈히 이겨낼 뿐이다.


사람들이 비료를 주면서 식물 능력 이상으로 쥐어짜내려 하니까,

식물은 약해질 수밖에 없고,

이 틈을 비집고 병충해가 달겨들게 된다.


만약 비료가 과연 식물에게 그리 좋은 것이라면,

어찌하여 년년세세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주어야 하는가?

한 해가 지나면 다시 부족하다 판단하니까,

어쩔 수 없이 다시 비료를 투입하는 것이 아닌가?


농업 전문가라는 이들은 곧잘,

가을엔 감사 비료를 주어야 한다고 이른다.

능력 이상으로 과일을 달리게 한 후,

이를 다 거두고서는 감사 비료니 하는 그럴 듯한 말로,

스스로를 속이며 약해진 식물들에게 링게르를 다시 꽂아주는 것이 아니랴?

감사 비료는 수확을 하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란 인사치레가 아니다.

정작은 많이 쥐여짜냈으니까,

내년 일이 걱정이 되니,

이것 받아먹고 내년에도 견디어낼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비료를 많이 주어도 식물은 고맙게 여기지 않는다.

좁은 축사에 갇힌 동물들처럼,

단기간에 비정상적으로 살이 찔런지 몰라도 결코 행복하게 산다고 할 수 없다.


식물이 건강하다면,

병충해가 가까이 다가와도,

제 몸을 지킬 수 있는 정도는 능히 된다.


하지만 비료를 주게 되면,

실질 이상으로 몸을 키우기 때문에,

허점이 생기고, 약해지게 된다.

이를 병충해가 노리기는 아주 수월하다.


게다가 잔류 질산염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점은 누차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러함이니, 사람들은 농약을 쳐대며,

저들을 년년세세 재우쳐 몰아가며, 제 욕심을 채운다.


자연계는 그 자체로 완결된 시스템이다.

인위적 간섭 없이도 숲 속의 초목은 잎을 달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


이 자기 충족적 시스템에 인간의 작위(作爲)가 가해지는 경로는 이렇다.

욕심껏 취하려 하자니 온갖 요사스런 짓거리가 행해지고,

따라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며,

또 이를 해결한답시고,

갖은 망령된 짓거리가 따른다.


비료를 주면 더 큰 열매를 맺는다.

해충을 죽이면, 보다 많은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이런 욕망 추수적(追隨的) 사고 방식을 인간은 이제껏 거리낌없이 행해왔다.

이러 할 때,

오늘날 농작물은 더 이상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 별반 차이가 없어졌다.


마치 생물학이 요즘 생명공학이란 괴물로 바뀌어가듯이,

생명 역시 인간의 욕심에 의해 공산품과 같은 물적 객체가 되고 말았다.

불행한 일이다. 


하나 쯤이야 괜찮겠지 하며,

조그마한 일을 행하다 보면,

둘을 취하게 되고,

급기야는 셋, 넷, 백천만을 끝 모르게 행하게 된다.


나는 제 아무리 좋다는 비료 하나라도 밭에 들이지 않고,

지금처럼, 애오라지 풀과 함께 블루베리를 자라게 할 것이다.


앞으로는 예초 작업도 가급적 하지 않을 예정이다.

어린 나무 주변은 초기 생육을 위해 주변 풀을 좀 다스리겠지만,

성목 주변엔 풀이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내버려두려 한다.


처음 농장 개설시 예초기 환형(環形) 날을 한 해 서 너개씩 사용하였다.

하지만 서서히 줄어 올해엔 딱 하나만 꺼내 썼는데,

날이 무디어지지 않아 내년에도 또 사용해도 될 형편이다.


병도, 충도 자연의 일부이다.

나는 이들도 우리 밭에 들어와 사는 것을 막지 않는다.

다만 생명들이 서로 어울려 저마다의 생을 구가할 것을 바라며,

이를 지켜보고 싶다. 

우리 밭에서 병충해가 발견되지 않는 것은,

기실 병충(病蟲)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있어도 결코 블루베리에 해를 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말하는 것이 옳다.


해가 갈수록 밭에는 자생초들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양도 늘어나며, 늘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밭은 생태학적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블루베리는 물론, 풀들 그리고 거기 깃들어 사는 미소(微小)동물, 중(中)동물은,

활기차고 건강한 삶을 영위한다.

그런데 저 균형(equilibrium)은 정태적(static)으로 어디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동적(dynamic)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기온, 강우, 강설, 농부의 개입 등 외적 상황 변화에 따라,

토양, 동식물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적응해가며 새로운 균형을 찾아 간다.


(※ 참고 사항

생태학적 균형 또는 평형이란 말은,

영어로는 Ecological Balance, Ecological Stability, Ecological Equilibrium로 쓰이는데,

Balance, Stability, Equilibrium은 그 의미 공간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나는 이중에서 Ecological Equilibrium를 선호하는데,

이는 추상적 상황, 사태의 균형 관계를 묘술하는데 그치기보다는,

제(諸)세력들간의 동적 긴장, 갈등, 조정 과정을 거쳐 평형 상태에 이르는 모습을 묘사하는데는, 

이 말이 훨씬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만약 정태적이라든가, 농부가 비료, 농약 등을 투입하여 개입을 하게 된다면,

예기치 않은 외부 상황 변화가 일어날 때, 

균형은 급격히 깨지면,

시스템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태를 system학에선 overdamped되었다고 말한다.


(출처 : 봉도표, 봉타著)


농부는 의욕하는 수확 수준 확보를 위해,

농장이 인위적 특정 조건에 도달하기를 기도하는데,

바로 여기로부터 문제가 생긴다.

생태환경이란 결코 특정 조건 상테로 고정된 것도, 고정시킬 수도 없다.

하지만, 농부는 비료, 농약, 제초제 등 갖은 작위적 수단을 동원하여,

생태환경을 강제로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이끈다.

이 때 자연스런 생태환경은 overdamped되고,

결국은 회복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나의 을밀농철에 입각한,

자연을 따르는 농법 하에선,

수많은 제(諸) 세력이 동태적 균형을 이루기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심한 외적 자극이 가해져도,

빠른 시간 안에 외적 환경변화에 능동적,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새로운 적응환경을 만들어간다.

따라서 제(諸) 세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동태적 균형은 건강하게 일어난다.


나의 을밀농철은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이런 자연을 따를 뿐이다.

그야말로 도법자연이라,

도는 자연을 본받는 것임이라,

나는 배우고 깨우친 바대로 이를 본받을 뿐이다.

(※ 참고 글 : ☞ 도법자연(道法自然))


人法地,地法天,天法道 ,道法自然


이는 결국 人法自然이라,

사람이 자연을 본받는다는 말이다.

이 때 비로소, 사람은 자연에 부끄럽지 않게 되고,

식물도 제 성품을 온전히 발휘하며 한 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를 거슬리는 현대의 농법은 결국 식물, 인간을 병들게 하며,

자연을 욕되게 함을 알아야 한다.


노자의 관련 부분을 여기 남겨둔다.


有物昆成,先天地生。蕭呵漻呵,獨立而不改,可以為天地母。吾未知其名也,字之曰道,吾強為之名曰大。大曰筮,筮曰遠,遠曰反。道大,天大,地大,王亦大。國中有四大,而王居一焉。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

(老子乙道經, 백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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